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 합병증으로 시각장애 생긴 어머니를 돌보는 한 고등학생의 이야기
당뇨 합병증으로 시각장애 생긴 어머니를 돌보는 한 고등학생의 이야기
  • 기고=구슬
  • 승인 2024.02.26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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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의 시간에 붙잡힌 아이들] 20. 가족돌봄아동 18세 구슬(가명)

베이비뉴스와 초록우산은 가족돌봄아동·청소년에 대한 인식 개선과 지원 필요성을 공론화하기 위해 '돌봄의 시간에 붙잡힌 아이들' 연속 특별기고를 마련했습니다. 고령, 장애, 질병 등으로 도움이 필요한 가족을 보살피는 아동·청소년은 성장을 위한 '나의 시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가족을 돌보면서도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제도적인 지원 환경을 만들어 가기 위한 사회적 인식과 공감이 필요합니다. 매주 월요일 이에 관한 아이들과 복지 현장,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들려드립니다. -편집자 말

가족돌봄아동 18세 구슬(가명)이 어머니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초록우산
가족돌봄아동 18세 구슬(가명)이 어머니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초록우산

나는 6년 전 엄마의 보호자가 되었다. 당뇨 합병증으로 시각장애가 생긴 어머니 대신 집안 일을 하고, 늘 불안함과 초조함에 귀가를 서둘러야 하는 일상이 그때부터 시작됐다. 아픈 엄마를 돌보는 일은 내게 책임감으로 다가왔다. 수학여행처럼 며칠씩 집을 비워야 하는 학교 행사는 꿈조차 꾸기 어렵게 되었고, 때때로 ‘나는 누가 돌봐주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문제는 어디에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부모가 건강한 다른 아이들과 나를 비교하면서 억울하고 서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말할 곳도 없었고 이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 여유이고 사치처럼 느껴졌다. 

그러던 내게 ‘나를 위한 삶’을 생각하게 된 계기가 생겼다. 2023년 여름, 학교 선생님의 소개로 초록우산 가족돌봄아동 지원사업에 참여하게 되면서다. 사업을 통해 나는 엄마를 위해 많은 시간을 쓰고 보호자로 살아가고 있지만, 사실은 나도 보호받아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가족을 돌보며 사는 다른 아이들을 알게 되면서 지금 나의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아울러 지원금을 통해 운동, 공부, 문화생활 등 평소 해보고 싶지만 하지 못했던 여러 경험을 해보면서 내가 원하는 것을 고민해 볼 수 있었다. 

우리는 학교에서 가족돌봄아동이 누구인지, 가족돌봄아동인 경우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배우지 않는다. 그래서 가족돌봄아동은 자신을 지원이 필요한 대상으로 생각하지 못하며, 도움을 원하더라도 어떻게 요청해야 할지 모른다. 또한, 가족돌봄 위주로 단순하고 반복적으로 살다보니 지원이나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어른들을 만나기도 어렵다. 어른들을 자주 만나기 어려운 일상을 보내다 보니, 어른들도 가족돌봄아동이 누구고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른다고 하는 것 아닐까. 

하지만 가족돌봄아동을 찾고 지원하는 일은 생각보다 쉬울 수 있다. 아동 가장 가까이에 있는 어른들이 좀 더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이들의 말을 신경 써 들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가 알기 어려운 여러 지원 정보나 인생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면 좋겠다. 나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던 학교 선생님이 있었고, 그 선생님의 소개 덕분에 지원사업을 알게 되어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믿을 수 있는 어른이 생긴다면, 가족돌봄아동들도 좀 더 자신의 어려움을 털어놓을 수 있고 무엇이 필요한지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주변에서 나처럼 가족을 돌보는 아이가 있다면 ‘착한 아이’라는 칭찬보다 ‘가족돌봄아동은 지원받을 수 있다’고 알려주시면 좋겠다. 특히, 가족돌봄아동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와 지역사회에서 아이들 일상과 환경에 좀 더 세심한 관심을 보내주신다면 더 많은 아이들이 부담과 불안을 덜고 삶의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아직 보호가 필요한 우리들에게 ‘혼자 힘으로 모든 것을 다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른들이 도와줄테니 어려움을 이야기 하라’는 응원과 함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시길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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