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전국의 모든 어린이집에 ‘어린이집 평가제’가 의무화됐다고 한다. 그동안은 국공립 어린이집이나 규모가 조금 큰 민간 어린이집을 제외하고 가정 어린이집 같은 소규모 어린이집은 평가를 받지 않은 곳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처음 평가를 준비하는 어린이집은 그야말로 ‘비상이다. 평가원이 직접 어린이집에 방문해 종일 모든 교육 과정과 생활을 지켜보는 방식이라고 하니, 어린이집에서는 위생을 더욱 강화할 뿐만 아니라 평가 당일 선생님들의 말투, 눈빛까지 자체적으로 검열하고 교정해 만반의 준비를 한다고 했다.
아이가 작년부터 다니던 어린이집은 올해 처음 '학부모 운영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런 것이 생겼다는 사실만 알뿐, 누가 운영위원이 됐는지 어떤 회의가 이뤄지고 무엇을 진행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운영위원회뿐만이 아니다. 오가며 만나는 학부모들끼리도 “갑자기 왜 이런 걸 하지?”라는 말을 나눌 만큼 작년과 비교했을 때 달라진 것이 한둘이 아니다. 물론 그때까지만 해도 어린이집 평가제에 대해 생각도 못 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내 아이가 하루 대부분을 보내는 곳의 보육 환경이 달라지고 있음에도, 매번 번갯불에 콩 볶아먹는 식이니 부모로서 무엇이, 어떻게, 왜 바뀌는지 충분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는 점이다.
소통의 부재는 각종 오해와 의심을 더욱 증폭시켰다. 평가일 몇 주 전 어린이집에서는 날씨가 좋다며 작년보다 부쩍 많이 야외 활동을 나갔다. 아이들이 야외 활동을 한 날 중 어떤 날은 미세먼지 수준이 ’나쁨‘인 날도 있었다. 이렇게까지 외부 활동을 갑자기, 자주 해야 하는 이유를 어린이집에 물어보니, 아이들이 실내에만 있으면 답답해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실 가정 어린이집은 공간적으로 열악한 점이 없지 않아 있어 아이들이 그 안에서만 1년 이상 생활하다 보면 꽤 갑갑할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그 말이 이해가 안 갔던 것은 아니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이상할 만큼 무리하게 외부 활동을 강행하던 시점이 평가일을 앞둔 시점이었다는 것이 석연치만은 않았다.
드디어 평가 당일. 그날은 아이가 며칠 심하게 감기를 앓고 난 뒤라 컨디션이 꽤 좋지 않았다. 담임 선생님께 아이의 상태를 미리 말씀드리고 어린이집에 들여보냈다. 그리고 돌아온 하원 시간, 선생님께 전달받은 내용은 온통 아이에 대한 비난으로 가득했다.
평가를 앞두고 얼마나 열심히, 많은 날을 준비했겠는가. 그 노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교사는 무엇보다 아이가 우선이어야 하는 것 아니던가. 아이가 있는 자리에서 서슴지 않고 유독 평가 당일 말썽이 심했다는 말을 날을 세워 감정적으로 내뱉는 교사를 보며, 학부모로서 나는 평가제 자체가 원망스러워졌다.
아이들 말로는 평소에 있지도 않은 장난감과 교구들까지 있었다고 하는데, 대체 평가 당일의 ‘보여주기식’ 하루를 두고 무엇을, 어떻게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말인가? 심지어 어떤 부모는 어린이집으로부터 평가 기간에 아이의 등원을 자제시켜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아이가 자기주장이 강한 편이라 평소 교사와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 이유란다.
평가가 끝나고 얼마 후 아이의 어린이집에서는 보조교사 채용을 위한 면접이 이뤄졌다. 아직 평가 결과가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결과가 좋을 것이라는 예상에 보조교사를 채용하려고 한다고 했다. 의문은 늘어났지만, 아이에게 또 다른 피해가 올까 걱정돼 더는 언급하지 않았다.
보육 현장 개선을 위한 수많은 노력 중 하나로 시행되고 있는 어린이집 평가제. 이는 분명히 더 나은 보육 환경을 만들기 위함이지만, 그 방법과 기준이 현장에 제대로 적용되고 있는지는 다시 한번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어린이집 평가제. 나와 아이에게는 정말 상처만 가득히 남았다.
*칼럼니스트 여상미는 이화여자대학교 언론홍보학 석사를 수료했고 아이의 엄마가 되기 전까지 언론기관과 기업 등에서 주로 시사·교양 부문 글쓰기에 전념해왔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은 아이와 함께 세상에 다시 태어난 심정으로 육아의 모든 것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배워가고 있다.
【Copyrightsⓒ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