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실 에어컨 반대 전단지..."아이들에게 창피하지 않나요?"
주민투표로 에어컨 설치 결정한 아파트에 "관리비 오른다" 전단지 내붙어
【베이비뉴스 최규화 기자】
서울 중랑구의 한 아파트에 사는 박진아(35·여) 씨는 21일 우편함에 전단지 한 장이 꽂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붉은 글씨로 “경비실에 에어컨 설치를 반대합시다”라고 적혀 있는 이 전단지에는 아파트 경비실에 에어컨을 설치해서는 안 되는 다섯 가지 이유가 적혀 있었다.
“첫째, 매달 관리비가 죽을 때까지 올라갑니다.
둘째, 공기가 오염됩니다.
셋째, 공기가 오염되면은 수명 단축됩니다.
넷째, 지구가 뜨거워지면 짜증이 나서 주민화합이 되지 않고 직원과 주민화합 관계도 파괴됩니다.
다섯째, ○단지보다 큰 아파트에도 경비실에 에어컨 설치를 해주지 않았습니다.”
박 씨가 사는 아파트 단지는 1600여 세대, 16개동으로 이뤄져 있다. 경비실은 각 동마다 하나씩. 이곳의 입주자들은 지난 5월 전체 세대가 참여한 투표를 통해 경비실에 에어컨을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 같은 결정에 반대하는 누군가가 “추진자 일동”이라는 명의로 반대 전단지를 만들어 이틀에 걸쳐 아파트 각호의 우편함에 꽂아둔 것이다.

박 씨는 26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전단지를 보는 순간 “무슨 소리인가 눈을 의심할 정도로 어이가 없었다”라고 당시의 느낌을 표현했다. 네 살과 두 살 아이를 키우고 있는 박 씨는 “이 아파트에 수많은 아이들이 살고 있고 그 아이들이 이 전단지를 다 볼 텐데, 어른으로서 너무 창피했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전단지 내용이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왜곡하고 있는 것에 분노했다. 전단지에는 “동대표들이 경비실에 에어컨을 설치한다”고 쓰여 있지만, 에어컨 설치는 주민투표를 통해 결정된 것이다. 박 씨는 “70% 정도의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찬성했다”고 말했다.
박 씨는 그날 바로 전단지 내용에 반박하는 글을 종이에 손으로 써서 아파트 입구에 붙였다. 하지만 그 글은 금세 없어졌다고 한다.
◇ “말 같지도 않은 이유들로 인간임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반박글도
박 씨 말고도 반박의 글을 쓴 입주자는 또 있었다. 박 씨가 활동하는 인터넷 ‘지역 맘카페’에는 박 씨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회원이 촬영한 사진이 한 장 올라왔다. 한 입주자가 아파트 입구에 게시한 반박글 사진이었다.
글머리에 자신의 실명을 밝힌 한 입주민은, 반대 전단지를 배포한 익명의 사람들에게 “말 같지도 않은 이유들로 인간임을 포기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했다.
이어 “경비아저씨들도 누군가의 남편이고,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한 명의 소중한 인간”이라며, “그늘 하나 없는 주차장 한가운데 덩그러니 있는 경비실에 지금까지 에어컨 한 대 없었다는 것이 저는 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전단지에 있던 ‘다섯 가지 반대 이유’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공기 오염이 걱정되신다면 댁에서 하루 종일 켜두시는 선풍기 끄시고, 수명 단축이 걱정되신다면 중랑구민체육센터에서 운동을 하시고, 지구가 뜨거워지는 것이 걱정이 되시면 일요일마다 있는 분리수거 시간 잘 지켜서 하나하나 철저하게 하십시오.”
마지막으로 “여러분이 쓰신 이기적인 글을 읽고 자라날 우리 동네의 아이들에게 참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라며, “당당하게 나오셔서 논리적으로, 그리고 인간적으로 의견을 내주시면 존중하겠습니다”라는 말로 글을 마쳤다.

박 씨는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서 존경받는 어른이 되면 좋겠다”라는 말로 이번 갈등을 지켜본 소감을 밝혔다.
한편 해당 아파트단지의 관리사무소 측은 이 같은 갈등과 무관하게, 주민투표 결과에 따라 경비실 에어컨 설치의 구체적인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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