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우리 아이에게 일어날 줄은 차마…"
"성폭력, 우리 아이에게 일어날 줄은 차마…"
  • 김고은 기자
  • 승인 2013.11.26 17: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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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보호 못하는 아동 성폭력 대책 문제 심각

【베이비뉴스 김고은 기자】

 

이가온(45) 씨는 매스컴에서나 듣던 아동 성폭력이 본인의 딸도 당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어느 날 딸이 학원에서 집에 돌아오다 납치를 당하고서야 아동 성폭력이 아이와 가족에게 아주 가까이 있는 문제란 걸 알게 됐다. 다행히 아주 끔찍한 일은 피했지만 이 씨는 아직도 당시를 생각하면 아찔한 기분에 눈물이 먼저 흐른다.

 

이 씨의 딸을 납치했던 가해자는 이 씨의 집과 같은 길목에서 살고 있었다. 이 씨는 두려운 마음에 법원에 접근금지를 신청했다. 그러나 법원은 100미터밖에 안 되는 보호거리조차 허락해주지 않았다. 피해자는 이 씨의 딸이었지만, 전학과 이사는 가해자가 아닌 이 씨 가족의 몫이었다.


이 씨는 25일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여성가족부 주최로 열린 2013 성폭력 추방 주간 심포지엄에서 피해자 부모 대표로 참석해 성폭력 피해자 부모들이 부모의 입장에서 느끼는 성폭력의 문제점과 해결 방안에 관한 의견을 말했다. 성에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는 사회적 환경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하고 지켜야 하는지, 성폭력 피해자인 아이를 위해 어른들이 해줄 수 있는 조치가 무엇인지 피해 당사자의 입장을 반영해 설명했다.

 

이 씨는 “아이가 이런 일을 당했는데 피해자인 아이를 지킬 수 있는 법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우리 아이의 가해자는 전과도 없는 대학생이고 미수에 그쳤다며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법원에 탄원서도 넣어보고 이런저런 신청도 해봤지만 감감 무소식이었다”라며 억울한 심경을 토로했다.

 

한 해 13세 이하 어린이 성폭력 피해자는 1000여 명. 하지만 가해자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처벌을 받는 경우가 많다. 지난달 여성가족부가 한국여성정책연구원과 함께 분석한 2012 아동 청소년 대상 성범죄 신상정보 등록대상자 성범죄 동향을 보면 대상자의 절반에 가까운 47%는 법원 최종심에서 집행유예를, 43.2%만이 징역형을, 9.8%는 벌금형을 받았다. 미국의 경우 아동 성범죄자는 살인죄와 맞먹는 사형, 종신형 등에 처한다.

 

그런데 징역형을 받은 이들조차 합당한 형량을 받는 경우가 드물다. 성폭행 가해자 형량은 평균 47.6개월. 전 국민을 경악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조두순 사건의 가해자 조두순은 고작 12년형을 선고받아 수감 중이다.

 

피해자의 가족 입장에서는 처벌이 솜방망이 수준으로 끝나는 것도 분통 터지는 일이지만 가해자로부터 피해 아동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법의 수준이 얕아 끊임없이 두려움을 겪어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고역이다.

 

이 씨가 그랬듯 접근금지를 신청해도 최대 100미터 안에서 단 6개월 동안 아이를 지킬 수 있을 뿐이고, 이조차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내 아이가 가해자와 같은 지역에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 끔찍한데 가해자를 추방할 방법이 없어 결국 피해자 스스로 이사와 전학 등을 감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씨와 같은 이들이 모여 만든 시민모임 발자국은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접근금지명령의 거리 한도를 100미터에서 10킬로미터로 확장하고 가해자를 범죄 지역에서 추방하는 법안 마련을 위해 서명운동 등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2차 피해를, 또 다른 아이로의 피해를 완전히 차단할 수 있으리란 보장은 없다.

 

이 씨는 “겪고 보니 내 힘만으로는 내 아이를 지킬 수 없다는 걸, 모든 아이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이 마련돼야 내 아이도 지킬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광화문 등 거리 서명 운동과 온라인 서명 운동을 통해 이를 더 알리고 많은 사람들의 뜻을 모아 나와 우리 아이를 지킬 수 있는 법을 마련하는 데 힘을 보태고자 한다. 피해자의 고통을 보상해주고 범죄자를 적합하게 처벌할 수 있는 법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이들이 성에 관한 인식을 확립하고 주의 의식을 기를 수 있도록 부모가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전했다. 이 씨는 "우리나라에는 본인조차 성교육이 제대로 돼 있지 않은 부모가 대다수이고 자식의 성교육에 아예 관심도 없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요즘 아이들은 신체 발달뿐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굉장히 성숙해있지만 성에 관해서는 제대로 교육되지 않은 채 세상 다 아는 어른처럼 행동하는 경향이 크다"며 "아동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려면 너무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아동 대상의 최초 성교육 시기를 초등학교 1학년으로 앞당기고 부모부터 아이에게 바른 성교육을 해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열림 심포지엄에서는 청소년의 성범죄 예방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다양한 주제의 발표가 진행됐다. 이 씨를 비롯해 김한균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이유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등이 참석해 아동 청소년 성폭력 발생의 원인, 현황과 심각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좌장을 맡은 최영희 전 의원은 "자리에 참석한 부처 관계자는 오늘 나온 이야기들을 종합해 내년 정책 마련에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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