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차 사고가 나도 아이들 걱정이 먼저인 어쩔 수 없는 엄마
남편이 차 사고가 나도 아이들 걱정이 먼저인 어쩔 수 없는 엄마
  • 칼럼니스트 이은
  • 승인 2021.10.05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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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영부영 육아 인류학] 미국에서의 자동차 교통사고 경험

큰 아이와 작은 아이 모두 집에서 쉬는 날, 남편은 출근을 해야했기에 아침 일찍 집을 나서고 아이들과 나는 오랜만에 뒹굴뒹굴 한가로운 시간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런데 남편에게서 전화가 온다. 아직 학교에 도착했을 시간이 아닌데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전화를 받았다. “어쩐 일로 이 시간에 전화를 다 했어요?”라고 묻자 어수선한 배경 소음을 뚫고 남편이 차분하게 “심각하거나 그런 건 아닌데 사고가 났어요”라고 말하는 것 아닌가. 순간 너무 놀라서 입만 벌리고 있다가 옆에 있는 아이들이 놀랄까봐 얼른 방 안으로 들어가서 전화를 받았다.

 

아빠와 통화하는 것 같으니 아이들이 졸졸 따라와 큰 효과는 없었지만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남편에게 다시 조용히 되물었다. “다친 데는 없어요?” 남편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대답했지만 상황을 물어보자 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신호를 지키지 않은 상대 차가 남편의 차를 들이받은 바람에 에어백이 터졌다고 했다. 다행히 주변 차량의 운전자들이 사고 지점을 막아주고 경찰관과 소방관들, 그리고 구급차를 불러주었고 옆에서 도와주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일단은 사고 지점이 집에서 10~15분 거리라서 내가 직접 가보기로 했다. 남편은 오지 말라고 하는데 아무래도 걱정이 돼서 가 보기라도 해야할 것 같았다. 혹시라도 내가 가서 도움이 되거나 수습해야 할 일이 있을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혼자 가면 더 빠르겠고 아이들이 놀랄 일도 적겠지만 먼 미국에서 친인척이 가까이 사는 것도 아니고 코로나 상황이니 근처 지인 댁에 아이들을 맡기기도 부담이 될까 조심스러웠다. 서둘러 아이들 외출복을 챙겨주고 허둥지둥 집을 나서려다 한 템포 멈추고 심호흡을 했다.

 

아이들까지 태우고 운전을 하는데 흥분한 상태로 해서는 안될 것 같았다. 심호흡을 몇 번 하고는 사고 지점으로 향했다. 운전해서 가는 와중에 남편이 타고 가던 차에 아이가 안타고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평소대로 등교하는 날이었다면 아침 일찍 수업이 없는 경우에는 남편이 큰 아이들 등교시키는 경우가 왕왕 있었기 때문이다. 현장에 도착해서 아이들이 상황을 보기 전에 내가 먼저 재빨리 사고현장을 보았다. 혹시라도 아이들이 놀랄 상황일까봐 미리 확인하고 싶었다. 다행히 파손된 아이들 아빠의 차량은 견인차에 실리고 있어서 차가 부서진 부분이 잘 안보였고 소방관과 경찰관들이 현장을 정리하고 있는 상태였다.

 

아이들 아빠는 보이지 않았다. 사고현장을 기웃거리자 소방관 한 분이 다가와서 도울 일이 있는지 물었다. 지금 견인차에 실리고 있는 차량의 가족인데 운전자는 괜찮으니 어디에 있는지 묻자 큰 부상은 없어 보였지만 확실한 검사를 위해 구급차에 실려 인근 병원에 응급실로 호송된 상황이라고 했다. 전화기를 확인하니 그 사이 남편이 내게 몇통의 전화를 했었는데 정신없이 운전하느라 전화가 왔는지 조차 몰랐었던 것이다. 아이들이 걱정스럽게 차 밖을 쳐다보기에 얼른 달려가서 아빠는 괜찮으신데 혹시라도 안보이는데 아픈 곳은 없는지 의사 선생님이 검사를 해주려고 병원에 간 상태라고 알려주었다.

 

아빠는 응급실에서 검사를 받는 중인데 병원에도 들어갈 수 없는 엄마와 아이들은 본의 아니게 어린이 박물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은
아빠는 응급실에서 검사를 받는 중인데 병원에도 들어갈 수 없는 엄마와 아이들은 본의 아니게 어린이 박물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은

남편과 짧은 통화를 하고 다시 응급실로 향했지만 만 16세 이하의 방문객은 응급실에 들어갈 수 없도록 하고 있어서 입구에서 담당자에게 부탁해 휠체어에 탄 남편과 짧은 이야기만 잠시 나눌 수 있었다. 에어백이 터지면서 머리가 아프고 귀가 울렸을 뿐 가벼운 타박상 정도만 입은 상황이었다. 천만 다행이었다. 혹시나 모를 부상을 확인하기 위해서 의사가 권고한대로 CT 촬영이 잡혀있었다. 남편은 자신은 검사가 끝나면 우버를 타고 귀가 할 테니 아이들이 지루하고 힘들 테니 집에 가 있으라고 했다.

 

하지만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집에 갈 수는 없었고 마침 병원 근처에 아이들을 위한 작은 어린이 박물관이 있기에 그 곳으로 향했다. 마냥 차 안에만 있을 수는 없고 아이들이 혹시나 걱정을 더 심하게 할까 싶어서 아무 문제가 없다는 느낌을 주고 싶은 마음도 컸다. 다행히 어린이 박물관에는 관람객이 거의 없었고 미국의 다른 많은 곳들과는 달리 백신을 맞은 사람들도 모두 마스크를 쓰게 되어있었다. 결국 아빠는 홀로 응급실에서 검사를 받고 엄마와 두 아이는 어린이 박물관에서 커다란 블럭도 쌓고 역할 놀이도 하고 작은 종이 로켓을 만들어 발사시키기도 했다. 나도 아이들과 함께 오랜만에 외출 아닌 외출을 하니 오히려 남편을 걱정하는 초조한 마음이 가라앉았다.

 

부모는 얼마나 조심해야 하는 것들이 많은지 다시금 깨닫는 하루였다. 물론 내가 아무리 조심해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운 없이 닥치는 사고들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현재 할 수 있는 일은 부모로서 항상 조심하고 또 안전을 추구하는 것뿐이다. 이 넓은 미국 땅에 서로 완전히 의지 할 수 있는 것은 우리 부부 뿐이라는 것, 우리 아이들을 완전히 책임질 수 있는 것은 미국에선 우리 둘뿐이라는 사실이 더 절절하게 느껴지는 하루였다.

천우신조로 남편은 큰 부상 없이 괜찮았지만 남편의 출퇴근 차량은 결국 폐차를 하게 되었다. 차량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미국에서는 새로 차를 구입하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 보험의 도움에도 코로나 시기에 엄청나게 치솟은 차 가격을 전부 감당하기에는 부담스럽지만 아이들 아빠가 크게 다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다행이 아이들은 그저 이 날이 어린이 박물관에 간 날, 아빠 차가 사고가 났지만 아빠는 건강하게 돌아온 날로 기억돼서 그저 다행 또 다행이다.

*칼럼니스트 이은은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현재는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작업을 하고 있다. 스스로가 좋은 엄마인지는 의구심이 들지만 아이들과 함께하는 순간순간마다 성장하는 중이라고 믿는 낙천적인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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