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의 밑반찬
남편이 양손 무겁게 반찬 가방을 들고 퇴근했다. 안 봐도 뭔지 알 것 같았다. 시어머니가 며칠 전에 “반찬 뭐 해주랴?” 하고 물어보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반찬 수혈(!)에 나도 깜짝 놀랐다. 가끔씩 어머니는 반찬을 과잉(?) 공급해 주시는데 그 내역을 읊어보면 우선 김치. 어머니는 김치를 일 년 내내 담그시는 것 같다. 만드는 김치에 따라
남편이 양손 무겁게 반찬 가방을 들고 퇴근했다. 안 봐도 뭔지 알 것 같았다. 시어머니가 며칠 전에 “반찬 뭐 해주랴?” 하고 물어보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반찬 수혈(!)에 나도 깜짝 놀랐다. 가끔씩 어머니는 반찬을 과잉(?) 공급해 주시는데 그 내역을 읊어보면 우선 김치. 어머니는 김치를 일 년 내내 담그시는 것 같다. 만드는 김치에 따라
지난해 9월, 코로나가 나아진 틈을 타서 요가원 3개월 회원권을 끊었다. 주 3회였고 가급적 빠지지 않고 다니려고 했지만 거른 경우도 많았다. 운동보다 자주 쉰 건 글쓰기였다. 지난해 가을이 되기 전까지 거의 단행본 두 권 분량을 1년 가까이 썼지만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다. 드문드문 투고를 하다 말았고 공모전에서도 떨어졌다.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졌다. 3
어쩌다 이런 말이 나왔는지 나도 모르겠다. “제가 엉덩이 밀어 드릴게요”라니. 뭐라도 쓰고 싶은 글이 있으면 쓸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드리겠다는 마음이었는데, 말하고보니 이런 문장이 되어 있었다. 내가 한 말이지만 말하는 순간에 알아챘다. 기막힌 비유라고. 이런 건 적어야 해. 지금 당장. 왜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면 그럴 때 있지 않나? 일부러 준비해둔 말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이 문장을 기억할 거다. 지난 2017년 박근혜 탄핵 정국 때 광화문 광장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부르던 노래의 첫 마디. 내가 갑작스럽게 이 문장이 선명하게 떠올랐던 것은 2주 전 이태원 압사 참사 피해자를 추모하러 간 현장에서였다. 그날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우리 이태원 갈래?" 2022년 10월 29일 이전이었다면
내가 다니는 요가원에서는 수업이 끝난 뒤 자신이 사용한 요가 매트와 도구들을 스스로 정돈한다. 소독약을 뿌린 물티슈로 매트를 닦고, 도구에 소독약을 뿌려 처음 제자리에 가져다 둔다. 십여 명 남짓한 회원들이 수업이 끝남과 동시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탓에 물티슈를 뽑으려고 줄을 서는 일도 벌어진다. 처음에 나는 그것이 그저 코로나 때문일 거라 생각했다. 직
1월 9일 중학교 졸업 이후 기다리기 진이 빠진다고 느낄 때쯤 예비 고1 아이의 경기도 평준화지역 고등학교 입학 배정 결과가 발표되었다. 지난 1월 31일이었다. 휴. 이제 끝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대입이 좀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아이가 사는 집에서 조금 떨어진 타 지역 고등학교 배정을 원했기에 더 마음을 졸였던 것 같다. 발표 하루 전날 아이가 말했다.
코로나 이전에는 늘 연말이면 가족 모임을 해 온 조리원 동기 O가 있었다. 남자들의 군대동기만큼이나 끈끈하다는 엄마들의 조리원 동기, 일명 ‘조동’. 그와의 인연은 올해 아이들이 예비고1이니 무려 16년의 세월이다. 코로나 때문에 서로 조심하는 차원에서 연말 모임을 계속 하지 못하다가, 2022년 마지막 날 조촐하게 밥이나 한 끼 하자며 집에 오라고 했다.
17일은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날이다. 나도 수능을 봤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20여 년 전 그날, 안양의 한 고등학교 고사장 책상에 앉아 벌벌 떨고 있던 내가 생각난다. 시간이 아주 많이 흘렀지만 그날, 그때의 기억은 뚜렷하다. 수능 한파라고 했던가.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에 엄마는 혹시라도 밥 먹다가 체할까 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셨다
10월 29일, 세종시에서 강의를 한 뒤 지인들과 저녁을 먹고 올라오는 길이었다. 서울에 도착할 무렵, 이태원 압사 참사를 알게 되었다. “어머나, 어떡해.” 그 후로 단톡방에서는 계속 새로운 소식을 알리는 글이 분 단위로 이어졌다(언론사에서 일하는 나의 직업적 특성이다). 다소 늦은 시간 집에 도착해서 텔레비전을 틀었을 때 사고 지점인 해밀톤호텔 주변은
“엄마, 나 오늘 생결(생리공결제도, 혹은 생리 결석의 줄임말) 할래.” “응, 그래.” “엄마도 오늘 생휴인데, 우리 둘 다 쉬네.” 중3 큰아이는 선생님께 연락한다고 방으로 들어갔고, 나는 둘째 아이 등교를 챙긴다고 거실에서 서성거리던 그때, 둘째가 막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보며 묻는다. “엄마 나는 생리 결석할 수 없어?” “응?” “학교 가기
이 바지를 산 게 언제인지도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여름이면 항상 꺼내 입는 바지. 분명 입었는데 안 입은 것 같은 느낌이라 더운 날에는 이만한 옷이 없었다. 해가 갈수록 엉덩이 부분이 좀 바랜다 싶었는데 드디어 며칠 전 찢어졌다. 그랬다. 세상에는 찢어질 때까지 입는 바지도 있었다. 그래도 나는 이 바지와 헤어질 결심을 하지 못했다. 찢어져도 그냥 입었
'쓰라고 보는 책' 일곱 번째는 「박완서 마흔에 시작한 글쓰기」입니다. 이미 읽으신 분들은 알겠지만 이 책은 박완서의 글쓰기에 대한 내용은 아니었어요. 작가를 덕질하는 것을 넘어 박완서의 연구자가 된 저자 양혜원의 에세이입니다. 그가 읽은 박완서 정도랄까요. 그래서 ‘고통에서 삶의 치유로’라는 책의 한 줄 설명이 저는 여러 이야기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박완서
남편의 휴가 마지막 날. 여행으로 미뤄 두었던 집안일을 할 때였다. 침대 위에서 세상 편한 자세로 휴대폰을 하고 있는 둘째 아이(12세)의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이 좋게 보일 리 없던 나는 “너, 오늘 할 일은 했니?” 하고 물었다. “오늘 할 일? 없는데?” “없긴… 어젯밤에 안 쓴 일기 오늘 아침에 쓴다며.” 그제야 주섬주섬 일어나 일기장을 찾는 아이
"글쓰기는 왜 어려울까요?" 이 질문에 소설가 장강명은 한 칼럼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논리나 어휘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남들 앞에 공적으로 나설 수 있는 공인이 되는 훈련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라고요. 그래서 많은 작가들이 글쓰기 수업에서 강조하는 게 있죠. 뭘까요? 쓴 글을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라는 거예요. 한 작가는 독자에게 글을 보여주
자주 보지 않아도 만나면 편한 후배가 있습니다. 이 후배는 저처럼 ‘회사를 다니면서 글을 쓰는 사람’이에요. 그래서인지 글 쓰는 고민을 이야기 하면 제법 통한다고 느낄 때가 많았습니다. 그날도 그랬습니다. 후배와 나눈 많은 이야기 가운데, ‘어쩜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네’ 싶은 게 있었어요. 그건 바로 ‘발견되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후배의 경우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고 모처럼 글 쓰는 분들과 대면 모임을 가졌습니다. 글을 쓰게 된 이유부터 시작해서 글쓰기 루틴, 글쓰기 관련해서 최근 하고 있는 일들을 공유하는 말의 홍수 속에서 유난히 제 마음에 남은 게 있었어요. ‘내가 쓴 글이 점점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괜찮은 글쓰기 수업을 찾고 있다는 말도 했지요. 저는 ‘갸우뚱’ 했습니
몇 년 전, 이런 제안을 받은 적 있어요. 어느 출판사 편집자가 제게 '돈이 되는 글쓰기’를 주제로 책을 내면 어떻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 되물었어요. “네? 제가요? (웃음) 왜죠? 돈 되는 글 써 본 적 별로 없는데요, 글 써서 돈도 많이 못 벌고(또 웃음)…” 편집자는 웃으면서 말을 이었습니다. “적든 많든 원고료를 지급하고 있는 매체에서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요?” 이렇게 물은 이는 60대 중년 남성이었습니다. 시민기자로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기사로 채택되는 일보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았던가 봅니다. 답답한 마음에 이런 질문을 한 것이겠고요. 그 질문에 제가 답변을 해야 하는 입장은 아니었지만 만약 답변을 해야 한다면 어떻게 말해줄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
지난번 글에서도 밝혔지만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을 출간하고 베이비뉴스 기자가 저를 인터뷰했는데요. 그때 한 인터뷰 기사 제목이 “나를 기록하는 습관, 이 시대 엄마들에게 권하고 싶어요” 였어요. 정말로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을 콕 집어주셔서 그런지 계속 곱씹게 되는 문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나를 기록하는 습관’은 어떻게 시작해야 좋을까.
최근 다시 내 방 병이 도졌다. 대부분의 30평대 아파트는 방이 세 개, 화장실이 두 개다. 아이들이 커서 방을 하나씩 주고 나면 안방이 자연스럽게 부부의 방이 되는데 코로나 시대엔 안방의 역할이 하나 더 생겼다. 바로 재택러의 사무실. 낮에 안방은 남편의 사무실로 쓰인다. 남편과 나는 재택을 동시에 할 때가 잦다. 남편은 매일 화상 회의를 하는 데다,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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