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태원 갈래?" 조금 용기를 냈습니다
"우리 이태원 갈래?" 조금 용기를 냈습니다
  • 칼럼니스트 최은경
  • 승인 2023.02.26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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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육아] '10.29 이태원 참사 기억의 길'에 가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이 문장을 기억할 거다. 지난 2017년 박근혜 탄핵 정국 때 광화문 광장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부르던 노래의 첫 마디. 내가 갑작스럽게 이 문장이 선명하게 떠올랐던 것은 2주 전 이태원 압사 참사 피해자를 추모하러 간 현장에서였다. 그날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우리 이태원 갈래?" 2022년 10월 29일 이전이었다면 맛집이나 카페에 가자는 말로 들렸을 거다. 하지만 이젠 그럴 수 없게 되었다. 그날 이후 "이태원에 가자"는 말은 무섭거나, 꺼려지거나, 아프거나, 외면하고 싶거나, 슬프게 들리는 말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보고 싶었다. 가야만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조금 용기를 냈다.

유난히 날씨가 좋았던 2월의 어느 날. 녹사평역 인근에서 점심을 먹고 이태원역 1번 출구 쪽으로 걸어 갔다. 그 골목이 점점 가까워질수록 마음도 무거워졌다. 걷는 방향으로 왼쪽에 사고가 난 골목길이 있었는데 쉽게 발길이 돌려지지 않았다. 마치 깃발이 날리듯 포스트잇이 가득한 벽면을 마주하는 순간엔 더 무거운 추 하나가 마음에 내걸리는 것 같았다.

"우리 세계 음식 문화 거리 입구로 가서 돌아오자." 같이 간 후배에게 말했다. 휑한 골목길을 스치듯 지나 호텔 앞으로 조금 걷다가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주변 상가 문들은 상당수가 닫혀 있었다. 이태원 상권이 예전 같지 않다는, 이 근처 사는 언니의 말을 실감했다. 호텔 뒷편은 그늘이 깊게 드리워져 있었다. 대낮인데도 저녁같은 깊은 어둠이었다.

기사에서 보던 현장을 실제로 마주하는, 확인하는 기분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영화 속 한 장면이라고 해도 믿을 법한 뉴스 속 현장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생각이라고는 어쩌다가, 도대체 왜, 어떻게 이런 식의 한 문장으로 채 완성되지 않는 말들 뿐이었다. 그저 이 길을 지났을 뿐인데 왜 가족에게 돌아오지 못한 걸까. 이 질문만 계속 되뇌어졌다.

호텔 뒤편은 한낮에도 어둡지만, 골목길만은 햇살이 환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최은경
호텔 뒤편은 한낮에도 어둡지만, 골목길만은 햇살이 환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최은경

드리워진 그늘이 끝난다 싶을 무렵 사고가 났던 골목길이 다시 나타났다. 환한 빛이 골목을 그대로 비추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텅 빈 골목을 추모객들이 채워주고 있었다. 우울한 기분이 조금 걷혔다. 다행이다. 잊지 않고 찾아주어서. 그때였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문장이 떠올랐던 것은.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고, 진실은 침몰하지 않으며,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도.

여러 마음이 혼재된 상태로 뒤엉킨 채 골목길을 걸어내려왔다. 내려오면서 호텔 벽면에 붙은 추모 메시지를 하나씩 읽었다. 전부를 읽을 수는 없었지만 그리움을 담은, 미안한 마음을 전하는, 애틋한 마음을 쓴 손글씨들을 보았다. 안동에서 올라왔다는 고등학생 아이의 긴 편지도. 회사 후배와 이름이 같아서 더 기억에 남았던 주영 씨를 그리워 하는 이들의 글도 만났다. 그러다 벽의 끝에서 본 문장 하나. '기억은 힘이 셉니다.' 눈으로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읽으면서 생각했다. 기억은 기록되어야 한다고. 사진을 찍는 행동조차 조심스러웠지만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 같아서 카메라에 담았다. 잊지 않기 위해서 조금 용기를 냈다.

'10.29 이태원 참사 기억의 길'에 찾아온 추모객들. ⓒ최은경
'10.29 이태원 참사 기억의 길'에 찾아온 추모객들. ⓒ최은경

그곳에 있는 내내 마음은 서늘했지만 몸은 따뜻했다. 이 골목길을 찾아준 사람들이 춥지 않도록, 이 골목길에 남은 영혼들이 쓸쓸하지 않도록 빛이 계속 비추고 있는 듯했다. 하늘이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위로인 것처럼.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 나갔다. 발길이 닿은 곳은 녹사평역 분향소. 향을 피우고 묵념을 했다. 그리고 나서야 희생자들 얼굴을 보았다. 이지한 배우님도, 아까 벽에서 사연을 읽은 주영 씨도 그리고 05년생 아이도. 그러니까 내 큰 아이와 2살 차이 밖에 나지 않는 희생자의 앳띤 얼굴 앞에서는 속절없이 속울음이 터져버렸다. 어쩌자고 네가 거기 있니... 이 말이 절로 나왔다. 내가 엄마라서 그런 걸까. 아이 엄마의 슬픔이 느껴지는 것도 같았다. 돌아오는 길, 계속 말이 없던 후배가 입을 뗐다.

"선배, 고맙습니다. 사실 아까 밥 먹으면서도 가지 말자고 말할까 그랬어요. 아직 준비가 안 된 것 같아서. 그런데 다녀오길 잘 한 것 같아요."

"아, 그랬어? 몰랐네... 근데 나도 다녀오길 잘 한 것 같아. 기사로만 보던 현장을 직접 보니까 느낌이 굉장히 다르더라고. 이런 말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다크 투어한 기분이랄까. 다크 투어를 하는 것은 기억하기 위함이잖아. 불편하다고 외면하면 안 될 것 같아. 그런데 나 말고도 찾아주는 사람들이 많아서 다행이더라. 광화문 분향소로 통합된다고 하니 거기도 가봐야겠어. 찾아주는 사람들이 많아야 할 것 같아. 그래야 기억하지 않을까.다른 사람들에게도 한번 가보라고 해주고 싶네."    

그래서 잊지 않으려고 이 글을 쓴다.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하기에. 기록되지 않은 기억은 또 잊히고 말테니까. 물론 나도 이 글에서 재차 썼듯 쉬운 일은 아니다. 조금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외면하면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다. 당연한 건 아무것도 없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세상 역시 누군가의 용기에서 비롯된 것임을 역사에서 이미 확인하지 않았나. 내가 방문한 골목길의 정식 명칭은 '10.29 이태원 참사 기억의 길'이었다. 이름 대로 기억되고,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제대로 규명되었으면 좋겠다.

'10.29 이태원 참사 기억의 길'. ⓒ최은경
'10.29 이태원 참사 기억의 길'. ⓒ최은경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성에 대해 아는 것부터 솔직하게 말하고 싶어서 성교육 전문가에게 질문한 성교육 책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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