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시에 살인죄를! 국가에 책임을!"
환경단체 "옥시, 독성정보 의도적으로 무시"
【베이비뉴스 이유주 기자】
"원인규명과 사태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점 사과드린다."
"가습기살균제 사안과 관련해 좀 더 일찍 소통하지 못한 점에 대해 진심 어린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지난 18일과 22일 롯데마트와 옥시레킷벤키저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에 대해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는 2011년 임산부와 영유아 등이 원인 모를 폐질환으로 사망한 사건이 일어난 지 5년만의 일이다. 5년 만에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한 기업이 처음 공식적인 사과문을 발표하며 고개를 숙인 것.
하지만 지금까지 시민단체 환경보건시민센터가 공식적으로 집계한 가습기살균제 사망자 수는 228명. 사망자를 포함한 피해자는 무려 1528명에 달한다. 환경보건시민센터와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은 지난 5년간 가습기살균제 제조자와 국가에 책임을 묻는 촉구 활동을 이어왔지만, 제조사로부터 진정성 있는 사과, 이렇다 할 보상을 받지 못한 상황이다.
이와 관련 의학, 환경보건학, 법학, 사회학 등 각 분야에서 이 문제를 연구하고 파헤쳐 온 전문가들이 제조사와 국가의 책임을 증명하기 위해 나섰다.
22일 오전 서울 대학로 서울대학교 연건캠퍼스 교육관에서 열린 '옥시레킷벤키저에 살인죄를, 대한민국 정부도 법적 책임을' 기자회견에는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백도명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직업환경의학 교수 ▲박태현 강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환경법학 교수 ▲박동욱 방송통신대학교 환경보건학 교수가 참여해 제조사 살인죄 처벌의 필요성과 근거에 대해 논하는 한편, '정부도 이 사건에 큰 법적, 도의적 책임이 있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 "옥시에 살인죄 적용해야"
먼저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가습기살균제 사건의 피해규모를 추산하고,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낸 제조업체 옥시레킷벤키저(이하 옥시)에게 살인죄를 적용할 근거를 제시했다.
최 소장은 "2010년 인구를 기준으로 가습기살균제 사용자는 894만~1087만 명이고 가습기살균제 고농도 노출자 및 피해자는 29만~227만 명에 달할 것"이라며 "227만 명 중 아주 일부의 피해자만 표면 위로 드러나 있다"고 설명했다.
최 소장이 가습기살균제 사용자와 피해자를 추산한 근거 자료는 2011년 질병관리본부의 조사 결과와 2015년 서울대 보건대학원 직업환경건강연구실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옥시 측이 호서대학교에 의뢰한 노출평가 실험 결과 등이다.
이 자료들에 따르면 가습기살균제 사용경험이 있는 자는 18.1%~22%,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하고 건강상 피해를 본 자는 3.33%~20.9%다.
최 소장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습기살균제로 죽고 다쳤을지 아무도 모른다. 반드시 제조사 옥시에 살인죄를 적용해야 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최 소장은 옥시에 살인죄를 적용할 판단 근거로 ▲개발 단계에서 유해성 검토를 하지 않았다는 점 ▲가습기살균제에 들어가는 원료 개발업체인 SK케미칼로부터 가습기 살균제 원료의 독성 정보가 담'물질안전보건자료(MSDS·화학물질 취급설명서)를 받았음에도 의도적으로 무시한 점 ▲판매기간 내내 제기된 건강 피해 문제를 무시한 점 등을 꼽았다.
또 영국계 기업인 옥시가 유럽의 BRP('바이오사이드' 제품의 안전증빙 제조사 책임 제도)를 모를 리 없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한국에 이 제도가 없다는 이유로 안전 입증 의무를 피했다는 점을 들었다. 바이오사이드(Biocide)는 균과 해충 등을 제거할 목적으로 사용하는 생활용품이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문제를 뜻한다.
최 소장은 "이 밖에도 서울대, 호서대 실험 결과 조작, 연구진 매수, 홈페이지에 올라온 피해자의 글 삭제 등의 행위는 구속수사의 이유가 된다"고 전했다.
◇ "국가의 잘못, 엄격히 따져야"
박태현 강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환경법학 교수는 그간 이 문제를 방관했던 국가의 잘못을 꼬집고, 정부의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박 교수는 "검찰은 사건발생 후 5년이 지나서야 전담팀을 꾸려 공소시효를 넘기지 않기 위해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는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의 의중에 따른 것"이었다며 "왜 이런 사건의 수사가 한 사람의 의중에 좌우돼야 하는지 모르겠다. 범죄피해자보호법 등을 개정해 이같이 심각한 유의 사건의 경우, 피해자에게 직접 수사를 요청할 수 있는 권리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 교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해자의 행위가 악의적이고 반사회적일 경우 실제 손해액보다 훨씬 더 많은 손해배상을 하게 하는 제도) 도입의 필요성도 제시했다.
박 교수는 "현행 법 시스템 아래에서는,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껌 값 수준의 배상액을 주면 그만이었다. 그간 기업 보호만을 외쳤던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끝으로 박 교수는 "국가는 '제품 사용에 따른 문제이므로 민사문제로 해결하라'고 방관해왔다. 이제 재판부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또 이를 위해 어떤 제도가 필요한지 숙고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 밖에도 박동욱 방송통신대학교 환경보건학 교수는 "호흡기는 4~5개월 동안 흡수된 살균제 화학물질을 제거할 능력이 없는 경우, 급성 또는 만성 폐 손상이 발생될 수밖에 없다"며 "전 세계 어디에도 생활용품 속 화학물질이 이렇게 치명적인 문제를 초래했던 적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백도명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직업환경의학 교수는 "옥시는 자신의 주장을 위해 입맛에 맞는 실험 결과만을 제시하며 왜곡을 시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편,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앞으로 ▲피해자들과 대규모 집단민사소송 준비 ▲범시민적 옥시 불매운동 및 한국축출운동 ▲피해자 찾기 캠페인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또 전문과들과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폐 이외의 장기영향, 기저질환영향, 암 등 만성영향, 정신건강영향(트라우마) 등을 연구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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