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돌 아이가 어쩌다 ‘요리=여자’로 생각하게 됐을까”
“두 돌 아이가 어쩌다 ‘요리=여자’로 생각하게 됐을까”
  • 김재희 기자
  • 승인 2018.10.26 2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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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조부모 교육 프로젝트 ‘세 살 성평등 세상을 바꾼다’

【베이비뉴스 김재희 기자】

지난 25일 오전 서울 양천구 양천육아종합지원센터에서 열린 ‘세 살 성평등 세상을 바꾼다 : 조부모 맞춤형 교육 프로젝트’ 세 번째 현장에서 교재로 사용된 소책자 일부. ⓒ서울시·서울시여성가족재단
25일 오전 서울 양천구 양천육아종합지원센터에서 열린 ‘세 살 성평등 세상을 바꾼다 : 조부모 맞춤형 교육 프로젝트’ 세 번째 현장에서 교재로 사용된 소책자 일부. ⓒ서울시·서울시여성가족재단

# 보육교사 A 씨는 만 2세반 담임이다. 인형 업고 놀기를 한창 좋아할 나이다. 그에게 얼마전부터 고민이 생겼다. 할머니 손을 잡고 어린이집을 오는 한 남자아이가 있는데, 어느날 할머니가 그 아이의 놀이 모습을 보게 된 것. 아이는 마침 포대기를 둘러 인형을 업은 채로 놀고 있었다. 아이 할머니는 아이에게 다가가 포대기를 풀고 A 씨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우리 아이에게 이런 놀이 시키지 마세요.” 

조부모의 영유아 양육은 해가 갈수록 늘고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0~2세 영아 양육을 조부모에게 도움받는 비율은 2004년 23.6%에서 2012년에 37.8%로, 2014년에는 53%까지 증가했다. 3~5세 유아 또한 2014년 기준 36.4%가 조부모 손에서 자라고 있다. 

“여자애가 이렇게 드세면 못 써!” 할머니 또는 할아버지는 영유아를 기르며 무심코 이런 말을 내뱉는다. 조부모의 전통적인 성역할 개념은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특히 5살 이하 영유아기에 학습한 성역할 고정관념과 성정체성은 잘 바뀌지 않는다. 이때 형성한 가치관은 평생 가는 셈이다. 사회 분위기에 발맞춘 조부모 육아 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 성평등 문화 확산 사업으로 시작해 세 번째 맞이한 조부모 성평등 교육

서울시는 조부모를 위한 일상 속 성평등 문화 확산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시와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지난해 11월 소책자 ‘세 살 성평등, 세상을 바꾼다’를 제작·배포한 데 이어, 지난 9월 13일부터 강북구를 시작으로 같은 이름의 조부모 교육을 진행 중이다.

25일 오전 서울 양천구 양천육아종합지원센터에서 열린 ‘세 살 성평등 세상을 바꾼다 : 조부모 맞춤형 교육 프로젝트’ 세 번째 현장을 찾았다. 양천구에 거주하는 조부모와 부모 27명이 참석한 이날 교육은 김정원 한국성서대학교 영유아보육학과 교수가 강의를 맡았다. 

지난 25일 오전 서울 양천구 양천육아종합지원센터에서 열린 ‘세 살 성평등 세상을 바꾼다 : 조부모 맞춤형 교육 프로젝트’ 세 번째 현장에서 강의를 맡은 김정원 교수.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지난 25일 오전 서울 양천구 양천육아종합지원센터에서 열린 ‘세 살 성평등 세상을 바꾼다 : 조부모 맞춤형 교육 프로젝트’ 세 번째 현장에서 강의를 맡은 김정원 교수.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김 교수는 지난해 서울시여성가족재단과 함께 예비·현직 영유아교사 대상 영유아 성평등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영유아 교사부터 어린이집 원장까지 두루 거친 김 교수는 자신의 경험을 강의에 녹여냈다. 적절한 상황을 보여주고 친절한 설명을 곁들여 참석자들의 공감을 끌어냈다.

“학자들은 ‘성평등하지 않은 사회에서 가정은 평화롭기가 어렵다’고 말합니다. 남성들이 가계를 부양하는 일을 담당하고 여성은 가사와 육아를 전담했던 시절이 있어요. 요즘은 그렇지 않죠. 그래서 여기 계신 분들이 손자와 손녀를 돌봐주고 계시죠. 딸이나 며느리가 직장생활을 한다면 돌봄과 가사노동도 같이 하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인데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적극 수용되고 있지 못하죠.” 

강의는 서울시가 배포한 소책자를 교재 삼아 진행했다. 이 책자는 일상에서의 성평등 구현을 위해 손자녀를 양육하는 조부모의 ‘성평등 교육’을 위한 교육자료로 만들어졌다. 먼저 ‘손녀, 손자의 방은 어떻게 꾸며져 있나요?’, ‘여자, 남자에게 어울리는 단어가 있나요?’와 같은 질문을 던져 성평등 교육이 왜 필요한지 이야기 나눠보는 시간을 가졌다. 

◇ “성평등 양육법은 아이 위해서도 좋아… 자유로운 분위기서 선택 기회 줘야”

“한 두 돌밖에 안 된 아이들도 놀이 현장에서 ‘이건 남자 놀이, 저건 여자 놀이’라고 말하는 걸 들을 수 있어요. 어쩌다 이 아이들은 ‘요리는 여자가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을까요? 남자아이가 인형을 업거나 유모차를 태워서 데리고 다니는 놀이를 하고 싶더라도 주변 분위기가 이상하다고 느끼면 아이들은 곧장 ‘아이를 업어주는 일은 나한테 적합하지 않은가보다’라고 생각해요.”

김 교수는 “남자 또는 여자 경험으로 나누는 건 아이들에게 손해”라고 말했다. “아이가 여러 가지 놀이를 하도록 격려하는 게 도움이 된다”며 아이들 발달에 다양한 경험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이어, 손자녀의 성역할 발달단계, 성평등 의식과 관련한 용어 등으로 성평등 교육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했다.

‘생각해보기’ 챕터에서는 실생활에서 15가지 사례를 제시하고, 올바른 반응을 제안했다. 머리가 긴 남자아이에 “사내아이 머리가 저렇게 길어서야…”라는 타박보다 개인의 개성 있는 머리 스타일을 존중하는 뜻을 담아 “긴 머리 스타일이 잘 어울리는구나”와 같은 반응을 보여주자는 것이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25일 오전 서울 양천구 양천육아종합지원센터에서 열린 ‘세 살 성평등 세상을 바꾼다 : 조부모 맞춤형 교육 프로젝트’ 세 번째 현장.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성평등한 양육법은 아이들의 잠재력을 존중하는 육아법이기도 하다. 김 교수는 “생각보다 아이들은 역량 있고 유능하다”며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아이들이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게 하고, 스스로 잘 맞는 것을 찾을 기회를 주는 것이 아이들을 위한 좋은 양육법”이라고 설명했다.

마지막 ‘실천하기’에서 김 교수는 동화책 ‘아빠! 머리 묶어 주세요’, ‘산타클로스는 할머니’를 소개했다. 성평등한 메시지를 담은 대표적인 동화책 ‘종이봉지 공주’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또한, 성평등한 손자녀 양육 팁 여섯 가지를 전했다. ▲남자·여자색 구분 말고 좋아하는 색을 선택하게 할 것 ▲아이의 마음에 공감하고 인정할 것 ▲남자·여자직업으로 구분하지 말고 원하는 꿈을 찾도록 응원할 것 등의 조언을 담았다.

영유아 성평등 교육을 들은 참석자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지난 9월 강북구와 동작구에서 진행한 두 차례 교육에서 참석자 25명 중 23명이 교육 내용에 만족을 표했다. 이들은 교육이 끝난 뒤 이어진 강의 평가에서 “무의식적으로 하던 행동과 말들이 지혜롭게 말과 행동을 해야겠다”, “알고 있는 게 많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의견을 남겼다. 

한편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은 서초구건강가정지원센터와 함께 조부모 교육 프로젝트 ‘세 살 성평등 세상을 바꾼다’ 4차 교육을 다음달 2일 서울 서초구청에서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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