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왜 '벌레'로만 소비되는가
엄마는 왜 '벌레'로만 소비되는가
  • 칼럼니스트 엄미야
  • 승인 2018.10.29 11:5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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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미야의 일하는 엄마의 눈으로] 혐오를 거두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나는 '엄마'들이 싫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엄마임을 앞세운 집단'이 무서웠다. 그녀들을 알고 싶지도, 가까이 지내고 싶지도 않았다. 그 세계와 무관하게 살아온 나에게 그녀들은 오지랖이 너무 넓어 대하기 피곤한 존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왜 학교에 저렇게 들락날락거리는지, 매번 엄마들 모임을 왜 그리 많이 하는지, 쓸데없이 맘카페 같은 활동은 왜 하면서 시간을 죽이는 건지 외면하고 무시했다. 그렇게 나는 그들에게 굳이 관심을 갖지 않고 살아왔다. 그런데 나는 대단히 오만했고 대단한 착각을 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사람은 평생 배우며 살아야 하는가 보다. 

맞다. 이 글은 엄마들을 위한 ‘변명’이자 엄마인 내가 쓰는 ‘반성문’이다.

안산시가 다음 달 15일부터, 수돗물에 불소를 넣어 오던 것을 중단한다는 공고를 냈다. 충치를 예방한다는 목적으로 2000년부터 안산시 수도시설 전체에 불소를 넣어오던 사업을 18년 만에 중단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결정의 뒤에는 안산시와 시흥시 엄마들의 노력이 있었다.

사실 우리가 매일매일 마시고 씻는 수돗물에 불소가 들어 있다는 사실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 못했다. 그런데 우연한 과정에서 이 사실을 처음 접한 것은 ‘아이쿱 생협 엄마모임’의 엄마들이었다.

아이들과 가족들이 늘 사용하는 수돗물에 시민들의 동의 없이 불소를 투입해온 사실에 분노한 이 ‘예민한’ 엄마들은 온라인, 오프라인에서 서명을 받기 시작했고, 보건소장 면담을 요청하고, 시청 앞에서 난생 처음 기자회견도 했다. 그리고 4개월여 만에 안산시의 중단 결정을 이끌어냈다. 이들 엄마들 대부분은 지역의 협동조합이나 맘카페에서 알게 된 평범한 이들이었다.

최근 사립유치원 비리가 연일 파헤쳐지고 있다. 케케묵은 문제였으나 워낙 막강한 권력집단이라 해서 그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했던 일에 ‘겁 없이’ 대차게 맞붙은 것은 다름 아닌 엄마들이었다. 바로 ‘정치하는엄마들’이라는 단체이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라 오프라인 공간에서 만나고 활동하기가 쉽지 않아 이들의 활동 역시 온라인에서 주로 이루어졌다.

정치하는엄마들은 지난 5월 30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비리 유치원·어린이집 명단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정치하는엄마들은 지난 5월 30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비리 유치원·어린이집 명단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돌이켜보면 어린이집과 유치원 같은 보육·유아교육 기관의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아동학대, 부실한 급식, 통학차량 사망 사고 등 사건사고는 국민들을 분노케 했고, 그럴 때마다 엄마들은 '내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은 괜찮을까' 불안에 떨어야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교사를 비난하는 데 동참하거나, 아니면 내 아이를 조금 더 낳은 환경의 시설로 옮기는 일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소극적인 행동으로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그때 딱 한 걸음, 적극적인 발걸음을 내딛게 하는 것이 바로 지역의 엄마들 모임이다.

◇ 가임지도를 만들 때, '맘충'이 될 때만 주목받는 엄마들

얼마 전 티비에서 본 적이 있다. 몇 부부가 함께 여행을 가서 낮에는 여자는 여자들끼리, 남자는 남자들끼리 따로 여행을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여자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남편과 아이들이 대화 소재에서 빠지지 않았다. 반면 남자들은 여행의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겨우 부인을 떠올렸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엄마들의 그런 뇌구조가 지구평화를 유지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이를 낳는 그 순간부터 엄마들은 전업주부이든 워킹맘이든 공통적으로 ‘어떻게 하면 아이를 잘 키울 것인가’가 최고의 관심사가 된다. 그래서 자연스레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집단에 소속감과 애정을 갖게 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 역시 그렇다. 맞벌이를 하면서 시간과 일에 쫓기다보니 엄마집단에 끼지 못했던 것뿐이지, 어디에서 누굴 만나든 열에 아홉은 아이들 문제로 대화가 귀결되는 것을 경험하곤 했다. 과도하지만 않다면 사실 그 덕에 가정이 유지되고, 아이들이 키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엄마들은 아이와 가족을 위해서라면 누구보다 용기를 발휘할 수 있어서, 이들은 때때로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았던 우리 동네의 수돗물 불소화 사업을 중단시키는 힘을 발휘하기도 하고, 어느 국회의원들조차 건들지 못했던 유치원 원장들의 비리를 파헤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긍적적인 역할에 우리 사회는 너무 인색했다. 출산율이 떨어질 때, 가임지도를 만들어야 할 때, 그럴 때 존재감이 잠시 드러나긴 하지만 곧 잊고 지낸다.

언제 가끔 언론의 주목을 받느냐, 어느 개념 없는 엄마의 일탈행동이 비난받을 때 ‘맘충’이라는 단어로 등장한다. 아무리 그래도 모성을 벌레에 비유하다니. 누구든 엄마 배 속에서 태어났을 텐데. 무엇이 주저없이 모성에게 ‘벌레’라는 이름을 붙이게 한 건지. 억울함을 넘어서 좀 서글퍼진다.

◇ 교사에 대한 비난 또는 '맘충'이란 손가락질만 있는 사회

우리는 왜 더 큰 도둑과 싸우지 않을까. 박용진 국회의원이 지난 12일 공개한 전국 비리 유치원 명단을 열어봤다. 거기에는 우리 동네 유치원도 포함돼 있었는데, 비리 내용을 보니 회계부정, 급식비 빼돌리기, 교사임금 떼먹기, 부정수급 등 명실상부한 비리 종합선물세트이다.

지금까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의 문제점을 고발, 폭로하는 기사들에서 범죄의 주체는 늘 교사였다. 교사가 아이를 학대하고, 교사가 배식을 이상하게 하고, 교사가 안전사고를 일으키고, 교사가, 교사가…. 아무도 교사가 그렇게 되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 않았다. 또는 그런 자가 교사가 될 수 있는 시스템을 비판하지 않았다.

그런데 유치원 비리 항목을 잘 살펴보니 교사의 권한으로 할 수 있는 비리는 단 하나도 없었다. 모두 다 유치원을 사유재산처럼 운영한 원장들이 한 일이었다.

아는 이들 중에도 어린이집 교사가 몇 명 있다. 보통 아이를 낳고 다시 직장을 찾아야 할 때 선호하는 직업이기도 하다. 보통 출퇴근 거리가 가깝고, 노동시간이 과도하지도 않고, 주말에는 쉴 수 있어 이후 경력의 단절 없이 육아와 일을 함께 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이 직업에 뛰어든다. 그래서 대부분의 보육교사들은 자기 아이는 또 어딘가 맡기고 출근하는 워킹맘이다.

사고가 터질 때마다 교사들을 죄인 취급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답답했다. 양질의 노동환경이 제공되지 않고, 원장들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개인의 잇속을 챙기고 있는데 교사들이 무슨 재주로 양질의 보육과 살뜰한 보살핌을 펼칠 수 있겠는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사건사고가 터지면 교사 집단을 의심하고 잡아먹을 듯 비난하거나, 반대로 개념 없는 일부 엄마들의 행위에 맘카페를 폐쇄해야 한다고 ‘맘충’이라고 우르르 몰려가 손가락질 하는 현상이 반복되기만 하는 사회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지.

나 역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맘카페를 싸잡아 욕하고, 교사들의 부족한 프로의식을 탓하고 비난하지는 않았는지. 왜 그 뒤의 더 큰 도둑을 볼 생각을 하지는 못했는지.

이달 초 김포의 한 보육교사가 아동학대 의심을 받다 스스로 세상을 등진 사건이 있었다. 맘카페의 '마녀사냥'이 사망의 원인이라는 지적에, 지역 맘카페는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한 어린이집 앞에 붙은 추모 벽보. 전아름 기자 ⓒ베이비뉴스
이달 초 김포의 한 보육교사가 아동학대 의심을 받다 스스로 세상을 등진 사건이 있었다. 맘카페의 '마녀사냥'이 원인이라는 지적에, 지역 맘카페는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한 어린이집 앞에 붙은 추모 벽보. ⓒ베이비뉴스

그래서 이제라도 한번쯤 멈춰 생각해본다. 어린이집과 유치원, 학교, 동네의 일들에 자신의 시간과 열정을 쏟아부은 어느 엄마 덕에 나는 큰 걱정 없이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자신의 아이들은 남의 손에 맡기고 전쟁 같은 어린이집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어느 교사의 노동이 있었기에 우리 아이들이 이리 무난하게 자랄 수 있었음을 잊고 산 건 아닌지.

을과 을들의 싸움에서 진짜로 자기 주머니를 불리는 더 큰 도둑은 따로 있는데, 왜 그것을 주목하지 않고 내 주변의 같은 여성들에게 분개했는지. 이제는 힘을 모아 더 큰 도둑을 때려잡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이 글은 그녀들에게 바치는 나의 반성문이다.

*칼럼니스트 엄미야는 초등학교 5학년, 중학교 2학년 두 딸의 엄마다. 노동조합 활동가이자, 노동자 남편의 아내이다. “아이는 국가가 키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공교육 추종자이며, 꿈이 있는 아이들로 키우고 싶은 따뜻한 낭만주의자이기도 하다. 현재 경기지방노동위원회 근로자위원, 민주노총 성평등 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금속노조 경기지부 부지부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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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 2018-10-29 13:06:02
세상의 모든 엄마들을 존경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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