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입학, 로또 당첨만큼 어렵다
유치원 입학, 로또 당첨만큼 어렵다
  • 정가영 기자
  • 승인 2012.11.20 18:20
  • 댓글 1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부모 추천제 사라지자 추첨시간 담합 생겨나 아이 한 명당 지원할 수 있는 유치원 한 곳뿐

2013년도 유치원 신입원생 모집을 놓고 부모들의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 정부는 유치원 입학 시 발생하는 폐단을 없애기 위해 선착순 모집이나 기존 원생 부모의 추천 제도를 금지하는 방안을 내놨지만, 오히려 유치원들의 추첨시간 담합으로 선택권 박탈 등 여러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년 유치원 입학생 모집은 경쟁이 치열해 흡사 대학 입시 경쟁을 방불케 했다. 일부 유치원은 특정 날짜를 정해 선착순으로 모집하는 바람에 부모들이 밤새 유치원 앞에 줄을 서는 사태가 발생했다. 교육철학이나 교육환경, 교사 자질 등을 따져 인기가 많은 유치원은 모집 며칠 전부터 줄을 서야 해, 가족이 돌아가며 서거나 심지어 아르바이트까지 고용하는 일이 빈번했다.

 

또 일부 유치원은 안전한 유치원 운영을 이유로 기존에 유치원에 다니고 있는 원생의 학부모로부터 추천서를 받아야만 대기자 명단에 오르거나 입학을 할 수 있도록 해, 부모들 사이에서는 추천서가 매매되기도 했다.

 

이에 교육과학기술부(장관 이주호)는 전국의 모든 국·공·사립 유치원이 추첨과 대기자 명단 작성을 통해 원생을 선발하도록 하는 '유치원 원아모집 권고사항'을 지난 달 전국 유치원에 보냈다. 내년 3월부터 만 3~4세도 누리과정 적용을 받게 됨에 따라 입학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보고, 누구나 대기와 추첨을 통해 투명하게 입학하도록 하겠다며 나름 조치를 취한 것이다.

 

교과부가 내린 권고사항 중에는 가까운 지역의 유치원들끼리 연합해 여러 유치원에 중복 지원한 합격생을 자동 탈락시키거나 교직원 자녀를 우선 입학시키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베이비뉴스 소장섭 기자 = 지난 10일 서울의 한 유치원에서 2013년도 유치원 신입원생 모집 입학설명회가 열리고 있다. 이 유치원은 12월 5일 오후 추첨을 통해 신입원생을 선발할 계획이다. desk@ibabynews.com ⓒ베이비뉴스
베이비뉴스 소장섭 기자 = 지난 10일 서울의 한 유치원에서 2013년도 유치원 신입원생 모집 입학설명회가 열리고 있다. 이 유치원은 12월 5일 오후 추첨을 통해 신입원생을 선발할 계획이다. desk@ibabynews.com ⓒ베이비뉴스

 

하지만 현실은 교과부의 판단과 달랐다. 갑작스런 교과부의 정책 변경에 부모는 부모대로 유치원은 유치원대로 혼란만 가중됐고, 학부모의 유치원 선택권 박탈이라는 부작용만 더 가중되고 있는 양상이다.

 

현재 경기도 의왕시의 경우, 입학원생 모집을 마감하지 않은 대부분의 유치원이 12월 1일 오전 10시를 기점으로 입학설명회를 열고 이후 추첨을 통해 입학생을 뽑는다는 방침을 내걸고 있다. 특히 '아이의 직접 추첨' 등을 이유로 추첨 시 아이 동반을 의무사항으로 하는 곳이 많아, 아이가 참석해야만 추첨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게 된다. 아이 동반을 요구하진 않지만, 접수 시간이 동일한 유치원도 있다. 결국 한 아이 당 한 곳의 유치원에 지원하라는 것으로, 사실상 유치원의 중복 지원을 막고 있는 셈이다.

 

의왕시에 사는 A 씨는 "근처 유명하다는 6곳의 유치원을 알아보니 모두 12월 1일 같은 시간에 추첨을 하며, 아이를 동반해서 오라고 한다. 한곳만 지원하고 추첨해서 떨어지면 어떻게 하느냐"고 울분을 토했다.

 

직장맘 B 씨도 "지원한 유치원에서 떨어지면 일도 못 다니게 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유치원에 입학하려면 다른 아이라도 빌려와야 할 판"이라고 속상해했다.

 

이 같은 문제는 서울과 안양, 용인 등 수도권 지역뿐만 아니라 대구, 부산, 울산 등 전국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다른 유치원들과 추첨 시간이 달랐던 유치원마저도 지역 내 다른 유치원과 동일 날짜와 시간으로 추첨일시 변경을 모색하고 있기도 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유치원연합회 차원의 담합이 이뤄져 추첨 날짜와 시간을 정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하지만 유치원들은 유치원 간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어쩔 수 없단 입장이다.

 

의왕시의 한 유치원 관계자는 "추첨을 통해 입학생을 뽑으라고 하다 보니, 부모님들은 이곳 저곳의 유치원에 입학 접수를 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유치원 측에서는 혼란이 생기고 (입학원수 등의) 통계가 안 나온다"며 "충분히 돌아보고 좋은 유치원을 선택해서 가면 좋겠지만, 우리도 어쩔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어떻게 생각하면 추첨이라 전처럼 새벽부터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늦게 신청해도 된다. 결국 유치원 입학여부는 운"이라며 "다른 유치원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추첨에서 떨어진 아이들에 대한 2차 모집 계획은 아직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유치원 관계자도 "부모들이 중복으로 이곳저곳 유치원에 다 지원하게 되면 뽑혔는데도 다른 유치원으로 쭉 빠지는 경우가 있다. 이를 대비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전했다.

 

추첨을 통한 입학생 선발이 특정 유치원의 쏠림 현상을 만들어 유치원 입학 경쟁을 조장시킨다는 부모들의 목소리도 있다. 

 

현재 4살 아이의 엄마인 C 씨는 "대학부설 유치원에 원서접수를 하러 갔다가 깜짝 놀랐다. 내년 만 3세(5세) 2개 반 총 정원이 30명인데, 내가 받은 접수번호는 '279'번이었다"며 "유치원 입학이 쉽지 않다고 들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유치원 입학부터 경쟁하는 아이들이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아이 엄마 D 씨는 "인기 있는 유치원에 사람들이 많이 몰리긴 마찬가지다. 추첨에 떨어지면 또 다른 유치원을 찾아 헤매다 원서를 내고, 들어갈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이 씁쓸하다. 후속조치도 없이 이런 정책이 내놓는 걸 보면 미래가 걱정"이라고 전했다.

 

교육과학기술부 유아교육과 관계자는 "추첨을 하도록 한건 유치원에 대한 선택권을 제한받지 않게 하기 위함인데, 오히려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며 "날짜를 담합하고 아이를 꼭 데려와서 추첨하라는 유치원에 대해 파악 중이며, 시도교육청을 통한 유치원의 지도감독 내용 대책 마련 등을 검토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담합한 유치원에 대한 조사도 요청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베사모의 회원이 되어주세요!

베이비뉴스는 창간 때부터 클린광고 정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작은 언론으로서 쉬운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이비뉴스는 앞으로도 기사 읽는데 불편한 광고는 싣지 않겠습니다.
베이비뉴스는 아이 낳고 기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대안언론입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에 동참해주세요. 여러분의 기사후원 참여는 아름다운 나비효과를 만들 것입니다.

베이비뉴스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베이비뉴스와 친구해요!

많이 본 베이비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3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yeoj**** 2012-11-22 01:00:00
벌써부터..
유치원에서부터 아이들이 경쟁을 해야하는 현실이 씁쓸하네요...
예전에는 이곳 저곳 비교해보면서 유치원 입학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그 중에 한곳

kdj**** 2012-11-21 19:39:00
아는 사람
아는 사람도 유치원 추첨때문에
연차 냈다고 하던데..

l**** 2012-11-21 14:42:00

아이셋키우면서 한번도 가고픈 유치원에 가본적이없어요.. 아

bom**** 2012-11-21 13:34:00
유치원 경쟁
제 친구도 아이를 유치원 보낼나이가 됐는데 심각하게 고

aja**** 2012-11-21 12:18:00
아이키우기가 참..
나라에서는 아이 많이 낳으라 하면서도
이건 뭐 아이키우기에 이리 장애물이 많으니... 쉽지가 않은듯해요

  • 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대로 78 경찰공제회 자람빌딩 B1
  • 대표전화 : 02-3443-3346
  • 팩스 : 02-3443-3347
  • 맘스클래스문의 : 1599-0535
  • 이메일 : pr@ibabynews.com
  • 법인명: 베이컨(주)
  • 사업자등록번호 : ​211-88-48112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서울 아 01331
  • 등록(발행)일 : 2010-08-20
  • 발행·편집인 : 소장섭
  • 저작권자 © 베이비뉴스(www.ibaby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개인정보보호 배상책임보험가입(10억원보상한도, 소프트웨어공제조합)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유미 실장
  • Copyright © 2024 베이비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ibaby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