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 정가영 기자】
[연재]정가영의 MOM대로 육아
“오늘 저녁 먹고 갈게~”
“오예” 소리가 절로 나오는 남편의 전화다. 보통 회사에서 저녁을 먹고 오던 남편인데, 아이가 좀 크고 나서는 “아이가 보고 싶다"라며 저녁을 거르고 올 때가 있었다. 나 혼자면 물 말아서 깍두기에 후딱 먹으면 되는데 남편 저녁상은 ‘무슨 찌개를 끓이나’ 걱정부터 앞선다.
또 찌개를 끓여 놓으면 남편은 “찌개가 맛있어서 한잔 생각이 난다"며 슬금슬금 눈치보고는 소주잔을 꺼내든다. 그러고는 젖병을 든 아이와 “짠~” 놀이를 하며 만찬 즐기듯 너무나도 느긋한 저녁 시간을 보내는 남편.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빨리 애 씻겨야 하는데’, ‘애 재울 준비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마구 솟아오를 때가 있다. 머리에 스팀이 차오르는 걸 막아주는 남편의 전화가 반가운 이유다.
우리 부부는 5년 연애 끝에 결혼했다. 연애 기간 단 한 번도 싸우지 않았던 우리는 결혼 후에도 언성 한번 안 높이고 행복한 신혼 생활을 보냈다. 둘 다 술을 좋아해 퇴근 후 매일 밤 맥주 한잔 마시며 이런저런 수다떨며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저녁을 함께 하는 삶이 얼마나 행복했던지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런데 아이가 생기고 나니 이런 시간도 사치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회사 퇴근 후 집으로 다시 출근해 아이 밥 먹이고 목욕 시키고 책 읽어주고 잠을 재우려면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그래야 나도 완벽하게 퇴근할 수 있으니까. 그런 나의 계획에 훼방 아닌 훼방을 두는 남편이 귀찮을 때가 있는 것이다.
사실 아이가 태어나면서 많은 것들이 변했다. 남편과 내 위주에서 아이 위주로 달라졌다. 부부의 결혼사진과 여행 사진으로 도배된 벽면은 아이의 백일, 돌 사진으로 가득 찼고, 분위기를 담당하던 거실 조명은 아이 안전을 위해 창고로 옮겨졌다. 둘만의 공간이던 침실은 셋을 위한 공간으로 바뀌었다.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셋이 잠을 청하다 보면 아이의 360도 회전 잠버릇을 피해 남편은 침대로 도망치기 바빴다. 냉장고엔 우리 부부의 반찬 대신 저염 식단의 아이 반찬뿐이다. 아이와의 놀이에 집중하다 보니 부부만의 오붓한 시간도 줄었다. “아이 재우고 한 잔?”하자고 했지만 아이 재우다 셋 다 잠들어버리는 현실. 그렇게 우리는 부부에서 엄마, 아빠가 됐고, 아이의 등장에 남편은 내 관심사에서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어떤 날 남편은 “여보가 나를 신경 안 쓰니까 얘도 날 만만하게 보잖아~”라며 투정을 부렸다. 사실 모든 관심과 시선이 아이에게만 가다 보니 남편이 가장으로서 무슨 고민을 하는지도 외면하려 했었다. 아이가 태어나도 부부가 더 사랑하자고 했는데, 아이에게 최고의 교육은 부부가 많이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약속했는데···. 아이를 핑계로, 피곤하다는 핑계로 그 약속을 잊고 지내게 된다.
남편을 만나 귀여운 아이가 생긴 건데 미안하다. 이래서 엄마들이 애 둘을 키운다고 하는 건가? 둘째가 태어나니 첫째 신경을 덜 쓰는 마음 같아서 짠하기도 하다. 오늘 저녁은 남편이 좋아하는 돼지고기를 팍팍 넣어서 김치찌개나 끓여 볼까? 누구보다 고맙고 소중한 남편이 아이 때문에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도록 조금만 신경 써줘야겠다. 남편이 다 사라지지 않도록 남편의 전화에 “김치찌개 끓여뒀어~같이 저녁 먹자"라고 말해주는 아내가 되는 연습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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