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인권이란 새로운 ‘언어’, 숨겨진 세상을 읽다
아동인권이란 새로운 ‘언어’, 숨겨진 세상을 읽다
  • 최규화 기자
  • 승인 2020.08.14 15: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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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영화로 보는 아동인권 이야기 「가장 작은 자를 위한 약속」

【베이비뉴스 최규화 기자】

영화 ‘가버나움’의 한 장면 ⓒ그린나래미디어㈜
영화 ‘가버나움’의 한 장면 ⓒ그린나래미디어㈜

“영화 ‘가버나움’에서 자인은 “사랑받고 존중받는 세상에서 살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자인이 꿈꾸는 그 세상, 모든 아동이 사랑받고 존중받는 그 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살고 싶은 우리의 마음을 담은 작은 이야기이다.”(「가장 작은 자를 위한 약속」 12쪽)

「가장 작은 자를 위한 약속」(국민북스, 2020년)은 열두 편의 영화를 통해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아동인권 감수성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책이다. 두 명의 아동인권 옹호가, 김인숙 국제아동인권센터 이사와 이선영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서울아동옹호센터 팀장은 영화 이야기로 우리 안의 아동인권 감수성을 깨운다.

두 저자는 같은 영화를 보고 다른 이야기를 각자 펼쳐나간다. 같은 영화를 보고도 주목하는 점이 서로 다르다. 이를 테면 ‘메이지가 알고 있었던 일’(2012년)을 통해 김인숙 이사는 아동의 진화능력을 이야기하고, 이선영 팀장은 가족의 다양성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이런 차이가 읽는 이를 더 흥미롭게 한다.

열두 편의 영화 이야기는 기본적인 줄거리부터 저자들의 감상과 비평을 거쳐, 아동인권 관점의 제시까지 점진적으로 구성돼 있다. 영화를 보지 않은 독자도 단계에 따라 깊어지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 무리가 없다.

책에 소개된 영화 가운데 ‘이 영화는 나도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든 영화는 바로 ‘우리들’(2015년)이었다. 외톨이 초등학생 선과 전학생 지아의 이야기를 담은, 윤가은 감독의 영화다.

‘우리’라는 단어는 나의 영역에 상대방을 초대하는 말로도, 반대로 나와 상대방을 구별하고 경계 짓는 말로도 사용된다. 저자들은 우리라는 단어의 양면성에 주목해, 아동에 대한 ‘차별’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아이들이 직접 만들어낸 차이가 아닌 것들, 아이들끼리 놀 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그 차이 때문에 어떤 아이들은 ‘우리들’이 되지 못한다. 피구 공을 맞고 선 밖으로 밀려난 주인공 선처럼, 사회와 선입견이 만들어낸 차별에 밀려 선 밖으로 밀려나 난감하게 서 있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47쪽)

영화 ‘우리들’의 한 장면 ⓒ아토(ATO)
영화 ‘우리들’의 한 장면 ⓒ아토(ATO)

◇ “그동안 많은 아이들이 치러온 값은 이미 너무도 지나치고 과도하다”

이선영 팀장은 여기서 아동주거빈곤 문제를 떠올렸다. 아이들 사이에, 빌라에 사는 아이를 비하하는 ‘빌거’, 임대주택에 사는 아이를 비하하는 ‘휴거’ 따위의 말들이 오고간다는 사실은 많은 어른들을 놀라게 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다. 경제적 지위를 그 사람의 ‘수준’으로 여기는 비뚤어진 사회의 반영이다.

“어떤 구조에서 혐오가 발생하는지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 이 팀장은 “아이들이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공을 던지고 어울릴 수 있는,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는 운동장이, 그런 세상이 필요하다”(47~48쪽)고 썼다.

책에는 윤가은 감독의 영화가 한 편 더 소개돼 있다. ‘우리집’을 지키기 위해 모험을 떠난 세 아이의 이야기를 담은 ‘우리집’(2019년). 윤 감독은 이 영화를 찍으며, 영화 제작의 전 과정에서 아동의 의견을 존중하고 보호하기 위한 촬영수칙을 만든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영화 외적으로도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는 영화다.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2001년)는 세상을 바꾸기 위한 한 아이의 작은 실천과 희생을 다룬 영화다. 아이들의 희생으로 세상이 조금이나마 바뀌는 사례는 드물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민식이법, 태호ㆍ유찬이법, 하준이법 등 안타까운 사고로 숨진 아이들의 이름에 빚진 ‘어린이생명안전법’들이 있다.

“아이들을 먼저 고려하고 아이들을 위해 먼저 자원을 집중하는 세상이라면 더 이상 아이들이 돌이킬 수 없는 값을 치르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동안 많은 아이들이 치러온 값은 이미 너무도 지나치고 과도하다.”(105쪽)

기사를 쓰는 직업을 갖고 있다 보니, 가벼이 넘길 수 없던 영화도 있었다. 가톨릭 보스턴 교구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추적한 기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스포트라이트’(2015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김인숙 이사는 “눈에 잘 보이지도 않고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약자 중의 약자인 아동들의 인권을 옹호하기 위해 언론 전문가들이 사명감과 전문성을 극대화하면서 멋진 팀플레이를 보여주며 세상을 바꾸어 나가는 모습은 이 영화의 백미”(89쪽)라고 평가했다.

영화 ‘스포트라이트’의 한 장면 ⓒ(주)팝엔터테인먼트
영화 ‘스포트라이트’의 한 장면 ⓒ(주)팝엔터테인먼트

◇ “인권은 나와 내 이웃이 우리의 삶 속에서 함께 지켜가는 것”

영화에는 “전체를 파악해야 해. 종지부를 찍는 방법은 그것뿐이야.”라는 대사가 나온다. 사건 보도를 서두르는 기자들에게 팀장이 한 말이다. 가해자 개개인이 아닌 집단의 관행과 체계를 파헤쳐야 한다는 뜻.

그 대목을 보면서 아동학대 사건을 다루는 한국 언론의 모습이 떠올랐다. 지난 6월 천안에서 아동학대 사망사건이 일어났다. 언론은 가해자가 얼마나 잔인한 짓을 했는지, 친모인지 계모인지, 얼마나 무거운 처벌을 받아야 마땅한지 앞 다투어 보도했다. 하지만 짧은 기간 쏟아진 언론의 관심은 이내 다른 이슈로 옮겨갔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처벌 강화, 인력과 예산 충원 등의 구호에만 목소리를 높여서는 아동학대를 근절할 수 없다. “종지부를 찍는” “전체”에 대한 집요한 문제제기가 부족하다는 점은 기자를 부끄럽게 하는 사실이다.

“가해자를 찾아내 법적으로 강하게 처벌하는 것도 시급하지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일은 더욱 중요하다. 아동인권 침해 사례의 해결안을 고민할 때 우리가 현상적인 원인 규명과 함께 근원을 찾아 구조적인 접근으로 문제해결에 다가가는 노력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90쪽)

저자들은 열두 편의 영화를 보고 아동인권 이야기를 풀어냈다. 하지만 여기 소개된 영화들을 모두 ‘아동인권 영화’라는 이름으로 수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중요한 것은 영화의 주제나 의도가 아니라, 보는 이의 관점이다. 저자들은 아동인권이라는 새로운 ‘언어’로 영화를 읽고,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이게 했다.

우리가 어떤 언어로 세상을 읽는지에 따라 세상은 제각각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책에서 저자들이 거듭 당부한 바람은, 우리 모두가 아동인권이라는 언어로 세상을 읽고 말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내가 내 이웃의 옹호자가 되고 또는 내 이웃이 나의 옹호자인 세상, 서로의 고통에 공감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옹호가들이 가득한 세상이라면 얼마나 든든하고 위로가 될까? 인권은 법과 제도, 인권기구나 유엔이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결국 나와 내 이웃이 우리의 삶 속에서 함께 지켜가는 것이다.”(1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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