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 싶은 유모차, 갈 수 없는 도봉산
가고 싶은 유모차, 갈 수 없는 도봉산
  • 기고 = 김순영
  • 승인 2014.03.31 18: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자연의 소리를 아이와 함께 하고 싶어요"

[특별기획] 우리 동네 좀 고쳐주세요 - 가고 싶은 유모차, 갈 수 없는 우리 동네

 

안녕하세요. 박원순시장님.

 

저는 노원구에 사는 김순영입니다. 작년에 아이를 낳은 늦깎이 엄마지요. 제가 사는 아파트는 도봉산과 수락산이 마주보고 있어 숲에서나 볼 수 있는 산새들이 아파트 화단에도 날아드는 곳입니다. 그래서 겨울이 지나간 요즘 일찍 잠에서 깨는 날이면 경쾌하고 맑은 새소리를 들을 수 있고요. 작년까지는 이 예쁜 소리를 신랑하고만 들었지만, 올 봄부터는 사랑하는 아들 민재와 함께 들으니 그 행복 또한 매우 큽니다.

 

언젠가 수도원에 간 동화작가 정채봉님이 후박나무에서 '채봉아, 채봉아!' 지저귀는 새에게 '그래, 나 여기 있네' 대답을 하고 말았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리곤 그날 묵언수행을 하지 못한 것을 신부님께 고백하니 '새에게 대꾸한 것이니 새소리겠지요'라고 웃으셨다는 재치 있는 답변도 기억납니다. 신록이 시작되는 이맘때 짝을 찾는 새들은 지지베베 지지베베 가장 아름다운 가락을 목청껏 뽑아내지요. 아마 그때 묵언을 깨운 새소리는 어느 봄날 숲에서 울린 것이지 않을까 짐작됩니다.

 

벌써 숲은 언제 겨울이었냐는 듯 새들의 노랫소리로 가득하고, 얼었던 땅과 낙엽이 녹아 풍기는 알싸한 흙냄새가 가득할 것 같습니다. 설레는 이 봄, 아파트에서만 듣는 새소리가 아니라 숲속에서 오감을 느끼고 싶은 욕심이 슬며시 다시 고개를 듭니다. 바로 아들 민재와 함께요. 서두가 너무 길었지요? 우연히 베이비뉴스에서 ‘유모차는 가고 싶다’ 프로젝트를 접하고, 작년 가을에 경험한 ‘멘탈붕괴’가 떠올라 시장님께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출산 후 여느 때와 달리 체력도 마음의 여유도 제법 생긴 작년 가을, 중랑천을 끼고 건너편에 웅장하게 서 있는 도봉산의 병풍 같은 산세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날따라 베란다에서 내다본 햇살에 반사된 도봉산의 만장봉과 신선대가 맘을 설레게 했지요. 백일이 지나 아기도 저도 가을볕이 그리웠고, 숲길의 흙 내음, 나무의 단풍도 몹시 보고팠습니다. 집에서 좀 더 가까운 곳에 수락산이 있지만, 서울의 녹색 허파이고, 시민이 가장 많이 찾는 북한산국립공원 도봉산으로 콧바람이 쐬고 싶어 안달이 났습니다.

 

무엇보다 도봉산은 무장애탐방로가 있어서 유모차를 끌고 둘레길 일부 구간을 걸을 수 있고, 자연과 어우러진 숲길은 인위적이지 않고, 아름답습니다. 지하철로 접근이 좋은 몇 안 되는 코스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도봉산역 건너편에 있는 주말농장 텃밭은 아이가 태어나기 일주일전 까지 저희 부부가 도시 농부로 매주 지하철을 이용해 드나들던 익숙한 곳이라 특별한 외출이라기보다는 평범한 일상이기도 했습니다.

 

북한산둘레길 도봉산옛길 일부 구간에 무장애탐방로가 있어서 유모차도 다닐 수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북한산둘레길 도봉산옛길 일부 구간에 무장애탐방로가 있어서 유모차도 다닐 수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그렇게 저는 집을 나서서 도봉산역 지하철역에서 내렸습니다. 우아하게 유모차를 끌고 씩씩하게 밖으로 나와 도봉산으로 가기위해 늘 오르내리던 계단이 아닌 옆으로 난 경사로 길을 따라 유모차를 밀었지요. 그 동안 한 번도 가 본적 없지만, 나중에 유모차를 밀고 오면 좀 돌아가더라도 저 길로 가면 되겠구나하고 눈 여겨 보았던 길입니다. 콧노래도 부르며 한 십분 남짓 갔을까? 뭔가 이상하다 싶었습니다. 가도 가도 도봉산으로 건너갈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고, 철길이 계속 이어졌거든요. 그 때 깨달았습니다. 그 길은 계단 대신 있는 길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요.

 

7호선 도봉산역에서 내리면 도봉산으로 가는 계단과 도봉동으로 가는 비탈길이 있다. ⓒ김순영
7호선 도봉산역에서 내리면 도봉산으로 가는 계단과 도봉동으로 가는 비탈길이 있다. ⓒ김순영

 

역 입구에서 낮은 계단을 올라서면 이어지는 높은 계단. ⓒ김순영
역 입구에서 낮은 계단을 올라서면 이어지는 높은 계단. ⓒ김순영

 

그날은 출산 후 처음 도봉산에서 지인을 만나기로 한 약속까지 있어 집으로 되돌아가기도 난처한 상황이었습니다. 산후조리가 끝났지만 제 팔목과 어깨가 유모차를 번쩍 들어 올려 계단참에 놓을 수 있는 ‘어마 무시’한 힘도 없었고요. 지금 생각해도 진땀이 나네요. 다행히 어느 여성분의 도움으로 유모차를 계단 위로 끌어올릴 수 있었지만, 도봉산역에서 도봉산으로 가는 길에 장애가 있을 거라는 것을 5년이 지나서야 알게 된 것이지요.

 

1호선 도봉산역. 엘리베이터가 없고, 계단만 있어 역에서 하차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김순영
1호선 도봉산역. 엘리베이터가 없고, 계단만 있어 역에서 하차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김순영

 

올해 서울시는 국립공원관리공단과 협의하여 북한산국립공원과 서울시의 둘레길을 연결하고, 곳곳에 스토리텔링을 개발하실 계획이 있으시더군요. 이야기가 가득한 둘레길, 유모차도 가보고 싶답니다. 무엇보다 숲을 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해소될 수 있고, 숲 치유의 효과가 있다고 하던데, 아기와 함께 출산 후 우울증이 있을 수 있는 엄마들이 숲에 접근할 기회가 많아진다면 더 건강한 삶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도 유모차를 끌기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어려운 길, 편지로 살짝 알려드리니 개선을 검토해 주실 수 있을까요? 그다지 길지 않은 구간이라 시장님은 금방 해결해 주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지하철로 어디든 다닐 수 있는 멋진 도시, 서울. 역에서 내려서도 어려움이 없도록 신경 써 주신다면 더 행복한 동행이 될 듯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시장님의 하루하루가 날마다 봄날이시길 기원 드립니다.

 

[공모 안내] '우리 동네 좀 고쳐주세요 - 가고 싶은 유모차, 갈 수 없는 우리 동네' 기사 공모에는 누구나 자유롭게 응모할 수 있습니다. 평소 동네에서 유모차를 이용하면서 느꼈던 불편했던 점을 생생히 적어 사진과 함께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심사를 거쳐 채택된 원고에는 소정의 원고료가 지급됩니다. 매월 우수 원고를 선정해 유아용품 전문기업 아벤트코리아(www.greaten.co.kr)에서 150만원 상당의 최신 유모차(깜 플루이도)도 선물로 드립니다. 원고 보내실 곳 ibabynews@ibabynews.com

[Copyrights ⓒ No.1 육아신문 베이비뉴스 기사제보 pr@ibabynew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베사모의 회원이 되어주세요!

베이비뉴스는 창간 때부터 클린광고 정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작은 언론으로서 쉬운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이비뉴스는 앞으로도 기사 읽는데 불편한 광고는 싣지 않겠습니다.
베이비뉴스는 아이 낳고 기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대안언론입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에 동참해주세요. 여러분의 기사후원 참여는 아름다운 나비효과를 만들 것입니다.

베이비뉴스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베이비뉴스와 친구해요!

많이 본 베이비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대로 78 경찰공제회 자람빌딩 B1
  • 대표전화 : 02-3443-3346
  • 팩스 : 02-3443-3347
  • 맘스클래스문의 : 1599-0535
  • 이메일 : pr@ibabynews.com
  • 법인명: 베이컨(주)
  • 사업자등록번호 : ​211-88-48112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서울 아 01331
  • 등록(발행)일 : 2010-08-20
  • 발행·편집인 : 소장섭
  • 저작권자 © 베이비뉴스(www.ibaby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개인정보보호 배상책임보험가입(10억원보상한도, 소프트웨어공제조합)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유미 실장
  • Copyright © 2024 베이비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ibaby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