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줘도 ‘권리’는 못 준다… 아동수당 타협의 본질
돈은 줘도 ‘권리’는 못 준다… 아동수당 타협의 본질
  • 정리 = 최규화 기자
  • 승인 2017.12.08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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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사회수당 첫 모델, 보수정치 선별복지의 저주에 무릎

[특별기고] 장흥배 노동당 정책실장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인 아동수당. 하지만 당초 모든 아동들에게 조건 없이 지급할 예정이던 아동수당은 소득 상위 10%를 제외하고 지급될 예정이다. 베이비뉴스 자료사진 ⓒ베이비뉴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인 아동수당. 하지만 당초 모든 아동들에게 조건 없이 지급할 예정이던 아동수당은 소득 상위 10%를 제외하고 지급될 예정이다. 베이비뉴스 자료사진 ⓒ베이비뉴스

스웨덴의 발테르 코르피와 요아킴 팔메 교수는 1998년 발표한 논문에서 ‘재분배의 역설’이라는 복지이론을 발표했다. 복지가 빈곤층에 집중해 선별적으로 시행될 경우 오히려 재분배 규모가 축소돼 빈곤층에 불리하고, 반대로 모든 계층을 대상으로 한 보편복지가 빈곤층에게 더 큰 혜택을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여기서 재분배란 조세를 매개로 소득이 상위 계층에서 하위 계층으로 이전되는 것을 말한다.

재분배의 역설이 나타나는 이유는 정치 때문이다. 즉 복지 혜택에서 중산층 이상을 제외시킬 경우 소득 상위 계층은 재분배를 위한 조세에 강력하게 저항하며 이러한 저항에는 사회적 명분까지 주어진다.

재분배의 역설을 ‘열등처우의 원칙’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기초생활수급자들을 복지 혜택을 통해 차상위 계층보다 더 부유해지게 만들 수 없다. 차상위 계층이 차라리 기초생활수급자가 되기를 선호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 실업수당을 최저임금 이상으로 지급해서는 안 된다. 많은 사람들이 일하려 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열등처우의 원칙이다.

이런 이유로 빈곤층에 복지를 집중할수록 전체 재분배 규모는 작아지게 된다. 상대적으로 보편복지가 발달한 유럽 복지국가들과 선별복지 중심의 한국을 비교하면 재분배의 역설이 그저 책상에서 만들어진 이론이 아니라는 점을 실감할 수 있다. 

지난 5월 대선에서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후보는 소득 하위 50%의 초·중·고 학생들에게 월 15만 원 상당의 아동수당을 약속한 바 있다. 베이비뉴스 자료사진 ⓒ베이비뉴스
지난 5월 대선에서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후보는 소득 하위 50%의 초·중·고 학생들에게 월 15만 원 상당의 아동수당을 약속한 바 있다. 베이비뉴스 자료사진 ⓒ베이비뉴스

◇ 빈곤층 복지 집중할수록 전체 재분배는 작아지는 ‘역설’

지난 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아동수당 삭감 예산안은 한국의 보수정치가 보편적 사회수당을 도입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사건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선별복지를 정책적 기조로 삼고 있는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이 보편복지에 대한 분명한 신념이 없는 정부 여당과 타협해, 심사 없이 모두에게 지급하는 보편복지를 좌절시킨 사건이다.

왜 그런가? 2인 이상 가구 소득 상위 10%를 제외함으로써 삭감한 예산 규모는 정부 여당의 원안 예산 1조 1000억 원 규모의 10%도 채 안 된다.

그런데 지난 5월 대선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소득 하위 50%의 초·중·고 학생들에게 월 15만 원 상당의 아동수당을 약속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역시 소득 하위 80% 이하의 만 0∼11살 아동들에게 월 10만 원의 아동수당을 지급하겠다고 공약했다. 두 후보가 공약한 아동수당 모두 정부여당안보다 예산 규모가 훨씬 컸다. 예산 규모가 문제의 본질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2012년 대선 당시 모든 노인들에게 기초연금 20만 원을 지급하겠다고 공약한 박근혜 씨가 공약을 뒤집어 소득 하위 70%에 해당하는 노인들로 대상을 선별한 이유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소득 상위 30%의 노인들은 보수 지지율이 월등하게 높은 계층인데도 이들을 배제한 것은 보편복지가 가져올 사회체제의 변화를 거부하는 정치적 의사 표시인 것이다.

소득 상위 10%를 제외함으로써 아동수당은 모든 아동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국민의 권리가 아니라 선별적·잔여적·시혜적 성격을 갖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이 관철시키려 했고 정부 여당이 수용한 아동수당 예산안 삭감의 본질이다.

노동당은 연령, 소득, 자산, 직업 유무에 관계없이 모든 국민에게 월 40만 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자는 안을 정책으로 내걸고 있다. ⓒ노동당
노동당은 연령, 소득, 자산, 직업 유무에 관계없이 모든 국민에게 월 40만 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자는 안을 정책으로 내걸고 있다. ⓒ노동당

◇ 빈곤층에 집중하는 선별복지일수록 저복지 국가다

박근혜 정부의 기초노령연금 공약 파기로 문재인 정부의 아동수당 공약은 심사 없이 모든 구성원에게 보편적으로 지급하는 사회수당의 첫 모델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보수정치가 주도하는 한국의 정치 질서는 선별복지의 저주를 결국 넘어서지 못했다.

한국은 아동가족 부문에서 GDP의 1.4%를 지출하고 있고, 이는 OECD 최하위 수준이다. OECD 35개 회원국 중에서 31개국이 아동수당을 도입했으며, 이 가운데 20개국이 소득이나 자산에 따른 배제 없이 모든 아동에게 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최악의 저출산 국가인 한국은 앞으로도 아동수당을 늘려야 한다.

그러나 소득 상위 10%를 제외함으로써 앞으로 아동수당 예산의 증액 시도는 세금을 가장 많이 내는 계층의 거센 조세저항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물론 소득 상위 10%가 자신들에게도 아동수당을 지급하라고 요구하는 상황도 가정할 수 있다. 재분배의 역설은 서민들이 이를 적극 지지하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노동당은 연령, 소득, 자산, 직업 유무에 관계없이 모든 국민에게 월 40만 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자는 안을 정책으로 내걸고 있다. 이는 재벌·고소득·불로소득에 대한 누진적 중과세를 통해 한국의 총조세부담률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이상으로 끌어올리면 충분히 가능하다.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기본소득은 아동, 청년, 노인 등 특정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범주형 기본소득이라는 단계를 거쳐 진행될 수도 있다. 범주형 기본소득일지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범주에 속하는 모두에게 심사 없이 지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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