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라는 말의 힘
"괜찮다"라는 말의 힘
  • 칼럼니스트 백운희
  • 승인 2018.07.03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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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를 키우는 아이] 아이가 아플 때 건네고 싶은 말

그토록 기다리던 윗니를 빼고 아이는 곧 아프기 시작했다. ⓒ백운희
그토록 기다리던 윗니를 빼고 아이는 곧 아프기 시작했다. ⓒ백운희

 “꼬마 도깨비다.”

한창 유치가 빠지고 영구치가 나고 있는 아이는 며칠 전 앞니 두 개를 뺐다. 헤헤 웃으면 허전해진 잇몸으로 송곳니만 보여 영락없이 도깨비 같다. 처음 아랫니가 빠질 무렵 치과에서 엑스레이를 찍었다가 잇몸 속에 숨겨진 이빨 씨앗들을 보며 경이로움을 느꼈더랬다. 저 작은 입 안에 그토록 많은 씨앗들이 담겨 있구나.

또래보다 영구치가 나오는 게 늦어선지 아이는 어서 빨리 유치들이 빠지고 영구치가 돋아나기를 기다려왔다. 발치의 아픔에도 해맑던 아이의 표정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다시 찾아오지 않을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서 그날 우리는 사진을 찍고, 일기를 썼다.

“드디어. 그토록 고대하던 앞니 빼던 날.

그리고 어린이 도깨비로 거듭난 너.

월드컵 응원으로 아파트가 흔들리는 환호 속에도

다행히 쿨쿨.

이빨요정에게 줄 앞니 두 개

베개 밑에 넣어두고

이 하나, 이 둘. 단지 의젓하게 참아냈을 뿐인데

세상 존재하는 온갖 칭찬과 애정을 받는구나, 너는.

그래. 그리 환대받는 삶을 살아라.

누구든 환대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라.

작은 이빨 두 개를 쓰다듬으며 엄마의 바람은 그것 뿐”

삶이란 얄궂다. 즐거움만 찾아오라는 법이 없고 힘든 고비를 꼭 몰고 오니 말이다. 어젯밤, 길거리를 걷다 행인에게 발가락을 밟혔다. 높은 굽 구두에 소재가 딱딱한 나무여서인지 아니면 내가 운이 억세게 없었는지 네 번째 발가락에 충격이 집중됐고, 통증으로 걸음을 내딛기조차 힘들었다. 밤을 지내고 찾아간 병원에서는 뼈에 실금이 갔다고 했다. 

조치를 하고 아픈 발을 이끈 채 하교 길 마중을 갔더니 아이가 나를 보자마자 “엄마 학교에서 토를 했어요. 그리고 지금 너무 졸려요” 한다. 처음이었다. 지금껏 장염 증상을 한 번도 보인 적 없는 데 학교에서 토를 했다고 하니. 머리에 손을 얹자 열감이 느껴진다. 보건실에서도 미열이 있어 한참 누워있었다고 했다. 점심을 거의 먹지 않았는데도 식욕이 없다는 아이는 계속 졸려 했다. 물을 먹이고 시원하게 물수건을 올려 주는 데도 열은 계속 오른다. 해열제를 먹여야 할 것 같다. 상비 해열제를 먹이고 잠시 뒤 아이는 잠이 들었다.

병원을 가야 하겠는데 나는 발가락을 다쳐 움직이기 힘들고, 아이는 몸이 늘어지기만 한다. 남편은 늦은 퇴근이 예고돼 있었다. 안 좋은 일은 꼭 함께 일어난다더니 상황이 안타깝고 마음에 먹구름이 낀다. 그리고 아이가 아플 때면 돋아나는 나의 걱정과 자책은 꼬리를 물고 또 물고 이어진다.

‘장염이 유행이라는 데 그런 걸까?’

‘이가 빠질 때 몸살처럼 아이들이 아프다는 데 그래서인가?’

‘요 며칠 내가 바빠서 아이에 소홀한 게 아닐까?

‘매일 먹던 유산균이 떨어졌는데 챙겨 먹지 않아서 그런가?’ 

질문을 반복하지만 답은 없다. 초조하지만 지켜봐야 하는 기다림이 남아 있을 뿐.

사실 평소 나는 아이에게 느긋한 편이다. 늘 “괜찮아, 그럴 수도 있어”를 달고 사는 엄마. 그게 나였다. 유치원에 다닐 때는 걸어서 넉넉히 10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도 우리는 20~30분을 등원 하는 데 썼다. 20개월부터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해 맞벌이 부모의 사이클에 맞춰 이른 아침 등원해야 했던 아이에 대한 보상심리 때문인지 직장을 그만두고 바야흐로 ‘아침이 있는 삶’을 확보하자 여유를 찾고 싶었다. 졸려서 눈도 뜨지 못하는 아이의 발에 양말을 신기고, 팔에 옷을 끼우면서 정신없이 어린이집 차량에 태워 보내야만 했던 날들을 할 수 있다면 씻어내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이 시기가 아니면 언제 이렇게 늑장을 부려보겠나 싶은 마음도 녹아 있었다. 아파트 단지 옆 화단의 변화를 보며 계절을 이야기하고, 줄 지어 가는 개미를 한 참이나 관찰하고, 눈이 오는 겨울에는 그늘진 빙판길을 걷다가 ‘눈의 여왕’ 놀이를 하기도 했다.

“자, 이제 우리는 숨을 한 번 들이쉬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해. 여기는 눈의 여왕이 다스리는 땅이거든. 다른 곳보다 바람이 차고 땅이 미끄럽지. 오늘도 맞설 준비가 됐나요?”

그러면 아이는 비장하게 주먹을 쥐고 “네” 하며 신나게 달려갔다.

우리의 늑장 등원이 지각으로 굳어지자 남편은 “그래선 안 된다”며 걱정 가득한 반응을 보였다. 아이에게 제 시간에 준비하는 버릇을 심어줘야 한다며. 맞는 말이다.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으레 “괜찮아, 그런 때도 있는 거야. 상황이 닥치면 다 하게 되어 있는 법이니 나중 일은 그때 생각하면 돼”라며 상황을 넘기곤 했다.

그런데 아이가 아프면 달라진다. 아이가 미열이라도 나면 안절부절 못하고 다음 상황을 미리 걱정하는 나와 그런 모습을 보며 “괜찮아. 그런 때도 있는 거지”라고 얘기하는 남편의 모습이 역전되는 것이다. 나는 전혀 괜찮지가 않았다.

이번 겨울 열감기로 한 달여를 힘겨워할 때는 더욱 그랬다. 해열제를 먹고 열이 잡히더니 다시 열이 오르기 시작해 상비약 해열제를 먹였는데도 계속 열이 떨어지지 않았다. 독감 검사에도 음성으로 나왔고, 목이 붓지도 않고 청진에도 별 이상이 없다는 데 왜 열이 떨어지지 않는 걸까?

결국 다시 병원을 찾아 독감 검사를 해보려 했지만 여덟 살 인생 처음으로 선보이는 극력한 거부의 몸짓에 한 시간 만에 결국 검사를 못하게 된 딸을 보며 나는 절대 괜찮지 않았다. 폭설을 뚫고 업고 안아가며 찾아간 병원이었다. 집에 돌아오니 온몸이 땀으로 젖어있었다. 문득 아이를 보며 ‘너야말로 괜찮지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돌봐야 할 것은 아이의 몸뿐만 아니라 마음이라는 점과 함께. 그래 천천히 가자.

"괜찮아, 그런 날도 있는 거야, 무서웠지?" 아이를 다독이며 다시금 나에게도 주문을 건다. 괜찮다. 아이에게 이겨낼 시간을 주자. 다만 한 가지 소망이 남는다. 아이들이 아픔 없이 자랄 수는 없을까? 대신 아파줄 수 없는 엄마에게 찾아오는 우문이다.

*칼럼니스트 백운희는 여전히 육아와 관련한 이야기에는 흔들리는 눈빛과 팔랑거리는 귀를 가지고 초등생 딸을 키우고 있는 전업모입니다. 아이와 함께 부모로 성장하며 겪은 시행착오들을 통해 조금 덜 실망하고 좌절하는 육아 팁을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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