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시댁에서 7년 만에 연락이 왔다
'전' 시댁에서 7년 만에 연락이 왔다
  • 칼럼니스트 차은아
  • 승인 2018.11.30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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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은아의 아이 엠 싱글마마] 아이가 그리워 하니까, 그 이유뿐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이혼 변호사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아카데미와 관련된 일을 하는 나에게 그 변호사님과 함께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나의 억울한(?) 이혼 상황을 법적으로 어떻게 처리할 수 있을지 궁금한 마음에 이것저것 물어봤다,

“요즘 양육비 때문에 말이 많잖아요? 근데 한국에 안 살고 미국에 살고 있는 사람한테 양육비를 받으려면 어찌 해야 하나요?”

변호사님은 '한인 변호사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진행해야 한다'고 딱 잘라 말하셨다. 한국 법은 미국까지 영향력이 없으니 미국 법으로 해야하고, 한국 법보다 미국 법이 더 세니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 변호사랑 일을 하면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얘기를 해주셨다.

그 얘기를 듣고 집에 오는 길에, 나는 그동안 무책임한 '전' 시댁 식구들과 양육비를 주지 않는 전 남편에게 너무도 화가 났다. 위자료는커녕 양육비도 못 받고 있는 세월이 몇 년이 흐르니, 돈을 떠나서 아빠로서의 무책임한 행동에 비열함까지 느껴졌다. '미국에서 낳은 세 명의 자녀들에게는 가장 사랑스러운 아빠로서 코스프레를 하고 있겠지?'라는 생각에 가증스러운 마음까지 느껴졌다.

나의 화난 마음 그대로, 한국에 살고 있는 전 시댁 식구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더 이상은 화가 나서 가만히 있지 못하다고, 미국에 있는 한인 변호사를 사서라도 아빠로서의 무책임함에 대한 죗값을 톡톡히 치르게 하겠다고.

몇 분 후 사랑이 삼촌에게서 문자메시지가 왔다.

“사랑이의 양육비에 대해서는 정말 죄송합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너무 죄송해서 할 말이 없습니다.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랑이 삼촌으로서 역할을 감당하고 싶습니다. 이건 진심입니다. 한국에 있는 조카를 모른 체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이제 그 고민을 같이 나누고 싶습니다.”

문자메시지를 받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들은 지난 7년 동안 사랑이 양육에 대한 책임에 대해 묵묵부답으로 일관해왔다. '삼촌으로서 역할을 감당하고 싶다'는 문자메시지가, 7년 동안 외롭고 서러웠던 내 마음을, 하루하루 꾸역꾸역 버텨온 내 인생을 위로하는 것 같아서 하염없이 눈물이 나왔다.

눈물이 난 이유는 돈보다 더 중요한 것 때문이었다. 아이에 대한 책임감을 함께 나누고 싶었던 것. 나 몰라라 하는 전 시댁 식구들의 이기적인 행동에 더 큰 상처를 받은 나였다. 그들에게 원한 건 사랑이에 대한 관심이었다. 그것이 곧 인간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7년 동안 혼자 고군분투하면서 아이를 키워온 내 입장에서는 하루하루가 외로웠고 힘들고 버거웠다.

ⓒ베이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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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삼촌으로부터 온 이 문자메시지 한마디가, 지난 7년 동안 서러웠던 내 마음을 다 위로해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삼촌이 무슨 잘못인가요. 다만 아이 아빠와 연락이 되지 않아 화가 났고,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이 이 방법밖에 없어서 이렇게 문자메시지 보낸 겁니다. 저도 정말 죄송합니다."

나는 이제 괜찮아졌는데, 나는 이제 남편의 자리를 지워버렸는데, 아이는 지금부터 아빠의 빈자리를 느끼고 아빠를 찾고 있다. 왜 아빠와 같이 살 수 없는지, 아이는 혼자 계속 찾기 시작했다.

이럴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일상생활에서 이제 아무렇지 않게 느껴지는 남편의 자리가, 딸에게는 점점 더 명확해지고 가슴을 후벼파는 상황들이 계속 생기고 있다. 그런 딸아이의 마음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내 모습.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한계들 앞에서 그냥 시간만 지나길 바라는 게으르고 무책임한 엄마가 된 듯싶었다.

나의 가슴을 미치도록 후벼팠던 과거가, 이제는 아이의 가슴을 후벼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의 차가운 시선들이 아이에게 또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게 될까? 그 아픔을 먼저 겪은 나로서 두려움과 무서움이 불현듯 공포로 밀려온 것도 사실이었다.

딸이 잘 버텨줘야 하는데. 딸이 잘 이겨내줘야 하는데. 결국은 잘 이겨낼 우리 딸이지만,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린 후에 그 가슴이 단단해질지. 아니, 그 과정에서 흘린 눈물이 아이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로, 원망으로 자리 잡을지도 너무나 잘 안다. 그저 가슴으로 안아주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엄마의 마음은 누가 알까.

이제는 하나하나 딸아이와 부딪쳐가야 하는 순간이 온 듯해 마음속에 긴장감과 두려움이 자란다. 지금 눈앞에 와 있는 이것 또한 내가 밟고 이겨내고 성장해야 하는 이슈들이다.

이제라도 함께 사랑이의 소중함을 고민해주려 하는 삼촌의 마음에 고마운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사랑이가 아빠의 존재를 알 수 있는 피붙이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그것만으로 좋다. 전 시댁 식구들의 사랑을 막을 이유는 없다. 사랑이에게는 모두의 사랑을 받을 권리가 있다. 엄마가 그것을 막을 이유도, 욕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가 아빠의 부재를 삼촌으로부터 채워간다고 해도 아빠에 대한 사랑이 100% 충족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그것이 아이에게 더 좋다면, 아이가 원한다면, 나는 아이에게 더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하나다. 아이가 그리워 하니까. 아이가 그 사랑을 받고 싶어 하니까. 단지 그 이유뿐이다.

*칼럼니스트 차은아는 6년째 혼자 당당하게 딸아이를 키우고 있다. 시골에서 태어났지만 어설픈 아메리카 마인드가 듬뿍 들어간 쿨내 진동하는 싱글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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