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이때부터 발달장애 이해 교육을 하겠다고 생각했던 걸까? 아이가 다섯 살 무렵의 일이다. 아기 때부터 늘 같이 놀던 아이 친구가 놀이터에서 다른 아이들에게 들으라는 듯 크게 외쳤다.
“주원이는 말을 못 해! 얘는 장애인이야!”
분명한 조롱과 놀림의 말이었다. 다섯 살짜리 아이가 내뱉은 말에 일순간 나뿐만 아니라 그 말을 한 아이의 엄마 표정도 얼어붙었다.
“OO아, 주원이도 친구들이랑 얘기하고 싶어서 말하는 법을 열심히 배우고 있어.”
어떤 정신으로 이 말을 했는지도 모르게 가까스로 대답하고 아이와 집으로 돌아왔다. 이 일은 두고두고 내 가슴을 짓눌렀다. 앞으로 내 아이는 이 말을 얼마나 많이 듣고, 또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게 될까. 아무리 부모가 아이를 잘 돌봐도 또래 친구들의 세계에서 겪게 될 일까지 막아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 아이는 왜 아기 때부터 함께 놀던 친구를 장애인으로 인식하기 시작했을까. 그리고 그 장애인이 왜 ‘놀림의 대상’이 되었을까?
분명한 것은 그 아이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다. 장애인을 놀림과 조롱의 대상, 나와 다른 ‘이상한 존재’로 인식하게 만든 어른의 문제였다. 장애인도 나와 다르지 않은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가르치지 않은 교육의 문제였다. 그 아이도 장애통합 환경에서 교육을 받았더라면 최소한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장애가 있는 친구를 놀리진 않았을 것이다.
◇ 아이의 장애를 없앨 순 없으니, 세상이 변해야 한다
아이의 장애는 없앨 수 없으니, 세상이 달라져야 아이가 행복할 수 있다. 그래야 우리 가족도, 사회도 행복할 수 있다. 이 생각은 10년간 아이를 키우면서 더 확고해졌다.
지난해, 드디어 오랜 고민의 실마리를 풀 기회가 찾아왔다. 제주도로 이주해 온 후 우리 가족이 참여하고 있는 발달장애인 커뮤니티에서 ‘발달장애 이해 교육 강사’를 양성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바로 한국자폐인사랑협회에서 추진하는 ‘찾아가는 발달장애 이해 교육-행복한 학교 만들기’ 프로젝트였다.
‘찾아가는 발달장애 이해 교육’은 우리나라 교육 현장의 특수교육 대상자 70% 이상이 발달장애인이라는 현실에 맞게 장애 이해 교육 중에서도 발달장애, 그리고 자폐성 장애에 주안점을 둔 커리큘럼을 가지고 있다. 그동안 서울에서만 이루어지던 사업이 지난해 처음으로 전국 단위로 확대되었다.
제주에서도 이 수업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분들이 의기투합해 팀을 꾸렸다. 나처럼 초보도 있었지만, 장애 이해 교육 강사로 활동하던 분들도 발달장애 이해 교육이라는 특화된 부분에 매력을 느껴 함께했다.
제주에서 서울을 오가며 교육을 받고, 모의 수업 연습을 수없이 해보면서 교육 매뉴얼을 익혔다. 자폐인사랑협회에서 개발한 교육 콘텐츠는 게임, 동영상, 퀴즈 등 워낙 재미있게 잘 짜여있어 수업 내용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실제 수업에서 실수 없이 좋은 강의를 하기 위해 서로 잘못된 점을 토론하고 수정하기를 여러 차례 거듭해 완성도를 높혀갔다.
설렘 반, 긴장감 반을 마음에 안고 학교에 갔다. 그곳에서의 반응은 우리가 기대한 것보다 더 뜨거웠다. 아이들은 발달장애 이해 교육의 수업 내용에 공감했고, 재미있어했다. 종알종알 웃고 떠들며 즐겁게 수업에 참여하는 초등학생들, 의젓하고 진지하게 수업에 집중하는 중학생들. 초롱초롱한 눈빛이 수업 시간 내내 강사를 따라왔다. 엎드려 자거나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은 드물었다.
◇ 작은 씨앗을 심는 마음으로, 오늘도 학교를 찾아간다
수업 후 받아본 강의 평가서에는 ‘발달장애인에 대해 모르던 것을 잘 알게 되었다, 발달장애 친구를 도와주고 ‘옹호인’이 되어주겠다’라는 다짐이 가득했다. 이 아이들의 다짐이 실천된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더 놀라운 것은 선생님들의 반응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강의를 듣고 난 선생님도 ‘모르던 것을 잘 알게 되었다고, 그동안 발달장애 학생들을 제대로 이해해주지 못해서 너무 미안하다’라는 고백을 들려주셨다. 발달장애 학생을 대할 때 어려움이 있다며 조언을 구하기도 하셨다.
학교 현장에서 수업을 해보니, 발달장애 친구를 이해하려는 아이들과 선생님의 마음이 느껴졌다. 떠먹이는 수업이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 스펀지처럼 수업 내용을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그동안 발달장애에 특화된 장애 이해 교육이 부재했던 탓이리라.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찾아가는 발달장애 이해 교육’으로 제주도 내 30개 학급 600여 명의 학생을 만났다. 물론 1회의 교육으로 발달장애 학생의 특성을 이해시키고, 아이들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작은 씨앗을 심는 심정으로, 오늘도 학교를 찾아간다.
“우리 반에도 힘든 친구가 있는데 사실 처음엔 친구가 이해가 안 되고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번 수업을 통해 그 친구의 생각, 마음을 잘 알게 되었다. 다신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겠다고 반성했다. 앞으로 많이 도와주고 좋은 친구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상반기 교육 중 중학교 2학년 학생이 적은 강의 후기이다. 세상에서 가장 반항심이 크다는 중학교 2학년의 마음에도 발달장애 친구를 이해하고, 그동안 친구를 외면한 마음을 반성하는 착한 본성은 숨어있다. 그 마음을 끌어내는 것은 어른의 몫이다.
*칼럼니스트 김덕화는 제주에서 열 살 발달장애 남자아이를 키우는 엄마입니다. 2년 전 제주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어서 덜컥 제주도로 가족이 이주해서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주원이를 더 잘 이해하고, 세상에 주원이를 더 잘 이해시키고 싶어서 관심을 가지다 보니 저도 모르게 이런저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책읽기선생님, 장애이해교육강사, 발달장애이해 그림책 「우리 아이를 소개합니다」 공동저자가 돼 있네요. 다양한 매체에서 잡지를 만든 경험이 있고, 지금까지 아이를 키우며 프리랜서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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