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는 못 샀지만 '부자' 된 기분이 든 까닭
마스크는 못 샀지만 '부자' 된 기분이 든 까닭
  • 칼럼니스트 여상미
  • 승인 2020.03.25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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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시태그로 보는 육아맘] #공적마스크 #마스크5부제 #마스크재고알림 #약국애플리케이션 #시민의식 #노령인구마스크대책

공적 마스크 판매와 동시에 마스크 5부제가 시행되고 있다. 나도 내가 태어난 연도의 끝자리인 요일에 맞춰 마스크를 사기 위해 휴대폰으로 알림 설정도 해놓고 아이의 마스크를 대리 구매하기 위해 등본도 준비해 놓았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약국은 아직도 오픈 전부터 대기 번호를 나눠주고 번호표를 받지 못하면 아예 살 수 없지만, 그래도 공적 마스크 판매 전보다는 나은 상황이다. 평일에 사지 못한 사람들은 주말에 살 수 있으니, 그래도 일주일에 두 번은 살 수 있는 기회라도 생긴 셈이니까.

지난 주말이었다. 평일에 미처 마스크를 사지 못했던 나는 우연히 들른 마트 내 약국에서 마스크 판매가 시작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뜻밖의 행운처럼 줄을 설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마스크 수량이 워낙 한정적이었기 때문에 줄을 섰던 모든 사람이 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이내 마스크 재고는 열 개 남짓 남게 되었고 다행히 나는 일고여덟 번째 순번을 기다리고 있었다.

약국 관계자가 나와 줄을 서 있는 나머지 분들께 재고가 없음을 안내하고 '당일 판매 종료' 팻말도 붙였다. 뒤로 줄을 섰던 사람들은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이 같은 상황을 이미 예상한 듯 일사불란하게 자신의 자리를 찾아 돌아갔다.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마스크를 좀 더 쉽게 구매하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여상미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마스크를 좀 더 쉽게 구매하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여상미

그런데 나보다도 앞서 줄을 서 있던 사람들 몇몇이 갑자기 힐끗힐끗 뒤를 돌아보다가 하나둘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내 바로 앞의 아이 엄마도 자리를 비켰다. ‘아직 마스크 수량이 열 장 정도는 남았다고 했는데 왜 다들 포기하고 돌아서는 걸까?’ 의아하게 생각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모습이 있었다.

마스크를 사기 위해 뒷줄에 섰다가 살 수 없게 된 할머니, 할아버지 몇 분이 아직 그 자리에 계셨다. 마스크를 사기 위한 행렬에서는 벗어났지만 딱히 바로 다른 곳으로 이동할 계획이 없으신 듯 약국 쪽을 멍하니 바라보는 모습을 보니, 아직 집에 마스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회만 생기면 더 구매하려고 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결국 자리를 뜨는 사람들과 함께 나도 슬그머니 무리에서 빠져나왔고, 그날 마스크는 사지 못했지만 왠지 부자가 된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뉴스에서 마스크를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던 사람 중 어떤 노인과 한 인터뷰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젊은 사람들은 휴대폰으로 마스크 어디 파는지, 얼마나 남았는지도 알고 하는데 (중략) 나는 그런 것도 할 줄 모르니 무작정 찾아가거나 기다릴 수밖에 없어….”

최근 외출을 할 때는 무조건 마스크를 껴야 한다고 신신당부하는 나 때문에, 아이도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마스크를 꼭 껴야 한다는 강박증 같은 것이 생겨난 모양이다. 간혹 마스크를 하지 못한 어르신들이 지나갈 때마다 “엄마 왜 저 할머니는 마스크를 안 했어? 왜 저 할아버지는 마스크가 없지?” 하고 묻는데, 그럴 때마다 민망한 마음에 무조건 아이에게 그런 말 하지 말라며 재빨리 그 자리를 피하기에 바빴다.

나만 생각하면 남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당연히 건강, 생명과 직결되는 일이기에 좀 더 이기적일 수밖에 없고, 내 가족부터 챙기기 바빴지만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돌아보면 (꼭 기부처럼 직접적인 도움이 아니라도) 다른 이들을 위한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생각해보니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가까운 약국과 재고를 확인하고 움직이기 때문에 비교적 구입에 실패할 확률이 낮다. 덕분에 쓸데없는 시간과 동선을 허비할 일도 적다. 그러니 가능하다면 그렇지 못한 분들께 양보하는 건 어떨까. 나는 이제 마스크가 없는 노인들을 보면, 쓰지 않은 것이 아니라 구매를 못한 것은 아닐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먼저 든다.

같은 걱정을 하는 주변 젊은엄마들이 마스크 5부제 시행 계획안에 노약자가 구입할 수 있는 시간과 요일 등을 따로 지정해 주는 것은 어떨까 하는 의견도 내놨다. 물론 정부와 기관 등에서 취약계층에 마스크를 무료로 지급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급받지 못한 더 많은 노인들은 오늘도 꽃샘추위 속에 줄을 서서 마스크 두 장을 사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니까. 이를 위한 실질적인 대안이 함께 마련될 수 있다면 더욱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개학 연기로 거의 모든 생활을 아이와 함께 나누고 있는 엄마 입장에서 우리 사회가 노인들을 대하는 더 근본적인 대책, 미덕을 나누고 실천하는 본보기를 더 많이 보여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칼럼니스트 여상미는 이화여자대학교 언론홍보학 석사를 수료했고 아이의 엄마가 되기 전까지 언론기관과 기업 등에서 주로 시사·교양 부문 글쓰기에 전념해왔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은 아이와 함께 세상에 다시 태어난 심정으로 육아의 모든 것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배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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