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니는 요가원에서는 수업이 끝난 뒤 자신이 사용한 요가 매트와 도구들을 스스로 정돈한다. 소독약을 뿌린 물티슈로 매트를 닦고, 도구에 소독약을 뿌려 처음 제자리에 가져다 둔다. 십여 명 남짓한 회원들이 수업이 끝남과 동시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탓에 물티슈를 뽑으려고 줄을 서는 일도 벌어진다.
처음에 나는 그것이 그저 코로나 때문일 거라 생각했다. 직원 한 사람이 짧은 쉬는 시간 내에 혼자 소독을 하고 도구들을 정돈하려면 다음 수업에 지장을 주기 때문에 수강생들의 도움을 받는 거라고. 그런데 3개월 넘게 요가원을 드나들면서 그 이유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요가 매트를 닦으며 저절로 이런 말을 하게 되어서다.
‘아이고, 은경아. 잘 안 되는 몸으로 이 좁은 매트에서 운동하느라 고생했다. 매트 너도 고생 많았다. 그래... 내가 쓴 자리는 내가 스스로 정리하는 게 맞지. 이걸 안 닦았으면 내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할 시간이나 있었을까.'
한 시간 동안 요가를 수련하는 것은 육체적 고통을 견디는 일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마음을 견디는 일이었다. 피곤해서 졸리는 마음, 따라 할까 말까 망설이는 마음, 틀리는지 맞는지 헷갈리는 마음, 이 정도에서 멈출까 말까 하는 마음, 너무 못해서 찌그러지는 마음들이 언제나 요가 매트 위에서 격렬하게 싸움을 벌이곤 하기 때문이다.
그 치열한 전투에서 패하지 않고 잘 하든 못 하든 한 시간을 견뎌준 나에게 "수고했다", "잘 견뎠다", "오구오구" 다정하게 말을 걸어주니 몸이 힘든 것도, 굽혀지지 않는 몸에 대한 불만도, 견디지 못한 정신에 대한 나약함도, 귀찮아서 미루고 싶었던 마음도 다 사라지는 것 같았다.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낸 것 같은 마음까지 들었다.
더 좋은 건, 그 마음이 나에게서 머물지 않고 타인에게로 확장되었다는 것이다. 스스로 자신이 사용한 자리를 정돈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쓰는 다른 사람까지 배려하는 마음으로 이어짐을 깨달았다. 다음 이 매트를 사용하는 사람도 나처럼 수련을 잘 끝냈으면 하는 마음, 유혹하는 여러 마음을 뿌리치고 부디 잘 이겨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구석구석 닦는다. 혹시라도 내가 남길지 모를 머리카락이나 땀들을 정성껏 닦아낸다. 그들의 수련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올해 6학년이 되는 아이의 책상은 늘 뭔가로 수북하다. 입던 옷, 책, 공책, 먹다 남은 과자 봉지, 여름에 쓰던 손선풍기, 즐겨 보는 소설책 등. 그 외 자잘한 무언가로 노트 하나 펼 수 없는 공간을 보아 온 지가 1년 가까이 된 것 같았다. 저 책상에서는 뭘 한들 제대로 될 것 같지 않아 한숨만 푹푹 쉬었더랬다. 그러다 요가를 하고 돌아온 어느 날 나는 특단의 대책을 세웠다. 정리하고 난 뒤의 뿌듯하고 개운한 마음을 아이도 느껴봤으면 해서다.
"둘째야... 책상 대청소 좀 하는 게 어떨까? 책상에 아무것도 없게 하는 조건으로 2만 원 줄게. 단, 계속 유지해야 해. 이 상태를!"
사실, 이것만은 피하고 싶었는데 기어이 보상을 내밀었다. 마침 좋아하는 소설책 굿즈 공간을 마련해야 했던 아이는 흔쾌히 그러겠다고 답했다. 이럴 수가. 안 치워도 괜찮다고 노래를 부르던 아이였는데... 굿즈 제작사에 감사 인사라도 전해야 할까.
버릴 것부터 정리하니 공간이 생겨났고, 생겨난 공간에 굿즈를 채우니 책장에도 책상 위 물건을 수납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책상에 노트만 놓일 정도로 정리가 되다니... 물론 정리보다 중요한 건 유지일 터. 다행히 일주일 정도 지난 지금까지 아이의 책상은 매우 쾌적하다.
아이의 생활이 크게 달라진 건 없다. 넓어진 책상에서 숙제도 하고 책도 보고 핸드폰도 한다. 하지만 아이의 모습을 보는 나의 마음은 이전보다 훨씬 산뜻해졌다. 전과 달리 이젠 아이가 뭘 하든 잘 될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아이도 전과 달라진 책상을 보며 깨달았으면 좋겠다. 무슨 일이든 뒷정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그것이 주는 만족감이나 뿌듯함을 느껴봤으면 좋겠다. 또 그래야 언제나 새로운 마음으로 뭔가를 시작해 볼 마음도 생겨날 테니까. 그 마음으로 뭔가를 시작할 때 너 자신만이 아닌 다른 사람을 쪼금이라도 생각해 준다면 더 바랄 게 없겠고.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성에 대해 아는 것부터 솔직하게 말하고 싶어서 성교육 전문가에게 질문한 성교육 책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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