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가족 규범에 갇혀서는, 이해 못할 가족의 변화
정상가족 규범에 갇혀서는, 이해 못할 가족의 변화
  • 김재희 기자
  • 승인 2019.12.21 15: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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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제26차 ‘젠더와 입법포럼’ 개최

【베이비뉴스 김재희 기자】

19일 제26차 젠더와 입법포럼 ‘변화하는 가족과 법’에서 발제를 맡은 박복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서종민 기자 ⓒ베이비뉴스
19일 제26차 젠더와 입법포럼 ‘변화하는 가족과 법’에서 발제를 맡은 박복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서종민 기자 ⓒ베이비뉴스

1인 가족, 비혼모 가족, 한부모 가족, 공동체 가족, 동성부부와 그 가족 등 현대사회 가족형태는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하지만 헌법을 비롯한 법과 제도는 혼인과 혈연관계를 중심의 정상가족 규범에 머물러 있다. 사회에서 ‘가족’ 인식이 변하고, 현실에서도 ‘가족’ 개념이 변하는 만큼, 법과 제도 개선에 대한 요구가 나오고 있다.

19일 서울 불광동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제26차 젠더와 입법포럼. ‘변화하는 가족과 법’이라는 주제를 내걸고, 한국젠더법학회 동계세미나로 한국젠더법학회와 함께 주최한 이번 행사는 가족 변화에 따른 입법과제를 법과 제도 전반에 걸쳐 살펴보고, 향후 과제를 모색하는 자리였다.

이번 포럼은 차선자 전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배인구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 박복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 발제를 맡았다. 정용신 창원지방법원 부장판사, 조은희 제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조숙현 법무법인 원 변호사, 조은주 명지대학교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가 토론자로 참석했다. 

19일 서울 불광동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국제회의장에서 제26차 젠더와 입법포럼 ‘변화하는 가족과 법’이 열렸다. 서종민 기자 ⓒ베이비뉴스
19일 서울 불광동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국제회의장에서 제26차 젠더와 입법포럼 ‘변화하는 가족과 법’이 열렸다. 서종민 기자 ⓒ베이비뉴스

◇ “한국, 정상가족 기준으로 법제화”… 다양한 가족 지원책 필요하고 지지도도 높아

‘가족의 다양화에 따른 법적 대응’을 주제로 발제한 박복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2019년 현재까지 한국은 사회의 기본 단위가 가족이라는 중요한 대전제를 기초로, 법적으로 결혼한 부부와 미혼자녀로 이뤄진 가구(정상가족)를 기준으로 다양한 법제화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과 제도가 정의하는 ‘가족’과 현실 인식 사이에는 간극이 있다는 점은 통계가 보여준다. 박 연구위원은 여성가족부가 올해 하반기에 실시한 ‘가족 다양성에 대한 국민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했다. 이 조사에서 ‘혼인,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함께 거주하고 생계를 공유하는 관계면 가족이 될 수 있다’는 질문에 응답자 67.5%가 동의를 표시했다. 

결혼과 비혼·혼외 출산을 바라보는 태도도 가파르게 변화 중이다. 비혼 동거를 보는 ‘허용적 태도’도 2008년 42.3%에서 2018년 56.4%로, 14.1%p 증가했다. 평균 초혼연령대에서 동의 정도는 70%를 상회했다. 동시에 결혼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은 같은 기간동안 68.0%에서 48.1%로 급감했다. 혼외 출산에 대한 허용적인 태도도 21.5%에서 30.2%로 9%p 정도 상승했다. 

박 연구위원은 “법률혼에 구속되지 않는 태도가 실제 혼인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풀이했다. 그러면서 “가족 형태와 가족에 대한 인식변화를 보여주는 결과들은 단일모델을 가족의 기준으로 삼을 때 한계에 직면하게 될 것을 예측할 수 있다”며, “다양한 가족에 대한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여가부 조사에서 1인가구 지원과 법률혼 외 혼인차별 폐지에 대한 지원 요구도 높은 지지도를 나타냈다.

박 연구위원은 “지금까지 (가족 관련) 법제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가족위기담론’”이라고 지적했다. 박 연구위원의 설명에 따르면, 가족위기담론을 기반으로 마련된 정책은 ‘정상가족의 위기를 사회적으로 대응해, 가족을 유지·존속해야 한다’는 목표를 가진다. 

박 연구위원은 가족해체를 예방해야 한다는 이념을 바탕으로 마련된 대표적인 법제로 ‘건강가정기본법’과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을 들었다. 반면, 이상적인 가족상을 벗어난 가족에 대한 대처로 마련된 법으로 ‘한부모가족지원법’과 ‘다문화가족지원법’을 꼽았다.

박 연구위원은 가족법과 현실 인식의 변화 경향을 “가족의 다양화가 사회현상으로 본격화하면서 가족의 위기로서가 아니라 사회변동으로서 가족이 변동하는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며 “가족 위기담론에서 제정된 다양한 법제도가 오히려 시민들의 삶을 부적절하게 평가하고 통제하고 관리하는 특성을 가진다고 보는 인식이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19일 제26차 젠더와 입법포럼 ‘변화하는 가족과 법’에서 정용신 부장판사, 조은희 교수, 조숙현 변호사, 조은주 교수가 토론자로 참석했다. 서종민 기자 ⓒ베이비뉴스
19일 제26차 젠더와 입법포럼 ‘변화하는 가족과 법’에서 정용신 부장판사, 조은희 교수, 조숙현 변호사, 조은주 교수가 토론자로 참석했다. 서종민 기자 ⓒ베이비뉴스

◇ ‘사실혼에도 상속·입양 권리’, ‘동거인 보호자 서명’ 등에 긍정적 답변

박 연구위원의 발제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올해 일반 과제 연구인 ‘여성·가족 관련 법제의 실효성 제고를 위한 연구 – 가족의 다양화에 따른 법적 대응’을 기초로 한다. 박 연구위원은 연구에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소개했다. 

전국 만 19세 이상 65세 이하 성인 남녀 1340명을 대상으로 한 이번 조사에서 ‘혼인과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함께 거주하고 생계를 공유하는 관계이면 가족이 될 수 있다’라는 질문에 가장 높은 점수를 준 집단은 동거 중인 집단으로, 4점 만점에 평균 3.08점으로 집계됐다. 

‘반드시 함께 살지 않아도 정서적 유대를 가지고 친밀한 관계면 가족이 될 수 있다’는 질문에 가장 높은 동의를 표시한 집단은 ‘동거 중(3.03)’, ‘결혼한 적 없고 현재도 결혼하지 않음(2.71)’ 순으로 나타났다. 연령대별로 보면 19~29세가 2.75로 동의 정도가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60~65세가 2.54로 가장 낮았다.

박 연구위원은 “가족 개념을 확장하는데 있어 응답자가 삶의 과정에서 혼인상태의 변화를 겪었거나 현재 전통적인 법률혼 범위 밖에서 가족을 구성하고 있거나, 혹은 지인 중 동거가족이 있어 ‘비전형적인 다양한 가족’을 경험하는 것이 영향을 많이 주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또한 박 연구위원은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사실혼 관계 당사자들에게 법률혼과 같은 상속과 입양의 권리를 부여하는 것’에 긍정적인 의견이 더 우세했다”며, ‘동거인의 의료 수술이나 응급상황에서 보호자로 서명하는 것’이나 ‘동거인 사망 시 시신을 인도받아 장례를 치르는 것’과 같은 '가족책임을 수행하는 행위'에도 동의수준이 높았다고 덧붙였다.

박 연구위원은 “가족과 관련한 기본 인식의 대전환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다양한 가족은 지금과 같은 법제에서 어디에도 속할 수 없어 법적 공백이 발생한다”고 지적하고 “개인이 자유롭게 선택한 가족의 삶을 민법에서도 실현할 수 있도록 그 틀을 재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조숙현 법무법인 원 변호사는 토론에서 “다양한 가족에 대한 정책적 관심이 매우 반갑게 여겨지면서도, 저출산에 대한 대책에서 (그 관심이) 출발했다는 점에서 우려가 된다”며, “저출산 대책에서 시작된 다양한 가족제도 보장은 결국 저출산 해결이라는 목적을 위해 복무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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