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두 번째 생일을 맞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벌써?’라는 느낌보다는 ‘이제 두 돌이라고?’라는 느낌을 더 많이 받았다. 아들을 만나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온갖 일을 다 겪은 것 같은데 겨우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을 뿐이라니. 그 전에 살아온 시간들에 비해 얼마나 밀도 높은 2년을 보냈다는 것인가. 매일 신나게 뛰어 놀고 말도 조금씩 배워 가고 있는 아들을 보면 아직 갈 길이 구만리이지만 그래도 많이 자랐다는 생각이 든다. 자라느라 고생한 것은 아들이지만 그래도 나 역시 그간 키운 공이 없다고 할 수는 없으니 뿌듯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 사이 주변 친구들 중에 나보다 늦게 아이를 만나게 된 이들이 제법 생겼다. 내가 겪었던 고생을 똑같이 경험하고 있는 그들은 내게 육아를 시작하는 어려움에 대해 하소연 한다. 도대체 밤잠은 언제 자는 것이며, 언제쯤 내 시간을 조금이라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냐고 묻곤 한다. 가장 자주 듣는 질문은 “그래도 그맘때 쯤 되면 조금 편해지나?” 하는 것이다. 나도 비슷한 질문을 많은 육아 선배들에게 건네곤 했다. 내가 들었던 대답은 주로 “그래도 그맘때가 편한 거야. 나중에 훨씬 더 힘들어질걸.”하는 엄살 섞인 비관이었다. 그런 질문을 내가 받는 입장이 되고 보니 나는 그렇게 대답해주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것은 정답도 아니고 질문한 이에게 도움이 되는 대답도 아니다.
나는 ‘다르게 힘들다’고 대답한다. 실제로 신생아 시절, 돌 무렵, 그리고 지금 육아를 하며 느끼는 어려움이 매번 다르다. 신생아 시절에는 잠을 못 자서 힘들었고, 어찌 해야 할지 몰라서 당혹스러운 마음에 괴로웠던 때도 많았다. 돌 무렵에는 아기의 낮잠 패턴이 일정하지 않다는 점과 이유식 해 먹이는 수고로움이 지금보다 힘들었다. 지금은 명백히 지난 시간들에 비하면 고됨의 총량은 줄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지금 나름의 어려움이 분명히 있다.

요즘 힘든 점은 아들에게 자신도 그 정체를 알지 못하는 미성숙한 자아 같은 것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다. 취향이 생기고, 원하는 것이 생기고, 그러나 정확히 뭘 원하는지는 본인도 잘 모르고, 원하는 것이 충족되지 않으면 짜증이 나는 일이 자꾸만 생기는 것이다. 나름 요즘 유행하는 말처럼,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 아들이 원하는 것을 찾아 충족해주려 하지만 그걸 백 퍼센트 해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름 순하다는 이야기를 듣는 아들도 울고 소리치고 드러눕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아들이 짜증날 때 하는 행동 중 가장 당황스러운 것은 물건을 바닥에 던지는 일이다. 손에 쥐고 있던 숟가락이나 장난감을 바닥에 세게 던질 때면 나도 아내도 순간적으로 말을 잃는다. 우리도 사람인지라 일순간 화가 나기도 하지만, 그보다 앞서는 감정은 어떻게 할지 모르겠는 막막함이다. 자칫 버릇 없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행동을 남들 앞에서 하게 둘 수는 없기에 뭔가 교정하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훈육을 고민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아직 그러기에는 너무 이른 시기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그런 걸 제대로 해 본 적도 없어서 난감하다.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큰 소리로 야단을 맞거나 벌을 서거나 회초리를 맞던 기억이 나는데. 그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바람직한 방식은 아니었던 것 같아서 되물림 하지 않으려 한다. 어떻게 하면 아들의 마음을 다치지 않으면서도 잘못된 행동을 교정할 수 있을까.
최근 나는 얼굴에 웃음기를 빼고 낮은 목소리로 “안돼. 던지는 거 아니야. 가서 주워 와.” 하는 방식으로 훈육을 시도했다. 그런데 그 역시도 약간은 폭력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한 표정을 지으려니 나도 모르게 치밀어 오르는 짜증 같은 감정이 얼굴에 담기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 언제나 엄마 아빠의 다정한 얼굴만을 보며 두 돌이 된 아들이 놀라는 것도 좋은 신호가 아닌 것 같았고, 그렇다고 효과가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어린이집에 아들을 데리러 가서 선생님께 고민을 털어놓았다. 아들의 어린이집 선생님께서는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아버님, 그럴 때는 산호가 던진 물건을 주워서 ‘그렇게 던지면 아야 하니까 다시 살살 내려놓아볼까?’ 하시면서 반복학습을 시켜 주시면 돼요. 산호가 똑똑해서 반복적으로 알려 주면 정말 잘 따라 해요.” 돌아오는 길에 자동차 룸미러에 비친 아들을 봤다. 아빠를 만나 신난 아들의 밝은 얼굴을 보니 미안한 마음이 밀려왔다. 어려서 그런 건데, 그러면 안 된다는 걸 몰라서 그런 건데 짜증 섞인 얼굴로 으름장이나 놓던 나 자신이 못나고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은 아직 이 세상의 규칙들 중에 모르는 것이 더 많다. 밉게 굴려고 미운 행동을 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몰라서 가끔 잘못된 행동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모르던 것을 배우는 일은 어른인 내게도 어려운 일인데, 아들의 세상은 모르는 것과 배워야 하는 것으로 가득 차 있다. 그 고단함을 헤아리지 못한 내가 부끄럽기도 하다. 나는 무언가 배울 때 어떻게 했던가. 뭐든 다시 하고 다시 하는 수밖에 없다. 잘 안 되는 플레이를 반복하며 기타를 배웠고, 낯선 말이 적힌 책을 여러 번 다시 읽으며 지식을 쌓았다. 배우는 일은 반복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그렇기에 무언가 배우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것을 나는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
집에 돌아와서 잘 놀던 아들이 뭐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손에 쥐고 있던 장난감을 또 바닥에 내팽개쳤다. “그러면 붕붕 아야해. 다시 살살 내려놔 보자.” 말이 바로 통하지는 않았지만 아들은 약간 머쓱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 내일 또 놀다 보면 같은 잘못을 할 거고, 그러면 나는 또 다시 해보자고 얘기를 할 거다. 또 같은 일이 벌어지고 또 같은 말을 하겠지만 그게 다 배우는 과정일 것이다. 반복과 기다림, 내가 해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칼럼니스트 강백수(인스타그램 baeksoo_kang)는 2008년 시인으로 등단했고 2010년 싱어송라이터로 데뷔했다.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일상의 시적인 순간을 포착한다. 6시에 잠들던 예술가로 살다가 이제는 6시에 일어나는 아빠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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