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과거에 얽매이는 나, 이젠 '오늘'을 살고 싶다
이혼 후 과거에 얽매이는 나, 이젠 '오늘'을 살고 싶다
  • 칼럼니스트 차은아
  • 승인 2019.09.10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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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은아의 아이 엠 싱글마마] 마음에 새살이 솔솔 솟아나길

이혼 후, 과거에 얽매여 살지 않겠다고, 보란 듯이 성공해 떵떵거리고 살겠다고, 상처는 툴툴 털고 일어나 현재를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마음이 자꾸 과거로 돌아갔다. 그래서 어떤 날엔 자기연민이 심했고, 어떤 날엔 자격지심이 심했다. 어떤 날엔 전 남편에 대한 복수심으로 부들부들 떨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나는 이런 상태에 놓인 나 자신에게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엇이 나를 현재에 살 수 없게 만들까. 무엇이 내가 과거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발목 잡는 걸까.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어. ⓒ베이비뉴스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어. ⓒ베이비뉴스

◇ "너도 똑같은 남자야 너도 날 버릴 거잖아" 

이혼 후 내게는 전에 없던 버릇이 생겼다. 어떤 남자와 진지한 관계로 발전할라치면 그 관계를 먼저 끊어버렸다. 누군가를 만나보려고 해도 전 남편이 준 트라우마가 내 무의식을 지배했다.

내게 아무리 잘 해주는 남자를 만나도 혼자 불온한 상상 속에서 시달렸다. 상대방을 의심하고 욕하다 결국 ‘너도 똑같은 남자야. 간도 쓸개도 다 줄 것처럼 굴다가 결국 너도 바람 피울 거잖아’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렇게 관계를 정리해야만 마음이 편안해졌다.

또, 이혼 후 더 보수적인 관점으로 남녀관계를 바라보게 됐다. 딸이 있으니 누군가를 만날 때 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데이트하고 싶어도 시간이 없어 할 수가 없고, 설사 그 시간이 마련된다고 하더라도 이모집에 맡겨놓은 사랑이가 눈에 아른거려 오래 시간을 쓸 수 없었다. 아무 남자나 데려가서 사랑이에게 엄마의 남자친구라고 소개해주고 싶지도 않았다. 

전 남편을 잊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해보려고 했지만, 이런저런 현실이 버거워 관계가 깊어지기 전에 내 선에서 정리해버리는 일이 반복됐다. 이런 일을 몇 번 겪고 나서야 알았다. 내게는 치유해야 할 상처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음을. 

전 남편의 기억 때문에 나는 나의 현재를 살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정말로,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 어떻게 해야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방법이 있다면 어떻게든 찾아서 치유하고 회복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이런 상황이 몇 차례 반복되고, 관계에 많이 지쳐 있을 때 즈음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됐다. 그는 눈이 안 보이는 사람이다. 태어날 때부터 눈이 안 보였던 것이 아니라 몸이 안 좋아지면서 갑자기 시력을 잃었다고. 지금은 치유 관련 사업에 종사하고 있다. 나는 어느 날 그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눈이 불편하니 많은 분이 옆에서 잘 챙겨주시겠어요.”

그는 꼭 그런 것만도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나의 고민과 상처를 털어놓게 됐고 그도 나와 같은 상처가 있음을 알게 됐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눈이 이렇게 되기 전까지 저는 잘나가는 사업가였고, 아쉬울 것 없는 인생을 살았죠. 그런데 눈이 안 보이게 되면서 아내가 나를 떠나고, 내 주변의 사람들이 모두 나를 떠나더군요.”

내게는 그 말이 ‘눈이 이렇게 되지 않았더라면 가정이 유지됐을 텐데… 눈이 안 보이는 것보다 아내가 나를 떠났다는 상처가 더 큽니다’라는 말로 들렸다.

◇ 동정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냥 나 자체를 인정해주세요 

내가 이혼 이야기를 했을 때 누군가 내게 이런 말도 했다. 불쌍한 척하지 말라고.

“불쌍한 척하지 마세요. 요즘 이혼은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일부러 사람들에게 동정 얻으려고 이혼 얘기를 하는 거죠? 이혼보다 세상에 놀랄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의 말에 나는 “맞아요. 이혼보다 세상에 놀랄 일은 정말 많죠”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다만 나는 다른 사람의 동정을 얻으려고, 나를 좀 불쌍하게 봐줬으면 해서 이혼 얘기를 꺼낸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제가 굳이 이혼 얘기를 한 건, 나와 같은 상처를 앓고 살 누군가에게 위로를 전하고 더 열심히 살아내자는 응원을 보내기 위해 이야기한 것뿐이에요.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놓고 봤을 때 나의 이혼은 뉴스거리도 안 되는 작은 일에 불과하죠. 하지만 당사자에게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상처라는 걸 알아볼 수 있는 눈을 당신이 가지길 바라요.”

나는 사람들이 나를 동정하지 않길 바란다. 나를 불쌍하게, 안타깝게 보지 않아도 된다. 다만 나의 이야기가 같은 상처가 있는 사람들에게 공감과 위로가 되길 바란다. 또, 결혼이나 이혼이나 이런 것과 상관없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에게 배우자의 외도와 이혼이라는 사건을 겪은 당사자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알아차릴 수 있는 눈이 생기길 바란다.

자신의 기준과 생각으로 재해석해서 당사자를 가르치려 드는 것이 아니라 “그랬구나. 그럴 수도 있었겠구나”라며 당사자의 상처를 인정하고 함께 이해할 줄 아는 마음 말이다. 

자신만의 잣대로 나를 재는 사람들에게 상처 입은 적도 있지만 그래도, 나를 응원하고 격려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안다. 그 덕에 용기를 내 하루를 살아간다.

나는 어제보다 오늘 더 괜찮은 하루를 살아내려고 노력하고, 내 마음에 남은 상처를 치유할 방법을 찾고 있다. 이렇게 살다 보면 내 안에 생긴 또 다른 상처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지혜와 여유를 갖게 되지 않을까?

*칼럼니스트 차은아는 7년째 혼자 당당하게 딸아이를 키우고 있다. 시골에서 태어났지만 어설픈 아메리카 마인드가 듬뿍 들어간 쿨내 진동하는 싱글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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