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적인 재혼 고민… 우선 순위는 언제나 '내 딸 사랑이' 
현실적인 재혼 고민… 우선 순위는 언제나 '내 딸 사랑이' 
  • 칼럼니스트 차은아
  • 승인 2019.06.18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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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은아의 아이 엠 싱글마마] 사랑아, 다시 태어나도 내 딸 해주라

학교에 간 사랑이가 콜렉트콜로 전화를 걸어왔다. 

사랑이에겐 아직 스마트폰을 사주지 않았다. 대신, 학교에서 정말 급한 일이 생겼을 때 엄마에게 전화하라고 콜렉트콜 이용법을 알려줬다. 학교 콜렉트콜 번호가 뜨자 나도 놀라 전화를 받았다. 

요 며칠 몸이 계속 안 좋았다. 3일 내내 끙끙 앓았다. 그런 엄마가 걱정됐는지 사랑이는 학교 가기 전까지 계속 내 팔과 다리를 주물렀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 모양인지 콜렉트콜로 전화까지 했다. 사랑이는 내게 “엄마, 아프지 마”라고 말했다. 수화기 너머 사랑이의 불안한 마음이 느껴졌다. 나는 “엄마 괜찮아”라고 사랑이를 진정시키고 전화를 끊었다. 

미국에 다녀오고 나서 사랑이의 기분은 그야말로 최고였다. 실컷 놀고,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됐고, 좋아하는 수영을 매일 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엄마와 내내 붙어있었으니 그럴만도 했다. 그래서 전에 없이 행복한 얼굴을 보였는데 엄마가 아프니 어린 마음에 또 그늘이 진 모양이다. 사랑이는 ‘엄마가 없으면 나는 어떻게 살아’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곤 했다. 

생각해보니 이렇게 ‘마음 편하게’ 아파본 것도 정말 오랜만이다. 8년 만인가. 매일 회사와 집만 오가는 생활을 반복하고, 혼자 사랑이를 키우며 가장이란 책임감에 마음 놓고 아프지도 못했다. 몸이 아플 것 같으면 병원에 가야한다는 생각보다 ‘내가 아프면 안 되는데, 돈 벌러 가야하는데’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그런데 이번에 회사를 그만두고 사랑이와 과감히 미국에 가서 충분히 먹고, 자고, 놀며 휴가다운 휴가를 보내고 돌아왔더니 전에 없던 호사에 몸이 놀랐는지 몸살에 심하게 걸려 매일 골골대고 있다. 

엎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병상(?)에 누워 우연히 내 마음을 위로하는 책을 한 권을 발견했다.

책 제목은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스즈키 루리카, 놀, 2019). 제목부터 내 마음에 쏙 든다. 아빠 없이 사는 모녀의 생활을 딸의 시선으로 쓴 책이라는 이 책의 소개를 보고 ‘나와 사랑이 얘기잖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 ⓒ놀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 ⓒ놀

사실 나는 한 번도 사랑이의 시선에서 우리의 생활을 바라보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하루하루 버티는 것만으로도 ‘나는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 이상의 것에 공을 들이는 일에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얼마나 안일하고, 얼마나 창피한 일인가. 싱글맘의 딸은 자신의 엄마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요즘 사랑이가 가끔 핸드폰을 사달라고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사랑이에게 “아직 안 돼”라고 말했다. 돈이 문제가 아니다. 핸드폰을 쓰기에 사랑이는 아직 어리고, 주변에 선생님이나 어른들이 늘 계시니 연락이 필요하면 그들을 통해 하면 된다고 생각해왔다.

한 번 안 된다고 한 일에 두 번 말하는 것 싫어하는 엄마의 성격을 아는 사랑이도 두어 번 더 얘기하더니 이제는 더 이상 핸드폰을 사달라고 얘기하지 않는다. 그런 사랑이를 보며 나는 ‘사랑이는 엄마 마음을 이해할 줄 아는 착한 아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이 책을 보다 번뜩 그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책에서는 ‘하나’라는 아이가 놀이동산에 가기 위해 몰래 동전을 주으러 다니는 장면이 나온다.

그 부분을 읽으며 사랑이가 ‘엄마가 돈이 없어서 핸드폰을 안 사주는 거야. 내가 핸드폰을 자꾸 사달라고 하면 엄마는 돈도 없는데 더 힘들어지겠지?’라고 생각했을 것 같아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전화 화면을 보니 부재중 콜렉트콜이 4통이나 와있다.

엄마가 걱정돼서 하루 종일 마음 졸였을 사랑이, 엄마를 생각하며 콜렉트콜을 4번이나 걸었을 사랑이를 생각하니 마음이 또 저릿하다. 

“많이 컸네, 내 딸.”

이혼 후 아기띠에 갓난쟁이를 매달고 울며 버티던 시절이 어제 같다. 내가 흘린 눈물이 아기 볼에 떨어질 때마다 그게 또 맘 아파 계속 울었던 날들도 있었는데. 이제는 아기가 아이가 되어 아픈 엄마를 걱정하고, 친구들이 시끄럽게 뛰어노는 복도에서 혼자 수화기를 들어 엄마 전화번호를 눌렀을 딸 모습을 떠올리니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먹먹함이 밀려왔다. 

◇ 애 '때문에'란 말 마세요, 애 '덕분에' 살았으니까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 내용 중에 이런 내용도 있다. 

주인공인 딸은 엄마가 자기 때문에 재혼을 못한다고 생각해 혼자 고아원에 가기로 마음먹는다. 그 장면에서 나는 자꾸 사랑이가 떠올랐다. 사랑이도 이 주인공 아이 같은 마음이었으려나. 안 그래도 며칠 전 지인이 내게 “이제 재혼해야지. 언제까지 애랑 혼자 살 거야”라며 “재혼하려는데… 애 때문에 좀 불편한 것도 있지…?”라고 물었다. 그 말을 내뱉는 입이 얼마나 얄미워 보이는지. 

“무슨 소리세요. 저는 사랑이 덕분에 지금까지 버텼어요. 재혼하더라도 저랑 사랑이 둘 다 예뻐해 주는 남자 아니면 안 만나요. 그런 사람이 세상에 없으면 뭐, 말라지요.” 

새로운 가정에서 조금이나마 여유롭게 살고 싶은 마음, 솔직히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이다. 좁은 방일지라도 우리의 공간에서 나와 사랑이가 행복하게 사는 것인데, 사랑이가 책 속 아이처럼 엄마의 재혼을 누구보다 바란다면. 자기가 엄마 앞길 막는 존재라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괜한 걱정부터 앞선다. 

매사 당당하고 밝게, 열심히 살자가 나의 모토인데. 혹시 그 열심과 당당함이 겉만 그럴듯해 보이는 삶이 아니었을까. 그런 삶을 추구한다는 것은 결국 나의 이기심이 아니었을까. 정말 사랑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나는 어떤 엄마일까? 나의 모토대로 당당하고, 밝고, 열심히 사는 엄마인가? 나는 정말 사랑이에게 괜찮은 엄마인가?라는 생각을 하며 책장을 덮었다. 

시간이 더 흐르고 사랑이가 제법 또 크면 사랑이는 내게 어떤 말을 할까.

“엄마 딸로 살아서 참 좋아”라고 할까? 아니면 “왜 나만 이렇게 힘들게 살아, 왜 나를 이렇게 키웠어?”라고 원망할까?

오늘의 사랑이가 내일 어떤 사랑이로 클지 아직 모르겠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사랑아. 다시 태어나면 그때도 또 엄마 딸 해주라. 그때는 너한테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리고 그땐 멋진 아빠도 함께 있을 거야. 사랑이가 아빠 없이 사는 것 서럽다고 울지 않게 엄마가 멋진 아빠와 널 예쁘게 키워줄게.’

말이라도 이렇게 해야, 아빠 없는 설움 느끼며 사는 사랑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갚는 것 같다. 

*칼럼니스트 차은아는 6년째 혼자 당당하게 딸아이를 키우고 있다. 시골에서 태어났지만 어설픈 아메리카 마인드가 듬뿍 들어간 쿨내 진동하는 싱글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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