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를 지나며 무더운 여름의 기세가 조금은 꺾인 느낌이 든다. 낮에는 여전히 무덥지만 새벽녘 날씨는 다소 쌀쌀해서 아침이면 이불을 덮은 채 잠에서 깨기도 한다. 그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더웠던 여름이었다. 실제로 기온이 그러했던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아들이 자라 밖에서 놀 수 있게 되었다는 이유가 크다. 올해 못지않게 더웠던 2018년을 비롯해 다른 여름들은 더우면 그냥 실내에 있으면 되는 것이었다. 피서 같은 말은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말이었다. 여름에 어딘가로 놀러가는 일은 모두 더워 속으로 뛰어드는 일이지 진정한 의미에서 더위를 피하는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는 자꾸 물놀이를 하고 싶어 하고, 새로운 것을 보고 싶어 하는 아들이 있다. 정말이지 집에 있고 싶은 날들이었지만 그럴 수 있는 자유는 이제 내게 없다. 그래서 힘겨웠던 여름이었지만 이제는 슬슬 세상이 다음 계절로 넘어갈 채비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오늘도 아내와 아들과 함께 짧은 외출을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내는 앞에서 운전을 하고 나는 아들과 뒤에 앉아 있는데 문득 아들의 신발이 보였다. 양말 없이 편하게 시원하게 신을 수 있는 여름 신발. 이모가 사준 이 앙증맞은 신발을 신고 아들은 여름 내내 물놀이도 가고 어린이 박물관도 가고 여행도 다녀왔다. 발등이 신발 모양으로 탔을 정도로 정말 잘 신었는데 문득 이 신발을 신을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씨가 조금 더 선선해지면 가을 겨울 신발을 꺼내어 신어야 할 것이고, 다시 내년 여름이 되면 아들의 발은 훌쩍 커져있을 테니 말이다. 작년에 입었던 가을옷과 겨울옷은 올해 또 입을 수 있을까? 한해 더 입혀보겠다고 조금 크게 샀던 까만 패딩은 어쩌면 한 번 더 입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재작년에 사서 작년까지 입혔던 예쁜 빨간 외투는 아마 이제는 좀 힘들지 않을까. 문득 서글픈 기분이 되었다. 이 작은 여름신발을 신고 바닥분수에 들어가 발을 동동 구르던 2026년 여름의 아들도, 소복하게 쌓인 눈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2025년 겨울의 아들도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된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시간이 생각보다 빠르게 흐른다는 사실을 부쩍 자주 떠올리곤 한다. 어떤 날은 조금 고단해서 시간이 너무 더디 흐른다는 느낌도 드는데, 어째서 그런 나날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세월은 이리도 빠르게 흐르는 것일까. 뒤집기도 할 줄 몰라서 역류방지쿠션에 누워 모빌을 바라보고 가만히 누워 있던 아들과 쪽쪽이를 입에서 빼면 금세 울음을 터뜨리던 시절의 아들을 사진과 영상 속에서 만나면,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그 작은 아기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바로 옆에 아들이 훌쩍 자란 모습으로 곁에 있는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하루에 ‘이거 뭐야?’를 수백 번 묻고, 도로 위의 경찰차와 포크레인을 보며 신나서 소리치는 지금의 아들 역시 곧 그리워지리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가뜩이나 이렇게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데 삶은 또 왜이리 짧은가. 며칠 전, 아버지는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나도 결혼이 빠르지 않았고 너도 아들을 늦게 본 편이라, 내가 우리 손주 대학 가는 건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미 칠순이 넘은 아버지는 아들이 스무살이 될 무렵에는 곧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신다. “요즘 세상에 아흔 정도 사는 건 대단한 일이 아니잖아요.” 나는 대수롭지 않은 척 말했지만 사실 그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때는 생각보다 금방 올 것이고, 내가 그 나이가 되는 시기도 내가 지금 생각하는 것보다 빠르게 다가올 것이다.
몇몇 친구들은 아들이 여섯 살 쯤 되면 육아가 확실히 편해진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어떤 사람은 자녀가 학교에 다니면서, 또 어떤 사람은 자녀를 독립시켜놓고 드디어 자신의 인생을 살 수 있게 되었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가끔은 아들이 빨리 자라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떼쓰지 않고 정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고 생각도 하고, 서로가 가지고 있는 생각도 주고받을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길 바란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런 생각은 아주 잠시 머릿속을 스치는 것일 뿐이고, 속에 품고 살 만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빠르게 흘려보내기에는 빠르게 달려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오늘, 이 계절, 이 시절이 소중하다 못해 아까울 지경이다. 잡아 두지는 못하더라도 스치는 장면 하나 하나 허투루 보내지 않고 기억속에 꼭꼭 눌러 담아둬야 한다.
어떤 시절을 보내면서 언젠가 지금을 그리워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은 조금 슬프기도 하지만 사실은 축복과도 같은 일이다. 그것을 모르고 흘려보내 나중에 후회하는 것보다야, 지금을 그리워할 언젠가를 떠올리며 조금 두려워하는 편이 덜 괴로운 일이다. 언제나 예쁜 지금의 아들과, 그 모습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아내와, 아직은 젊고 건강한 내가 한 집에서 평온한 하루를 보내는 지금이다. 영원하지만은 않을 내 인생의 화양연화가 바로 지금이다.
*칼럼니스트 강백수(인스타그램 baeksoo_kang)는 2008년 시인으로 등단했고 2010년 싱어송라이터로 데뷔했다.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일상의 시적인 순간을 포착한다. 6시에 잠들던 예술가로 살다가 이제는 6시에 일어나는 아빠로 산다.
【Copyrightsⓒ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