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거실의 침묵이 깨질 수 있도록, 사회적 환경을 만들어주세요

우리 집 거실의 침묵이 깨질 수 있도록, 사회적 환경을 만들어주세요

  • 기고=윤여주
  • 승인 2026.03.30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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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배경아동, 함께 키워요] 21. 이주배경아동 14세 윤여주

베이비뉴스와 초록우산은 우리 사회에서 성장하는 모든 아이들이 차별 없이 보호받을 수 있도록 ‘이주배경아동, 함께 키워요’ 연속 기고를 마련했습니다. 이번 연재는 언어·문화 장벽과 불안정한 법적 지위로 인해 여전히 교육과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주배경아동들의 실태를 조명하고 제도적 개선 방향을 모색합니다. 모든 아동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포용적 사회를 만들기 위한 공감과 연대의 마음이 확산되길 바랍니다. - 편집자 말

이주배경아동 가정 모습. ⓒ초록우산
이주배경아동 가정 모습. ⓒ초록우산

매일 아침, 나는 학교에 가기 위해 운동화 끈을 묶는다. 학교로 걸어가는 길, 노란 어린이집 버스에 설레는 표정으로 오르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동생들이 떠오른다. 집, 집 앞 공터가 세상의 전부인 동생들은 그 버스를 탈 수 없기 때문이다.

필리핀에서 온 엄마와 한국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나와 첫째 동생은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거쳐 지금은 학교를 잘 다니고 있다. 하지만 아빠가 돌아가신 뒤, 새아빠와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막내 동생들 상황은 다르다. 부모님이 아직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상태에서 태어난 ‘외국인 등록 아동’이기 때문이다. 국적이 없다는 이유로 보육비 지원을 받을 수 없는 동생들에게 어린이집 문턱은 너무 높다.

무엇보다 마음이 아프고 걱정되는 것은 동생들 말이 또래보다 많이 느리다는 점이다. 네 살인 동생이 할 수 있는 말은 “바(밥)”, “어니(언니)”, “어마(엄마)” 정도뿐이다. 보통 또래 아이들은 어린이집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며 새로운 단어를 배우고, 자연스럽게 언어를 익혀 간다. 하지만 내 동생들은 하루 종일 한국어가 서툰 엄마와 함께 집에 머문다. 저녁마다 한글 카드를 들고 가르쳐 보지만 부족함이 많다.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언어의 골든타임’이 제도적 장벽과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그대로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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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문제가 우리 가족에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 사회 곳곳에는 국적이나 서류 문제로 교육과 돌봄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주배경 아동’들이 적지 않다고 들었다. 아이는 자신이 태어날 나라나 가정을 선택할 수 없기에 어디서 어떻게 태어났든 배우고 성장할 수 있도록 사회나 정부에서 환경을 조성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보육비 지원의 ‘국적 장벽’을 완화해야 한다. 모든 아동은 차별 없이 보호받아야 한다는 ‘유엔아동권리협약’의 취지에 맞게,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모든 아이가 부모의 국적이나 경제적 형편과 관계없이 어린이집에 다닐 수 있도록 지원 대상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또한,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을 위한 ‘찾아가는 언어 지원’을 활성화되면 좋겠다. 어린이집에 다니지 못하고 가정에 머무는 아이들을 위해 지역 복지관이나 가족센터를 통한 방문교육 서비스를 확대하거나, 이들을 위한 별도의 보육 프로그램을 마련해 주시면 좋겠다.

언어는 마음을 잇는 다리이자 세상으로 나아가는 열쇠다. 동생이 몇 개의 단어로 겨우 소통하며 답답함에 눈물짓는 대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또렷하게 말하며 웃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 아동기의 언어 지연은 단순히 말이 늦는 문제를 넘어, 정서와 학습, 그리고 아이의 미래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적이나 경제적 조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미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내 동생들처럼 침묵 속에서 세상과 연결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을지 모른다. 이 아이들이 언어라는 장벽에 가로막혀 자신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먼저 환경 조성에 나서주시길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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