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병’은 직장인의 고질병 중 하나다. 일요일 밤, 월요일에 대한 부담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며 좌불안석이라면 당장 펜을 들고 내일 어떤 일을 예측할 수 있을지 상세히 써 보자. 그래도 월요일이 두렵다면? 일요일에 출근하는 수밖에 없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할 수 있고, 조절할 수 있는가? 이 두 가지 가능성을 높여야 스트레스를 극복할 수 있다. 즉, 월요병 극복을 위해 펜을 들어보라고 한 이유는 ‘예측 가능성’을 높이라는 뜻이었다. 예측 가능성을 높이다 보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만약 그것을 조절할 수 없다면 지금이라도 준비작업이 필요하다.
월요병처럼 우리가 겪고 있는 또 다른 두려움은 없는지 살펴보자. 삶의 다양한 과업 속에서 많은 역할을 요구받는 우리에게 이런 두려움은 늘 그림자처럼 우리를 따라다닌다. 두려움은 긴장에 따른 복통에서부터 공황장애로까지 발현하며 우리 삶에 다양하게 나타난다. 어른들도 이런데 하물며 우리 아이들은 어떨까?
◇ 아이의 두려움을 부모가 짊어지면 아이는 아기에 머물고 만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우리 집 첫째 서율이에게는 수많은 과업이 존재한다. 모든 것을 의존하던 생활에서 이제는 스스로 해야 하는 일이 많아졌다. 내가 요즘 아이에게 건네는 질문의 대부분 또한 ‘과업 중심적’이다.
“오늘은 뭐 했어?” “오늘은 혼자서 OOO 했어?” 등 무엇을 스스로 했는지에 대한 질문이 대부분을 이룬다. 신발 끈을 묶는 것에서부터 화장실 뒤처리까지 이제 서율이가 혼자 감당해내야 하는 것들이 많다. 그러면서 아이는 혼자 해내야만 한다는 두려움을 느낀다. “아빠 없으면 나 혼자 어떻게 해?” 아이들의 눈망울에 담긴 두려움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아이의 두려움을 부모가 모두 처리해준 나머지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는데도 신발 끈도 혼자 못 묶고, 밥도 먹여줘야 먹는 아이의 사례를 상담한 적 있다. 나는 이 사례에서 ‘너무 귀한 아이’라 아이의 두려움을 부모가 짊어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사랑의 방식은 다르다. 아이를 아끼려는 부모의 사랑을 비판할 수는 없다. 다만, 아이가 삶을 주체적으로 살 수 있도록 사랑의 에너지를 ‘전환’하는 목표를 세우며 아이의 변화를 끌어낼 수 있었다. 반대로 “왜 과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냐”며 아이를 다그치거나 모든 책임을 아이에게 돌리는 부모도 있다. 부모의 개입은 적절한 수준에서 이뤄져야 한다.
◇ 아이가 ‘실존’ 찾길 바란다면, 아이의 등 뒤를 묵묵히 따라갈 것
이처럼 두려움은 의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이다. 불안은 ‘홀로서기’ 하며 실존을 만난다. 책 「어린 왕자」에 나오는 사막에 놓이는 것과 같은 일이다. 고독한 인간의 삶은 사막 그 자체로 표현할 수 있다. 본질적인 고독 속에서 자기를 바라보는 연습이 ‘실존’을 찾는 것이다.
우리는 평소 아이들이 자신의 실존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사막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은 우물을 파는 것 혹은 우물을 찾는 것이다. 불안을 두려워하지 말고, 불안은 ‘오아시스 같은 나의 실존을 찾는 동반자’라고 가르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맹자의 제자 공손추가 “군자가 자기 아들을 직접 가르치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라고 물었다. 맹자는 “자식이 부모의 기대만큼 따라주지 않으면 성을 내게 된다. 반면에 자식의 입장에서는 ‘부모 자신도 못 하는 주제에 나만 잘하고 올바르게 하라’고 한다며 반발하게 된다”고 답했다. 이를 두고 대부분이 자식 공부는 ‘외주’를 줘야 한다고 한다. 나의 경험상 이는 틀린 말이다.
부모가 자녀를 앞질러 목적지로 끌고 가기 때문에 성을 내게 되는 것이다. 아이의 실존을 무시한 채 말이다. 말을 억지로 우물가에 끌고 갈 수는 있어도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다. 아이를 ‘자기발견’에 대한 갈증, ‘실존탐구’에 대한 갈증을 느끼게 할 수 있다면 자신의 사막에서 우물을 파든지 오아시스를 발견하든지 할 일인데 말이다.
부모는 조바심이라는 두려움을 버리고, 아이의 등 뒤에 서서 따라가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사실도 알아야 한다. 자신의 실존을 찾지 못한 사람은 자녀의 실존을 책임질 수 없다는 것 말이다. 당신은 사막에서 우물을 파고 있는가? 아니면 오아시스를 찾아 탐험하고 있는가?
*칼럼니스트 문선종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유치원 교사와 결혼해 두 딸아이의 바보가 됐다. 아이들을 좋아해 대학생 시절 비영리 민간단체를 이끌었고, 구룡포 어촌마을에서 9년간 아이들이 행복한 공동체 마을 만들기 사업을 수행했다. 지금은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홍보실에서 어린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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