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 김정아 기자】
"피해자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또 피해자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현실이 과연 올바른 걸까요?"
이광희 '가습기살균제 아이 피해자' 대표를 처음 만난 건 지난달 5일, 환경부가 마련한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법 하위법령 개정을 위한 공청회장에서였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유족들의 반발로 공청회가 무산된 후, 피해자 단체 관련자들만 남은 공청회장. 이광희 대표는 가쁜 숨을 내쉬며 마이크를 붙잡고, 부당함을 호소했다.
가습기살균제 아이 피해자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추준영 씨는 당시 기자에게 "이광희 씨는 현재 가습기살균제 독성을 스스로 입증하기 위해 수 개월째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이자 현재 고등학교 2학년, 중학교 2학년인 주윤서·주현서 남매의 엄마인 이광희 대표. 무모해 보일 수 있는 이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광희 대표와 3일 서면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 호흡기 질환에 뇌전증까지… 그렇지만 피해자가 아니다?
- 두 자녀 모두 가습기살균제 사용으로 피해를 입었다 들었다.
"2003년 1월 생인 아들 윤서가 태어나기 전, 우리 부부는 새 아파트가 건조해 가습기와 가습기살균제를 아기용품으로 준비했다. 당시 대형마트 가판대에는 가습기살균제가 널려 있었고, TV에서도 가습기살균제를 광고했다.
인체에 무해하고 아이들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는 광고가 TV에서 연일 나왔다. 가습기살균제는 아기 있는 집에서 필수품과 같았다. 둘째 딸 현서가 2006년 태어났을 때도 당연히 가습기와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다.
첫 아이는 옥시 레킷벤키저의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을 사용했는데, 사용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기침과 피부염에 걸렸다. 2003년 12월에는 폐렴으로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둘째는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을 이어 쓰다가 애경 '가습기메이트' 제품으로 바꿔 더 많이 사용했다. 몇 년을 얼마나 사용했는지 모를 만큼 사용했고 사용하는 내내 병원에 입원하고 퇴원하기를 반복, 매일매일 소아과 병원 진료를 두 아이가 번갈아가며 다녔다.
당시에는 호흡기가 태생적으로 약한 아이들이라고만 생각했지 가습기살균제 독성이 전신을 망가뜨리고 있다고는 전혀 생각 못했다.
첫째는 간질성 폐질환을 포함한 세 가지 호흡기 질환과 함께 심장에서 피가 새고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둘째는 역시 세 가지 호흡기 질환에 더해 뇌전증을 앓고 있다. 이로 인해 아이들은 평생 독한 약을 먹어야 한다."
-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국가가 인정한 첫 사례자인 산모 일곱 명과 양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두 아이 모두 피해자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가습기살균제는 국가가 허가한 안전한 제품이라 했고 광고로도 엄청나게 홍보가 됐다. 누가 자기 자식을 다치게 한다고 생각하고 썼겠나.
호흡기 피해가 있는 사람은 당연히 피해자라고 판정해줄 거라 생각했다. 국가가 지키지 못한 국민의 건강을 '구제'라는 방식으로라도 한다 하니 믿었다. 내가 사는 나의 국가가 우리 아이들을 지켜주리라고 생각했다.
창고에 아이들 어릴 때 사용했던 가습기와 가습기살균제가 그대로 남아 있어서 증거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스스로 찾아낸 증거조차도 소용이 없다. 피해자란 인정은 '말단지 소엽중심성 간유리음영 폐섬유화' 증상을 가진 사람만 받을 수 있다는 어처구니 없는 환경부의 답변을 들었다."
◇ "내 아이들 지켜야 하기에 시작한 일"… 4개월째 가습기살균제 사용
- 현재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하고 계시다 들었다. 어찌 보면 무모할 수도 있고, 극단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결심을 하신 이유는?
"본인들의 잘못은 조금도 인정하지 않고 앵무새처럼 같은 말만 되풀이 하는 환경부의 행태가 피해자들을 얼마나 괴롭게 하는 것인지 알려주고 싶었다.
아이들의 피해 양상이 (초기 피해인정 받은) 산모 일곱 명과 같아야 한다는 말에, 그럼 내 몸에 (가습기살균제를) 직접 써서 그 산모랑 똑같이 나타나는지 확인을 시켜줘야겠다고 결심했다.
엄마라서 내 아이들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했을 뿐이다. 지난 4월 30일부터 시작했고 비가 오는 날만 빼고 계속 사용했다.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후부터 피부 발진이 생겼고 눈이 뻑뻑해졌으며 숨소리가 고르지 않고 기침이 잦아졌다. 어느 날은 귀가 아파 병원 진료를 받고 약 처방도 받았다. 그리고 면역력이 떨어져 잇몸이 녹아내려 세 번의 수술을 했다. 다음 주 마지막 네 번째 수술을 예약해놓은 상태다."
- 가습기살균제 특별법 시행령 입법예고안 내용에 대해 피해자와 유족 모두 불만이 크다. 어떤 점이 개선돼야 한다고 보는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상에 처음 생긴 참사를 겪은 우리 아이들은 어른들과 같은 기준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
모든 전문가들이 말하듯이 아이들은 성장기라 잠재적으로 지금은 괜찮아 보일지라도 20대 이후가 더 걱정이다. 그러므로 호흡기 복합질환과 전이질환을 인정하고 전 생애주기에 걸쳐 복합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생각한다.
또한, 환경부는 공정하고 투명하게, 동일한 조건에서 전수조사를 해주길 바란다. 어떤 경우에도 아이들은 보호받고 존중받아야 한다. 이 나라가 책임지고 함께 길러나가야 할 존재이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를 바라보는 부모님들 모두, 내 자식이 귀한 만큼 피해자 아이들 또한 귀중한 생명이고 보호받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응원해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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