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 최규화 기자】
“무려 10년의 세월이다.”
대법원의 ‘태아 산재’ 인정 소식을 환영하는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의 성명 첫 문장이다.
29일 대법원(주심 대법관 김상환)은 제주의료원 여성 노동자들이 제기한 요양급여신청반려처분취소 사건(2016두41071)에 대해, 원고 패소 판결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원심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는 출산아의 선천성 질병에 관해 여성 노동자의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없다고 본 원심판결을 ‘파기환송’ 한 사례로, 태아의 건강손상 또는 출산아의 선천성 질환의 업무상 재해 여부에 관한 최초의 판례다.
사건의 시작은 이렇다. 제주의료원에 근무하던 간호사들 중 2009년에 임신한 사람은 15명이었다. 그 중 6명만이 건강한 아이를 출산했고, 2010년 4명은 선천성 심장질환아를 출산하고 다른 5명은 유산했다.
이들은 “임신 초기에 유해한 요소들에 노출되어 태아의 심장 형성에 장애가 발생하였으므로 선천성 심장질환아 출산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를 청구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상 재해란 근로자 본인의 부상·질병·장해·사망만을 의미하며 원고들의 자녀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요양급여 부지급 처분을 했다.
그렇게 사건은 법적인 다툼으로 흘렀다. 1심은 원고의 승. 하지만 2014년 서울행정법원은 “출산아의 선천성 질병에 관하여 산재보험법상 요양급여의 수급권자가 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출산아의 선천성 질병은 출산아의 질병일 뿐 근로자인 원고들 본인의 질병이 아니”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 뒤로 6년이 더 흘러, 10년을 채우고서야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쟁점은 “여성 근로자의 업무에 기인한 ‘태아의 건강손상’ 또는 ‘출산아의 선천성 질환’을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로 포섭할 수 있는지”였다.
◇ 의료연대본부 “여성노동자 모성 보호 계기… 매우 중요한 판결”
대법원의 판단은 ‘태아 산재’를 인정하는 것이었다. “산재보험법의 해석상 임신한 여성 근로자에게 그 업무에 기인하여 발생한 ‘태아의 건강손상’은 여성 근로자의 노동능력에 미치는 영향 정도와 관계없이 산재보험법 제5조 제1호에서 정한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에 포함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결한 것이다.
또한 “여성 근로자는 출산 이후에도 모체에서 분리되어 태어난 출산아의 선천성 질병 등에 관하여 요양급여를 수급할 수 있는 권리를 상실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모체와 태아는 ‘한 몸’ 즉 ‘본성상 단일체’로 취급된다. 태아는 모체 없이는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할 수도 없으며, 태아는 모체의 일부로 모(母)와 함께 근로현장에 있기 때문에 언제라도 사고와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 여성 근로자에게 그 업무에 기인하여 발생한 태아의 건강손상은 여성 근로자의 노동능력에 미치는 영향이나 그 정도와 관계없이 여성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판결문 중에서)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는 판결을 환영했다. 의료연대본부는 같은 날 성명을 통해 “여성노동자의 모성을 보호함은 물론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은 기형아를 출생할 수 있는 약품을 다루었을 뿐만 아니라 인력난 속에 임신 상태에서도 장시간동안 높은 노동강도로 일할 수밖에 없었다”며, “공공병원의 확충과 인력충원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임이 다시 확인되었다”고 이번 판결의 의미를 짚었다.
끝으로 의료연대본부는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의 10여년 넘는 법정싸움이 또다른 노동자들에게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는 산재보상보험법의 시급한 개정이 필요하다”며, “‘태아는 노동자가 아니라서 산재보상보험법의 수급자가 될 수 없다’는 현실에 뒤떨어진 산재보상보험법법률을 즉각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Copyrightsⓒ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