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들은 "내붑서게!" 한마디에 어깨가 쫙 펴진다
제주에서 들은 "내붑서게!" 한마디에 어깨가 쫙 펴진다
  • 칼럼니스트 김덕화
  • 승인 2020.02.28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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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발달장애 아이 키우기] "와, 내가 애를 데리고 다니면서 이런 칭찬을 다 듣네"

아이는 오늘도 집 앞 단골 식당 온장고 앞에서 눈을 반짝입니다. 얼마 전부터 아이의 마음을 훔친 물건은 식당 공깃밥 온장고. 밥을 너무나 좋아하는 아이는 반짝이는 스테인리스 상자 안에 공깃밥이 가득 들어있다는 것을 알고부터 식당에만 가면 온장고 앞에 꼭 붙어 서서 떨어질 줄을 모릅니다. 일하는 분들과 손님들에게 방해가 될까 봐 아이를 자리에 데리고 오려고 하면 주인아주머니는 눈가에 웃음을 가득 담고 이렇게 말씀하세요.

“내붑서게.”

제주말로 ‘내버려 둬라, 괜찮다’라는 뜻입니다. 이어 "밥을 참 잘 먹는다, 잘 생겼다"하는 덕담이 따라옵니다. 가슴이 따뜻해지고, 어깨가 쫙 펴지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지요.

'와, 내가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이런 칭찬을 다 듣네!'

나름 내공을 많이 다지며 아이를 키웠다고 생각했는데, 제주에 오니 단련된 마음이 해제되는 경험을 많이 합니다. 속으로 눈물 삼키는 일이 많이 줄었습니다. ⓒ김덕화
나름 내공을 많이 다지며 아이를 키웠다고 생각했는데, 제주에 오니 단련된 마음이 해제되는 경험을 많이 합니다. 속으로 눈물 삼키는 일이 많이 줄었습니다. ⓒ김덕화

발달장애 아이를 10년간 키우다 보니 나도 모르게 어깨가 움츠러들고, 고개가 땅으로 떨어지는 일이 많았습니다. 입에서는 반사적으로 ‘죄송하다’는 말이 하루에도 몇 번이나 나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아이를 진정시킬 때도, 슈퍼에서 물건을 이것저것 만질 때도, 식당에서 마구 돌아다닐 때도 발달장애 아이를 돌보는 부모들은 이 모든 상황에서 아이에게 적절한 대응과 교육을 하는 것이 벅찹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주눅이 들기도 하죠. 처음에는 많이 울기도 했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 아이는 그런 특징을 가진 존재이기에 주눅이 들 필요가 없는 일이었어요. 존재를 부정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런 생각이 드니 제 생각과 행동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엘리베이터에 탄 아이가 큰 소리를 내면 누구나 쳐다볼 것 같습니다. 하지만 보호자가 이 아이의 특별한 행동에 대해 잘 대처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면 경계의 눈빛은 사라집니다. 더 나아가 보호자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돌보고 있다는 것이 전달되면 아이에게 함부로 하는 사람들은 많이 줄어들더라고요.

◇ 건강한 이웃의 힘, 이것이 바로 ‘제주도 클라스’ 

좀 특별한 아이가 아닌, 그저 아이다운 아이라고 너그럽게 봐 주는 곳. "제주는 동네 '클라스'가 다른 것 같아!" ⓒ김덕화
좀 특별한 아이가 아닌, 그저 아이다운 아이라고 너그럽게 봐 주는 곳. "제주는 동네 '클라스'가 다른 것 같아!" ⓒ김덕화

나름 내공을 다지면서 발달장애 아이를 키워왔는데, 제주도에 오니 단련한 마음이 무장해제 되는 경험을 많이 합니다. 우리 가족이 운이 좋은 건지 모르겠지만, 제주에 와서는 아이를 데리고 다니며 속으로 눈물을 삼키는 일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시끄럽고 유난스러운 우리 가족을 따뜻하게 맞이해 주신 이웃집, 아이가 종횡무진 활보하고 다니는 동네의 식당, 마트, 놀이터 그 어디에서도 아이나 우리 가족에게 눈살을 찌푸리는 경우를 보지 못했어요.

제주 날씨만큼이나 따뜻한 사람들의 태도에 아이가 먼저 반응했어요. 아이는 웃으며 먼저 인사를 건네주는 이웃집 아주머니를 위해 엘리베이터 버튼을 대신 눌러주고, 칭찬을 받습니다. 엘리베이터에 타는 동안 아이는 얼마나 버튼을 누르고 싶었을까요? 이렇게 기다려주고, 칭찬해주면 아이는 너무나 잘 해낼 수 있는데! 엘리베이터에서 아이를 붙잡고만 있었던 그 수많은 시간이 아득하게 느껴집니다.

처음 제주에 이주해 왔을 때는 이 분위기가 너무 신기하고 놀라웠어요. 오죽했으면 서울 친구들에게 전화해서 “제주는 동네 ‘클라스’가 다른 것 같아!”라고 했을까요?

이제 입도 3년 차인 저는 이 ‘제주도 클라스’의 정체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앞에서 얘기한 동네 단골 식당 아주머니의 “내붑서게”라는 말에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지 않나 짐작합니다. 특별한 아이의 행동을 그저 아이다운 행동으로 너그럽게 바라봐 주시고, 힘든 아이를 돌보는 부모를 따뜻하게 품어 주시는 마음이겠지요.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는 데에는 좋은 치료실이나 체계적인 시스템만큼이나 건강한 이웃이 필요함을 이곳 제주에 와서 절실하게 느낍니다. 모든 아이가 그렇겠지만, 발달장애 아이와 그 가족들은 더욱 자신을 지지해주는 환경에서 날개를 펴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제주에서 우리 가족은 처음으로 건강의 이웃의 힘을 느낍니다. 이것이 바로 '제주도 클라스'가 아닐까요?

*칼럼니스트 김덕화는 제주에서 열 살 발달장애 남자아이를 키우는 엄마입니다. 2년 전 제주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어서 덜컥 제주도로 가족이 이주해서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주원이를 더 잘 이해하고, 세상에 주원이를 더 잘 이해시키고 싶어서 관심을 가지다 보니 저도 모르게 이런저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책읽기선생님, 장애이해교육강사, 발달장애이해 그림책 「우리 아이를 소개합니다」 공동저자가 돼 있네요. 다양한 매체에서 잡지를 만든 경험이 있고, 지금까지 아이를 키우며 프리랜서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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