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가 된 아이들, 효자·효녀 아닌 가족돌봄아동입니다"
"보호자가 된 아이들, 효자·효녀 아닌 가족돌봄아동입니다"
  • 기고=진수
  • 승인 2023.12.11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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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의 시간에 붙잡힌 아이들] 9. 가족돌봄아동·청소년 20세 진수(가명)

베이비뉴스와 초록우산은 가족돌봄아동·청소년에 대한 인식 개선과 지원 필요성을 공론화하기 위해 '돌봄의 시간에 붙잡힌 아이들' 연속 특별기고를 마련했습니다. 고령, 장애, 질병 등으로 도움이 필요한 가족을 보살피는 아동·청소년은 성장을 위한 '나의 시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가족을 돌보면서도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제도적인 지원 환경을 만들어 가기 위한 사회적 인식과 공감이 필요합니다. 매주 월요일 이에 관한 아이들과 복지 현장,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들려드립니다. -편집자 말

가족돌봄아동·청소년 20세 진수(가명) 모습. ⓒ초록우산
가족돌봄아동·청소년 20세 진수(가명) 모습. ⓒ초록우산

저는 10살 때부터 어머니를 돌보는 가족돌봄아동·청소년으로 살아왔습니다. 제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에 어머니가 쓰러지셨고, 저는 큰집에 맡겨졌습니다. 어머니는 다시 건강을 찾지 못했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 저는 어머니의 보호자가 되었습니다. 초등학생이었지만, 저는 병간호를 위해 학교를 결석하거나 병원에서 밤을 새우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어머니는 계속되는 입·퇴원, 나빠지는 건강 상태로 인해 갈수록 약해지셨고 저는 실질적 가장으로 지내야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어머니를 혼자 돌보는 저를 안타까워하면서 동정의 눈빛으로 바라봤습니다. 또 편찮으신 어머니를 보살피는 착한 아이라고 칭찬했습니다. 이런 시선과 이야기를 듣다 보니 아픈 부모를 간호하고 부양하는 당연한 일을 하면서도 종종 이를 속상하게 느끼는 제가 점점 싫어졌습니다. 이런 돌봄과 자기혐오가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살아가던 저는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스스로를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게 됐습니다.

고교 시절, 저는 공여자로 어머니 간이식 수술에 참여했고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쳐 집에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이때 저는 처음으로 어머니를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에 그간 깊이 고민해보지 못한 ‘나’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그럴수록 미숙한 아동·청소년기에 부모님을 돌보려 학교를 결석하고 이로 인해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며 친구들과 보통의 시간도 보내지 못하는 것은 문제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가족돌봄은 가족이기 때문에 해야 하는 일이 분명하지만, 누군가의 도움도 받아야 하는 성격의 일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10년 이상 어머니를 돌보면서도 스스로 가족돌봄아동·청소년이라는 것을 인지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개념이 존재한다는 것조차 초록우산을 만나면서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보호받아야 할 아이가 보호자가 된 상황을 문제로 인식하는 것을 방해한 가장 큰 원인은 저와 같은 상황의 아이들을 ‘효자’ 아니면 ‘효녀’라고 칭하는 주변의 평가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학교에서 가족돌봄이 결석 사유로 충분히 인정받기 힘든 환경을 만들고, 어린 나이에 짊어진 돌봄 노동의 문제를 털어놓기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사회가 어린 나이에 가족돌봄 상황에 있는 아이들이 스스로 도움을 요청하고, 비슷한 처지의 다른 친구의 손도 잡아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에서부터 가족돌봄아동·청소년 개념을 알려주고 교육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인식이 자리 잡기만 한다면, 분명 우리 사회도 ‘영 케어러’ 등 용어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는 외국 이상의 관심과 지원을 기대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많은 가족돌봄아동·청소년들이 가족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제도와 지원책이 마련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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