문해력이 무너진 아이에게 영어·수학은 모래성

문해력이 무너진 아이에게 영어·수학은 모래성

  • 칼럼니스트 이연지
  • 승인 2026.04.23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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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지의 문해력 미술로 여는 아이의 미래] 영어보다 먼저 길러야 할 힘, ‘문해력 미술’이 답이다
대치동 초등 저학년, 왜 영어 단어보다 '시각적 문해력'이 먼저인가. ⓒ책읽는미술관
대치동 초등 저학년, 왜 영어 단어보다 '시각적 문해력'이 먼저인가. ⓒ책읽는미술관

대한민국 교육의 심장부라 불리는 대치동에서 초등 저학년 학부모들의 고민은 늘 비슷하다. 영어를 얼마나 빨리 시작해야 하는지, 사고력 수학은 어디까지 선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아이들을 가까이 만나며 확신하게 된 사실은 따로 있다. 지금 아이들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더 많은 단어와 문제풀이가 아니라, ‘스스로 이해하고 표현하는 힘’, 즉 문해력이다.

최근 교육 현장에서 눈에 띄는 변화 중 하나는 ‘텍스트 난독’ 현상의 증가다. 글자를 읽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읽고도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이는 단순한 학습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인 문해력의 문제다. 특히 학습 강도가 높은 환경일수록 이러한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이해 없이 반복되는 암기 학습은 아이를 빠르게 지치게 하고, 결국 학습에 대한 자신감까지 무너뜨린다.

문해력은 단순히 글을 읽는 능력이 아니다. 문장을 통해 상황을 이해하고, 그 맥락을 머릿속에서 구조화하는 힘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시각적 문해력(Visual Literacy)’이다. 텍스트를 이미지로 전환하고, 다시 그것을 논리로 풀어내는 능력은 모든 학습의 기초가 된다.

나는 그 해답을 ‘미술’에서 찾았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미술은 단순히 잘 그리는 기술이 아니다. 그림을 ‘읽고’, ‘해석하고’, ‘표현하는’ 과정이다. 아이들은 한 권의 그림책을 통해 이야기를 이해하고, 질문을 던지며, 그 생각을 자신만의 이미지로 풀어낸다. 이 과정은 자연스럽게 사고의 확장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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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그림책 속 인물의 감정을 색으로 표현하고, 이야기의 다음 장면을 상상해 만들어내는 순간, 이미 고차원의 읽기와 사고가 이루어지고 있다. 실제로 이러한 경험을 반복한 아이들은 문장의 구조를 더 깊이 이해하고, 자신의 생각을 보다 풍부하게 표현하는 모습을 보인다.

최근 주목받는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 교육 역시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정답을 찾는 교육이 아니라, 질문을 만들어내는 교육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아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생각하느냐’다. 미술은 이 질문의 힘을 키우기에 가장 적합한 도구다.

수업이 끝날 무렵 아이들에게 항상 묻는다. “왜 이 색을 선택했니?”, “이 그림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니?” 아이들은 처음에는 머뭇거리지만, 점차 자신의 생각을 말로 풀어내기 시작한다. 이 작은 변화가 쌓여 사고력과 표현력으로 이어진다.

초등 저학년 시기는 학습의 양을 늘리는 시기가 아니라, 학습의 ‘기초 체력’을 만드는 시기다. 문해력이 탄탄한 아이는 어떤 과목을 만나도 흔들리지 않는다. 반대로 이 기초가 부족한 상태에서의 선행학습은 오래 버티기 어렵다.

결국 교육의 본질은 아이가 스스로 이해하고, 생각하고,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있다. 그리고 그 출발점에 ‘문해력 미술’이 있다.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빠른 속도가 아니라, 더 깊은 이해다.

*칼럼니스트 이연지는 홍익대학교에서 미술교육을 전공했으며, 교육과 예술을 융합한 창의적 인재 양성에 주력해온 교육 전문가다. 2017년 9월부터 ㈜책읽는미술관 프랜차이즈 대표를 맡아 교육 콘텐츠 개발과 운영을 이끌어왔다. 현재 ㈜책읽는미술관 기업부설연구소를 운영하며 교육과 예술을 접목한 프로그램 연구에 힘써왔으며, ㈜인터불고 뮤즈랩 대표로도 활동해왔다. 또한 (사)한국휴먼이미지디자인학회 이사 및 편집위원으로 학술 활동을 병행해왔으며, 대한민국 미술대전 수상 작가로서 공공기관과 대기업 미술대회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등 예술 분야에서도 전문성을 인정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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