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 이유주 기자】
진정성 있는 경영, 상생기업 이미지를 내세우던 유한킴벌리가 10년간 입찰 담합을 주도해 놓고, 정작 자신은 법의 허점을 이용해 면죄부를 받았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반면, 담합에 가담했던 유한킴벌리의 을인 대리점들은 그대로 과태료 폭탄을 맞게 돼 유한킴벌리에 배신감을 토로하고 있다. 소비자들 역시 깨끗한 이미지로 마케팅하던 유한킴벌리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 공정위, 유한킴벌리 135억 원대 담합 '적발'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지난 13일 2005년부터 2014년까지 유한킴벌리가 자사 23개 대리점과 함께 정부입찰 담합을 벌인 사실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담합 규모는 자그마치 135억 원대.
유한킴벌리는 조달청 등 14개 정부 및 공공기관이 발주한 마스크, 종이타월 등 41건의 용품 구매 입찰에서 대리점들과 가격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담합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공정위는 담합한 유한킴벌리 본사에게 과징금 2억 1100만 원, 대리점 23개에게는 3억 9400만 원을 부과하고, 유한킴벌리 본사를 검찰에 고발 조치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실제로 유한킴벌리는 과징금과 검찰 고발을 면제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리니언시' 제도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리니언시 제도에 따르면 가장 먼저 담합 사실을 자신 신고한 기업이 과징금 100%를 면제받는다.
유한킴벌리는 담합을 주도한 뒤 공정위에 자수했고, 리니언시 제도로 면죄부를 받았다. 담합에 공모한 대리점들만 각각 수천만 원에 달하는 과징금을 물게 된 셈이다.
◇ 유한킴벌리 자수…대리점만 죗값 치르게 돼
담합을 했음에도 처벌을 받지 않게 되자 유한컴빌리는 '법망을 교묘히 피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자진신고 사실을 대리점에게 알리지 않고 덤터기를 씌우는 등 다분히 의도적으로 뒤통수를 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유한컴빌리가 자진신고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안 대리점들은 배신감을 토로하는 상황이다. 한 대리점 관계자는 "피해라면 일종의 피해라고 볼 수도 있다"며 "본사에서 과징금을 보전해주겠다고 해서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이번 담합 사건은 갑을관계가 얽혀 있어 비판이 더욱 거세다. 본사(갑)가 시키는 일을 거절하기 어려운 대리점(을)만 죗값을 고스란히 치르게 됐다는 것. 막상 불법행위를 주도한 유한킴벌리는 공정위 제재에서 교묘히 빠져나갔다는 여론이다.
이와 관련해 유한킴벌리는 지난 19일 입장을 공식 발표해 "2014년 2월 담합 행위의 위법성을 인식한 후 인식한 직후 공정위도 즉시 신고를 했다. 다만, 자진신고와 관련된 비밀유지 의무로 당사는 이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고 해명했다.
공정거래법은 리니언시로 처벌 면제를 받게 되면 자수한 위법 당사자와 공정위 관계자는 이 사실을 외부에 발설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담합에 가담했던 대리점들에게 알리지 않은데 대해서는 '자진 신고의 비밀유지 의무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유한킴벌리 측은 "공정거래 관련 위법성을 인식할 경우 즉시 신고 및 제도개선을 하는 정책을 갖고 있다"며 "당사는 공정위 조사에 성실히 임했다"고 전했다.
◇ 유한킴벌리가 깨끗하고 정직?…부모들 "신뢰 깨졌다"
일각에서는 유한킴벌리의 입장이 억울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자수를 해서 담합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 기업 이미지 실추가 큰데, 과징금을 피하기 위한 자수는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유한킴벌리 관계자는 "외부에 알려지는 자체가 큰 리스크인데, 당사는 그걸 감수하고도 자진신고를 했다. 그런데 이렇게 평가 받아 아쉽다"며 "개별 대리점에 대해서도 이미 추가적인 손해를 책임지겠다고 약속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미 소비자들은 담합 사실과 리니언시 제도 악용에 대한 의혹으로 유한킴벌리에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담합에 공모한 대리점 배신에 이어 제품을 믿고 쓰는 소비자까지 배신을 했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유한킴벌리 생리대를 사용하는 김미정(가명·32·서울) 씨는 "깨끗하고 정직한 브랜드로 이미지 메이킹을 하면서도 실제 기업 운영에 있어선 정직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아쉬운 부분이 많다"며 "제품에 대한 신뢰가 깨졌다"고 말했다.
특히 기저귀, 물티슈 등 유한킴벌리의 육아용품을 사용하는 엄마들도 원성이 높다.
18개월 아기를 키우는 최희정(가명·32·서울) 씨는 "기저귀에서 유해물질이 검출됐을 때도 다른데 보단 낫겠지 싶어 기업 이미지 믿고 그냥 썼는데, 이젠 정말 믿을 회사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며 "차라리 중소기업에서 만든 착한 기저귀나 물티슈를 찾아볼까 싶다"고 토로했다.
17개월 아기 엄마 박가영(가명·35·광명) 씨는 "제품도 의심이 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전에 한참 하기스기저귀를 믿고 썼고, 발암물질 사건 때도 배신감이 들었는데…"라며 씁쓸한 심정을 전했다.
이외에도 누리꾼들은 "온갖 깨끗한 척하더니…", "여태껏 이왕이면 유한킴벌리 제품 써야지 했는데 실망이네", "돈 앞에 장사 없구나"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유한킴벌리는 이런 논란이 일자 입장문을 발표해 "개별 대리점 등의 구체적인 과징금 규모 확인 후, 예상치 않은 손실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하겠다는 입장을 이미 발표한 바 있다"며 "이를 위한 조치로 과징금 대납을 포함한 여러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이번 사건으로 리니언시 제도에 대한 비판도 함께 쏟아지고 있다. 위법 행위를 면제해준다는 지적이다. 자수하는 것이 범법행위에 대한 반성이라기보다 처벌을 모면하려는 잔꾀라는 것. 실제로 지난 2012년부터 2016년 6월까지 이 제도를 이용해 기업들이 면제 또는 감면받은 과징금은 8709억 원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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