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작으면 함께 못 놀아요?" 아이가 물었다
"집이 작으면 함께 못 놀아요?" 아이가 물었다
  • 칼럼니스트 백운희
  • 승인 2018.12.17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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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를 키우는 아이] 주거문제가 아이 키우기에 미치는 영향
마을 뒷산에 올라 내려다 본 서울의 아파트 단지들.
마을 뒷산에 올라 내려다본 서울의 아파트 단지들 ⓒ백운희

반성한다. ‘장’도 아니고 글을 몇 달이나 묵혔다. 서울 지역 집값이 상승세를 이어가고 더불어 주택정책을 손봐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을 무렵, 한 자치단체장이 옥탑방 체험을 마치던 그때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또한 “서울에 집을 가진 기분은 어떤 것이냐”는 친구의 물음은 촉매가 됐다. 10월 1일(매년 10월 첫 월요일)이 마침 ‘세계 주거의 날’이어서 아이를 키우며 경험하는 주거(권)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글쓰기를 미룬 사이 서울 종로구의 고시원에서 불이 나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연초 여관 화재처럼 비(非)주택 주거가구의 열악한 환경과 이를 감싸지 못한 정책이 화를 키운 사고였다. 그리고 서울 마포구에선 철거와 강제집행의 과정에서 내 또래 청년이 목숨을 끊는 비극이 일어났다. 겨우 몇 달 만에 변할 리 없는 주거문제의 현실을 다시금 목도한 기분이다.

많은 이들이 여전히 집으로 인해 고통받고, 아이들 역시 여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그 사회는 지속가능할 리 없다.

◇ 우리 사회에서 ‘집을 갖는’다는 것

“어쨌든 이사는 내게 참 많은 걸 남겼지

 그게 좋던 싫던 내 삶 속에서 많을 걸 바꿨지.

 내 삶은 월세 나도 매달려 있어

 내 자존심은 보증금 다 건 채 하루를 살어

 그래서 다시 이사 가려고 해 (중략)

 이사 가자 정들었던 이곳과는 안녕

 이사 가자 이제는 더 높은 곳으로”

- 방탄소년단, 「화양연화 pt1」 ‘이사’ 노랫말 중

결혼 후 8년 동안 일곱 번의 이사 끝에 집을 장만했다. 그동안 부동산 복비며 이삿짐센터에 지불한 돈도 상당하지만, 형편에 맞는 집을 찾기 위해 기울여야 했던 노력과 발품은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우리는 ‘주거 사다리’를 오를 수 있었으니 운이 좋다고들 한다. 상속자산 없이 벌이만으로 서울에서 집을 장만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서 청년세대에게, 그리고 우리 아이들의 미래에 ‘주거 사다리’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을 것이기에, 힘들었지만 집을 샀으니 됐다고들 한다.

그런데 ‘힘들었지만 집을 샀다’는 것에서 ‘힘들게’ 또는 ‘샀다’는 데에 방점이 찍힌다면 우리 사회는, 나아가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지금과 달라질 바가 없다는 우려가 든다. 집을 ‘사야만’ 하는, 자발적인 선택처럼 보이나 결국은 선택지가 없는 현실에 주목하고, 나아가 집을 사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신혼시절 남편에게 “콘크리트에 투자할 생각 말고, 그 돈으로 사람에 투자하자”고 말했다(고 한다. 이는 남편이 복기해준 것으로 정작 나는 잘 기억하질 못했다). 집을 살 생각이 없었다. 머지않아 개인이나 가구별 선호, 필요에 의해 주거형태를 선택할 수 있는 사회가 되리라고 믿었다. 주택 보급률이 100%에 가깝고 생산인구는 감소하는데 집값이 계속 오를 리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때는 또 다들 그렇게 말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생각은 달라졌다. 아이가 태어나며 책임져야 할 존재가 늘었고, 삶에서 주거환경이 갖는 가치는 더해지는데, 멈출 줄만 알았던 주택 가격은 우리에게서 자꾸 멀어졌다. 개인의 신념과 노력만으로 행복을 지키기 어려운 사회임이 확 느껴졌다. 정부의 주택정책 기조는 이전 생각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낯선 도시, 서울로 이사까지 하면서 우리는 태세를 완전히 전환해야 했다.

안정적인 환경에서 아이를 기르는 문제는 육아의 중요한 가치로 여겨진다. ‘안정적’인 기준의 정도가 다소 달라질 뿐이다. 주택의 노후도, 의료 인프라, 교육여건, 유해시설 유무, 주변 자연환경 등을 고려하지만 현실적으로 자금 확보의 여력과 출퇴근 시간의 정도까지 생각하면 동네를 고르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발품을 팔며 지도만으로 동네 구석구석을 그려낼 경지에 이를 무렵 서울에서 첫 집을 구했다. 2년은 짧았다. 전세 값도 뛰어올라 매매와 차이가 크지 않았다. 세입자의 고충도 생각을 바꾸게 했다. 집 주인에게 계약 만료 몇 달 전부터 이사를 하겠다고 했음에도 그는 계약 만료일과는 상관없이 새 입주자가 나타나야 돈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엄연히 돈을 돌려받는 것인데 저자세를 취하고, 계약 만료일에 맞춰둔 새 집의 잔금 지급일을 어길 경우 각종 피해를 겪게 될 것도 세입자인 우리였다. 다주택 보유자라는 집주인은 “주고 싶어도 돈이 없다”는 말을 반복했다.

평생 만져보기 힘든 거액이 개인의 신용에 의존해 오가는데, 문제 발생 시 구제받을 방법은 멀기만 했다. 전세가율이 80%가 넘는 지역이 점차 증가하는 마당에 주택 가격 중 세입자의 재산 80%, 임대인은 20%만 지분을 가져도 임대인이 집의 권리를 대부분 결정하는 현실을 납득할 수 없었다. ‘내 집 없는 설움’은 불합리하지만 현실이었다. 결국 우리는 무리를 해서라도 집을 사는 선택을 했다.

국토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자기 집에서 사는 사람은 같은 집에 평균 11년을 거주하는 데 비해 세입자는 평균 3-4년 정도 머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입자로 살기 힘든 상황을 보여주는 동시에 왜 우리 사회에서 내 집 장만이 절대 과제가 되는지를 설명한다.

세입자에게 불리한 법규는 좀체 바뀌지 않았다. 세입자, 임차인의 권리 찾기는 정치권의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입법기관인 국회의원들의 처지부터 달랐다. 올 3월 기준 국회공보 ‘재산공개현황’에 따르면 지역구 국회의원(252명)의 25% 정도가 자기 지역구와 상관없는 소위 강남3구(강남, 서초, 송파를 일컫는다)에 살고 있거나 이들 지역에 집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 정책에 관여하는 정부 부서 4곳의 고위직 중 절반이 서울 강남지역에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조사도 있다. 대의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당사자로서 문제의 심각성을 체감하기 힘든 이들에게 정책 결정권과 향배를 맡기는 격이다. 기업과 관료, 정치권력이 결탁해 이익을 극대화하는 사회는 나머지 구성원들에게는 고스란히 피해를 입힌다.

세입자의 권리가 약하고, 주거권이 제대로 확립되지 못한 사회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선택은 스스로 그 상태를 벗어나려는 행동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세입자를 벗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이를 부추긴다. 최근 30년간 주택정책은 번번이 시장에 패배했다. 공급계획은 몇 년이나 앞서 세워지고 가격인상에 따른 대책은 이후에나 나온다. 일관성 없이 규제와 부양 사이를 오갔다.

주거 안정화를 이유로 주택공급을 늘리고, 대출 장벽을 낮춰 자꾸만 집을 사라고 권했다. 이를 통해 실익을 거둔 이도 분명 있다. 하지만 부당 이익을 가진 이들이 더 많다는 게 문제다. 수백 채씩 주택을 가진 임대사업자 수는 1년 사이 두 배로 늘었다. 전체 가구의 절반이 민간 임대 주택에 거주하는 데 말이다.

그런데 정작 주택 정책을 수립하는 근본이유, 핵심은 빠져 있다. 누구를 위한 정책이며 가장 우선해야 하는 대상이 어디에 있는지 고려가 없다. 공공임대주택 건설 비율은 여전히 느린 걸음 중이다. 이러면 고시원, 여관, 비닐하우스 등 비(非)주택 거주자처럼 자본과 정책의 관심에서 소외된 구성원들의 삶이 나아지길 기대하기는 어렵다.

◇ 아이들에게 집이란?

나를 더 슬프게 하는 일은 따로 있었다. 2년 전 이사를 한 직후였다. 아이가 물었다.

“엄마, 우리 집이 왜 좁아요?”

이유 모를 질문에 어리둥절해하니 “친구가 우리 집은 ○평이라며 놀러오지 않겠대요. ○평이 좁아요?”라고 덧붙였다. 아파트 놀이터에서 아이 유치원 같은 반 친구와 엄마를 만났다가 놀러오고 싶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번뜩 났다. 짐 정리가 끝나는 대로 초대하겠다고 답했는데 갑자기 딸의 항변을 듣게 된 것이다.

“와보지도 않았는데 왜 우리 집이 좁다는 건지 모르겠어요. 엄마랑 발레를 해도 될 만큼 넓은데 말이에요. 그런데 엄마, 집이 좁으면 친구랑 못 놀아요?”

아이는 천진한데, 엄마는 마음이 복잡해졌다. 일곱 살 아이의 세상에 자리 잡은 집의 개념과 면적을 기준으로 가치 판단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아이가 던진 물음처럼 ‘집이 좁으면 같이 놀 수가 없다’는 생각은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양육자의 가치관이나 또래 집단과의 교류, 미디어의 영향도 있겠지만 기저에는 결국 우리 사회 전반에 흐르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아이들은 집 안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는 시대를 살아간다. (초)미세먼지 농도가 높아지고 대기 질이 나빠서 바깥 놀이 대신 집에서 공놀이를 하고, 미끄럼틀과 그네를 달고 트램펄린을 설치한다. 하지만 그만큼 내 집 밖으로는 벽을 세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서울과 지역, 민영과 공영아파트 또는 임대아파트, 아파트와 빌라, 자가와 전세 등 주거형태를 놓고 자꾸만 대상을 나누고 분리하듯. 앞서 언급한 대로 지역에 사는 친구는 서울에 집을 가진 나를 부러워했지만, 내 아이의 친구에겐 우리 집이 함께 놀 조건에 부합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최근의 여러 연구에서 불평등이 매우 어린 시기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학교에 가기 전 유아들의 인지 능력과 상호작용 능력은 환경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고 설명한다. 결국 어른들 사이의 불평등이 부모의 소득과 양육 능력의 차이를 통해 아이들에게 그대로 효과를 미친다는 얘기다.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사람들은 사회적 만남과 상호작용을 더욱 피곤하게 생각하고 공동체 활동을 줄인다고도 한다. 

장래희망 우선순위가 ‘건물주(主)’인 아이들은, 안타깝지만 ‘노동’보다 부동산 투자로 수익 내는 것을 우대하는 세태, 주거 안정이 시급함을 공감하지만 내 집 값만큼은 오르기를 꿈꾸는 욕망이 제어되지 않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주거안정의 과제와 부담은 여전히 세대를 이어서도 개인의 몫으로만 남겨질 것이다.

‘주거’는 누구나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생존 수단이자 권리이다. 생활을 영위하는 장소의 의미를 넘어 그 안에서 이뤄지는 생활까지 모두 포함하는 생활권이자 생존권이다. 하지만 누구도, 어느 곳에서도 이를 말하지 않는다. 집을 적자생존의 대상으로, 주거형태로 상대를 가르는 인식이야말로 물려줘서는 안 된다는 다급함이 생긴다.

집은 사는(Buy)것이 아니라 사는(Live) 것이라는 말이 실현되고 ‘내 집’ 장만이 아니어도 주거권이 보장되는 공동체를 만들려면 실천이 필요하다. 「노동의 배신」(바버라 에런라이크, 부키, 2012년)에선 가난하기에 주거비용이 더 필요한 현실과 저소득층의 급여만으로는 일상을 이어가기 힘든 미국의 상황을 보여준다.

한국도 별반 다르지 않다. 타워팰리스의 3.3제곱미터당 월세는 11만 6000원이고, 고시원은 13만 6000원(함인선, ‘왜 고시원은 타워팰리스보다 비싼가?’, 중앙일보 2017년 12월 21일)이라는 조사처럼, 목돈의 보증금을 마련할 수 없어서 오히려 월세 부담을 더 져야만 하는 게 소위 주거 빈곤층의 현실이다.

이 규모는 많게는 228만 가구로 추정된다. 가난해도 공동체에서 비켜서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지역과 국가공동체의 존립이유기도 하다. 적어도 주거 빈곤층이 부유층보다 더 큰 비용을 부담하거나 이로 인해 일상적인 위험에 노출된 상황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토목이 아니라 사람에 투자하겠다.”

글을 쓰기 시작할 무렵 언론에 보도된 대통령의 말이었다. 토목이 아니라 사람을 더 우선하는 당연한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라면 철거과정에서 사람이 목숨을 끊는 비극은 벌어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철학이 구체적 정책으로 실현될 때 더 이상 아이들에게 집을 크기나 형태가 아닌 삶과 생존의 권리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칼럼니스트 백운희는 여전히 육아와 관련한 이야기에는 흔들리는 눈빛과 팔랑거리는 귀를 가지고 초등생 딸을 키우고 있는 전업모입니다. 아이와 함께 부모로 성장하며 겪은 시행착오들을 통해 조금 덜 실망하고 좌절하는 육아 팁을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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