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은 ‘안 봐도 비디오’다. 신랑과 신부가 입장하고. 혼인 서약하고. 긴 주례사가 낭독되고. 축가가 울려 퍼지고. 폭죽 터진 뒤 끝난다. 신랑·신부와 크게 관계없는 하객들은 뻔한 행사 진행에 하품을 연발하고. 사적인 대화를 좀 하다가 서둘러 식사를 하러 자리를 뜬다.
결혼식에서 가장 비중이 큰 사람이 주례인데, 주례사를 경청하는 이는 드물고 때로는 주례로 인해 행사 분위기가 처지면서 결혼식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지기도 한다. 이런 현실에서 활동 중인 것이 전문 주례자다. 이들의 은퇴 전 경력은 남들이 대단하다고 여길 정도다. 주례를 소개할 때 최소한 '꿇리지' 않는 데다 비용도 은사나 친분 있는 어른을 세울 때보다 오히려 저렴하다.
주례 없는 결혼식 유행은 연예인들이 선도했다. 하지만 활성화의 가장 큰 이유는 이렇게 주례를 모시기가 쉽지 않다는 현실 때문이다. 결국, 주례 없는 결혼식은 전문 주례 시대의 다음 단계라 할 수 있다. 생면부지 전문 주례자를 세워 판에 박힌 덕담을 하게 하느니 차라리 축복은 부모에게 받고 나머지는 사회자에게 맡기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 작용한 셈이다.
그래서 요즘 유행하는 것이 주례 없는 결혼식이다. 비중은 크지만 주목도가 떨어지는 주례를 빼고. 대신 눈물과 웃음이 쏟아지는 진솔한 프로그램으로 결혼식 분위기를 한껏 띄우는 것이다.
게다가 요즘엔 ‘나만의 특별함’이 트렌드라 결혼식도 특별하게 하려는 이들이 많아 주례 없는 결혼이 증가 추세다. “아무래도 결혼식엔 주례가 있어야…”라는 부모들의 저항이 만만찮아 시장이 만개한 건 아니지만 진솔한 결혼식 문화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주례 없는 결혼식을 올린 신랑신부들은 결혼식이 끝난 뒤에도 지인들이 당시 행사장 분위기를 회상하며 칭찬을 해주면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고 한다. 결정 때는 다소 걱정도 됐지만 호응이 너무 좋아 요즘엔 주변에 추천하는 일도 많다.
주례 없는 결혼식은 사전에 신랑신부가 만든 각본대로 움직인다. 주로 신랑신부와 양가부모, 지인들의 역할이 각자 강조된다. 신랑과 신부는 그간 속에만 담고 있었던 얘기를 편지 낭독 등을 통해 서로에게, 또 부모님께 고마움을 전한다. 여기에 가족의 추억이 깃든 사진 등이 영상으로 전달되면 효과는 배가된다.
지인들의 덕담 순서에는 지나온 추억들과 마음 담긴 바람에 분위기는 한껏 고조돼 눈물과 웃음이 전해진다. 축가는 초대 가수 대신 지인들이나 신랑이 마이크를 잡아 하객들의 참여도가 높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의 전통혼례를 살펴보게 된다. 한국의 전통 결혼은 남녀 당사자들만이 아닌 가족 간의 결합을 의미한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가족이라는 혈연 공동체를 위주로 한 결혼의식이 발달했다. 또한 한국의 전통 결혼식에는 주례가 없었다. 단지 결혼식의 절차를 진행하기 위한 사회자 정도만 있었을 뿐이다. 신랑과 신부는 결혼식 상을 마주 보고 수줍게 서서 서로에게 절을 올리고 술을 나눠 마시며, 백년해로(百年偕老, 오래도록 헤어지지 않고 함께 늙어감)의 약속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주례 없는 결혼식과 비슷한 추세로 전통혼례를 선택하는 신랑신부도 늘고 있다. 신랑친구들이 패랭이를 쓰고 가마꾼이 되고, 초롱동이를 앞세우고, 집안어른들이 도포와 갓을 쓰고 기럭아범의 역할과 고천문을 낭독하며 덕담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추세에 맞춰 150년 한옥의 멋을 지닌 오가헌, 자연학습장과 부채박물관을 갖춘 운림제 등 광주지역에도 전통혼례를 올릴 수 있는 장소들이 다양하게 생겨나고 있다.
주례 없는 결혼식과 전통혼례를 전문적으로 기획하는 웨딩컨설팅 신부넷 임현정 대표는 “부모들의 거부감이 줄어들면 주례 없는 결혼식은 새로운 결혼문화가 될 것이다. 신랑신부와 하객들이 행사의 주인공이 돼 특별한 결혼을 만들 수 있고, 비용면에서도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너무 과한 이벤트만 고집하면 경건해야할 분위기가 자칫 가벼워질 수도 있으므로 전문가와 체계적으로 잘 준비하면 감동 가득한 파티가 된다”고 말했다.
요즘에는 결혼식도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