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공감] 스물 일곱, '나'가 아닌 '다애 엄마'가 되다
‘나’로 살던 내가 ‘엄마’로 성장하면서 느끼는 복잡 미묘한 감정들, 어디 털어놓을 곳은 없을까. 베이비뉴스는 엄마가 되고 성장해가는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엄마 공감' 사연 공모 이벤트를 진행한다. '엄마 공감'은 '나'가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면서 겪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다른 엄마들과 공유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이 된다. 엄마들의 꾸밈없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나본다.
스물일곱 살. 푸르던 나뭇잎의 색이 하나둘 변할 무렵인 10월 중순, 난 엄마가 됐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엄마’란 이름을 5살 때 처음으로 꿈꿔본 것 같다. 뭐든 옆에서 해주던 엄마가 멋있어 보여, 유치원 때 나의 장래희망은 ‘엄마’였다. 하지만 나이가 하나둘 들고, 대학에 다닐 무렵엔 엄마처럼 살기 싫었다.
집에서 밥과 빨래, 자식 생각만 하는 엄마가 아닌 전문적인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고 전 세계를 누비며 여행하는 여성이 되고 싶었다. 결혼은 50세 쯤 해야겠다는 계획을 당당하게 세우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니곤 했는데, 그런 내가 스물일곱 살에 결혼할 것이라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한 눈에 사랑에 빠지고 한 달 만에 결혼을 결심하고 결혼한 그 해, 난 엄마가 됐다. 그렇게 모든 것이 한꺼번에 소용돌이처럼 지나갔다.
엄마가 되는 과정은 그 전엔 상상하지도 못했던 소소한 행복의 연속이었다. 임신하고 태동을 느끼고 아기용품을 하나둘 사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닮은 아이를 낳는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설렜다.
하지만 난 출산 준비만 했을 뿐, 엄마가 될 준비는 하나도 하지 못했다. 아니, 생각할 틈도 없었다. 결혼해서 신혼을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고 신혼여행에 돌아오자마자 입덧에, 치골 통증에, 32kg나 불어버린 체중, 막달에는 임신소양증까지 찾아왔다. 임신 중에 내 몸 하나 챙기기도 버거웠고 그 상태에서 어느 날 갑자기 출산을 하고, 하룻밤 사이에 ‘엄마’란 이름이 생겼다. 그 다음 날부터 찾아오는 심리적인 변화는 지금 와서 생각해도 숨이 턱턱 막힌다.
너무 작아 부러질 것 같은 아기를 안고 젖을 물리겠다고 어정쩡한 자세로 있다가 간호사에게 “이렇게 아이 코를 누르면, 숨을 제대로 못 쉬잖아요!”라는 질책을 받기도 했고, 한두 시간 마다 배고프다고 울부짖는 아기를 껴안고 잠은커녕, 제대로 배불리 먹어보지도 못했다. 그렇게 난 엄마가 되었다.
아무도 내게 엄마가 되는 법, 출산 후의 일들에 대해서 설명해주지 않았다. 내 몸 챙기기도 힘든데 나만 의지하고 있는 이 아무것도 하지 못 하는 조그만 사람이 내 자식이라는 것이 어느 날엔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하루하루 아기와 씨름하다보니 어느새 울고 있는 아기에게 “엄마, 여기 있네~”하는 여유를 부리며 기저귀를 갈고, 젖을 물리고 놀아주고 재워주고…그렇게 하루하루 아주 조금씩 엄마가 되어갔다.
남편의 잦은 출장, 육아를 도와줄 수 없는 친정과 시댁 가족들. 온종일 독박육아를 하다보면,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날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아이를 키우는 데 나의 욕구들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예전엔 몰랐다. 엄마들이 왜 국에 밥을 말아 입에 구겨 넣었는지를 말이다. “제대로 차려놓고 먹으면 되지. 그렇게 급할까?”란 생각을 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한심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내가 배불리 먹는 것보다 자식을 배불리 먹였을 때 그 희열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 그렇게 나는 엄마란 이름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되기까지 어떻게 보면,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주변 친구들이 “네가 집에서 가만히 아기만 볼 수 있을까?”라고 걱정할 정도로 여행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고 매일 밖을 다녀야지만 에너지를 얻는 외향적인 나였는데, 아기와 온종일 집에 있으니 걱정이 됐다.
나 또한, 내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 같고 SNS에서 친구들의 여행사진을 보면, 울컥해서 밤새 아기를 안고 울기도 하고, 울어서 퉁퉁 부은 얼굴을 보고 또 울곤 했었다.
그러나 그런 얼굴로 아이와 함께 찍은 사진을 인화하고 보면서 실실거리는 걸 보니 진짜 엄마가 됐나싶다. 엄마란 이름이 나 자신에게 어울리기까지 100일은 걸린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은 내 이름, 김은애라는 석자보다 ‘다애 엄마’란 이름이 더 마음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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