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의 닫혀있는 내면세계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우리 아이의 닫혀있는 내면세계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 칼럼니스트 문이재
  • 승인 2025.03.03 14: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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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불가능한 독보적인 우리 아이 만들기] 5. 야생의 사고 ‘미메시스적 지각구조’
“학부모 여러분! 혹시 여러분은 잠을 잘 때 인형을 안고 주무시나요?” ⓒ문이재
“학부모 여러분! 혹시 여러분은 잠을 잘 때 인형을 안고 주무시나요?” ⓒ문이재

 

안녕하세요. 오늘은 우리 아이들이 본래부터 갖고 있는 내면의 고유하고 독보적인 힘에 관해서 이야기를 드리려고 합니다. 먼저 이 질문부터 던지고 가겠습니다.

“학부모 여러분! 혹시 여러분은 잠을 잘 때 인형을 안고 주무시나요?”

아마 대부분 “아니요.”라고 답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질문을 던지는 저를 이상하게 생각하시겠죠? 이 질문을 똑같이 초등학생 제자들에게 던져보았습니다.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아쉽게도 고학년이 될수록 이런 경험과는 동떨어진 세계에 놓이게 됩니다. 그런 친구들에게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왜? 어릴 때, 같이 먹고, 자고, 놀던 인형은 어디 갔어? 선생님은 아직도 인형이랑 자는데….” 라고 말이죠. 아이들이 유년 시절을 회상하며 그 시간으로 회귀하게 만들려는 시도입니다.

그런 시도를 통해 아이들은 유년 시절을 떠올리며 그 시간 속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인간의 본능적인 미메시스적 지각구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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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면의 문, 미메시스를 개방하라!

누군가는 다 큰 아이가 인형을 안고 자는 것을 퇴행이라 정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반려 돌을 키우는 어른들의 행동은 어떻게 해석을 할 수 있을까요? 돌멩이에 의미를 부여하며 반려 돌을 키우는 영희(가명) 씨가 있습니다.

무생물에 생명을 불어 넣는 태도는 위대한 사유입니다. ⓒ문이재
무생물에 생명을 불어 넣는 태도는 위대한 사유입니다. ⓒ문이재

 

영희 씨는 언론에도 소개가 되었을 정도로 돌멩이에 아주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돌멩이와 함께 세계여행을 다녀왔죠. 해외 언론에서는 우리나라의 이런 기이한 현상을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돌을 씻기는 영상에 조회수 900만을 넘기도 하고, 인기 있는 반려돌 스토어에서는 40초 만에 완판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 현상을 단순한 기이한 행동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잃어버린 미메시스적 감각을 회복하려는 시도라고 말이죠.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과 저는 사회가 정한 일정한 시기와 나이에 따라 통과제의를 넘고,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하는 ‘어른’의 세계로 왔습니다. 어느 순간 유년 시절의 천진난만한 순수한 내면세계의 문은 굳게 닫혔습니다. 누군가는 퇴행이라고 할지 모르겠으나 어릴 적 그 애틋한 감정을 되찾기 위해 우리는 일상에서 여러 가지 노력을 합니다. 위의 영희 씨처럼 반려 돌을 키우거나 저처럼 인형을 간직하는 것처럼 말이죠.

제가 중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었던 소중한 친구가 미국으로 떠나며 건네주었던 책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를 읽고, 펑펑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렇게 일주일간은 숨만 쉬면 하염없이 눈물이 났었습니다. 그때는 왜 그랬는지 영문조차 몰랐습니다. 어른이 되고, 다시 라임 오렌지 나무를 읽는 순간 ‘제제(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의 주인공)’가 제 마음속에 아직도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현실 세계와 내면세계를 연결하는 통로는 여전히 스스로 열 수 있다는 단서였죠. 

제가 4년 전 한겨레아동문학 70기에 들어가면서 더욱 명확해졌습니다. 저의 세계를 확장하기 위해서 내면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제제가 라임 오렌지 나무와 대화하는 것에서 문명화된 인간 이전의 태곳적 인간이 가지는 지각 구조를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지각 구조는 우리 내면의 DNA에 잠재된 것이며 내면세계의 원동력 그 자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알기에 어린 자녀들이 인형에 이름을 붙이고, 매일 밤 그와 대화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거나 억압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미 그런 내면의 정신활동을 존중하고, 더욱 발원할 수 있도록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인형을 선물하기도 합니다.

◇ 태곳적 인간이 가진 미메시스적 능력(mimetic faculty)

고전 속 주인공들의 상상력을 통해 미메시스적 사유를 볼 수 있습니다. ⓒDesigned by 문이재 using Midjourney
고전 속 주인공들의 상상력을 통해 미메시스적 사유를 볼 수 있습니다. ⓒ문이재

학자마다 차이는 있겠으나 문명화 이전의 인류 역사를, 농경사회가 형성되기 이전의 원시시대라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호모 사피엔스의 등장이 30만 년 전이고, 농경사회의 시작은 약 1만 2천 년 전이라고 했을 때 문명화된 인류의 역사는 고작 4%에 불과합니다. 여기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제제와 같이 라임 오렌지 나무와 대화를 하는 이런 지각 구조는 문명화 이전의 사유 방식이며 인류 최고의 사유라 할 수 있는 ‘야생의 사고’라는 것입니다.

유대계 독일인으로 문학평론가이며 철학자인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은 미메시스(mimesis) 개념을 설명했습니다. 전통적인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방(mimesis) 개념과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그는 미메시스를 단순한 재현(representation)으로 보지 않고, 인간이 세상을 인식하고 의미를 만들어가는 근본적인 방식으로 이해한 것입니다. 즉, 모방이나 복제가 아니라 패턴과 유사성을 찾아 재구성하는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태초부터 자연과 세계의 패턴을 찾아내고, 이를 모방하며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였습니다. 고대 인류가 별자리에서 특정한 형태를 발견하고 그것을 신화나 상징으로 연결한 원리이죠. 지난 칼럼에서 이야기한 인류의 1차 뇌 혁명인 유동적 사고와 유사합니다. 그래서 나카자와 신이치는 인류 최고의 철학을 ‘신화’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미메시스적 사유는 단순한 ‘모방’을 넘어 ‘해석’과 ‘창조’의 과정이 동반되는 고도의 창조적 사유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현대사회에도 남아있는 춤이나 제례의식, 별자리와 인간의 운명을 읽어내는 행위 모두 이런 초감각적인 미메시스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른바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품들을 보다 보면 제제와 같이 자신이 아닌 것들과 자신을 유사하게 만들려는 태도를 가진 주인공들이 많습니다. 가령, 빨간 머리 앤은 자기 상상의 세계와 동일시하며 사물에 이름을 붙이고, 감정까지 부여합니다. 톰 소여의 모험에서 톰 소여는 현실과 허구를 뒤섞으며 자신을 해적, 탐험가, 로빈 후드와 같은 인물과 동일시합니다. 제가 세상에 단 하나의 작품으로 꼽는 ‘어린 왕자’의 경우에는 여우와 장미, 별 등에 의미를 부여하며 관계를 통해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어린 왕자가 등장합니다. 그러므로 어린 왕자는 숫자와 물질을 중요시하는 어른의 세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결코 지성((intellect, 理性)이라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세계가 아닌 그 반대의 감성적이고, 직관적이며 영적인 영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그 영역에 존재해야 하는 것이죠.

◇ 창의성과 독창성, 미메시스적 감각에 달렸다

태초의 인류가 가진 사유를 억압하지 말아야 합니다. ⓒDesigned by 문이재 using Midjourney
태초의 인류가 가진 사유를 억압하지 말아야 합니다. ⓒ문이재

지금 우리 학교 교육은 사실상 아이들을 문명화하는 과정입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현대적인 학교 교육의 역사는 200년이 채 되지 않습니다. 물론 공교육이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미메시스적 사고와 같은 ‘야생의 사고’입니다.

미메시스적 감각을 단순히 원시적이거나 미개한 것으로 치부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인간이 본래부터 가진 세상을 이해하고 창조하는 핵심적인 능력입니다. 그래서 저는 학부모님들과 제자들에게 자기만의 인형을 갖도록 권장하고, 반려종이나 반려식물을 키우며 존재를 부여하는 경험을 하도록 제안합니다. 독보적인 사유의 시작은 사물과 감정을 연결하며, 깊은 공감을 통해 통찰을 얻는 과정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확신하는 것은, 인류가 미메시스적 ‘야생의 사고’를 잃어버린 결과, 기후 위기와 동물 멸종을 비롯한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애완견’이라는 용어를 ‘반려종’으로 바꾼 것처럼, 반려돌과 같이 무생물에 생명을 부여하는 미메시스적 감각의 회복은 인류가 절멸을 막고 지속 가능한 관계를 회복하는 중요한 사유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수많은 철학자와 예술가들이 ‘어린이’의 감각을 찬양한 이유를 우리는 다시금 깨달아야 합니다. 어린이들은 삭막하고 피폐한 현실에서도 유사성을 발견하고, 지각하며, 의미를 부여하여 자신만의 상상의 세계를 창조하는 존재들입니다. 따라서 아이들이 독보적인 사유를 키우기 위해서는 ‘미메시스적 감각’을 억압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아이들과 함께 그런 감각을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어른이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사소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이야말로 창조적 사고의 출발점입니다.

얼마 전 한 부모님께서 제게 이런 피드백을 주셨습니다. “선생님과 수업을 하면서 아이가 조금 달라진 것을 느꼈어요. 길을 가다가 꽃, 돌멩이, 나뭇가지를 그냥 지나치지 않아요. 호랑이 모양의 베개와 이야기를 나누고, 필통 속에 자기 친구 ‘연탄이’가 있다고 말하더라고요.”

그렇습니다. 제 아이들은 바람만 불어도 키득키득 웃습니다. “바람이 나를 간지럽히고 갔다!”라며 깔깔대는 모습을 볼 때, 저는 이렇게 말해줍니다. “장난꾸러기 바람 녀석! 어디로 도망갔지?” 이것이 바로,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힘입니다.

*작가 문이재는 ㈜미아클 대표로 대체 불가능한 독보적 사유를 얻기 위한 교육브랜드와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Copyrightsⓒ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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