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네 꿈의 성실한 관객이 될게
엄마는 네 꿈의 성실한 관객이 될게
  • 칼럼니스트 최가을
  • 승인 2021.11.04 08: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쌍둥이 엄마의 방구석 심야 영화관] ‘코다’(2021)

코다(CODA)는 ‘Child Of Deaf Adult’의 준말로 소리를 들을 수 없는 부모에게서 태어난 청인 자녀를 말한다. 영화 ‘코다’의 주인공 루비는 코다이다. 부모와 오빠가 모두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이고, 루비만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루비는 가족들의 수어를 청인들에게 통역한다. 고기잡이로 생계를 이어가는 아버지와 오빠는 루비와 함께 배를 탄다. 배에 오는 무전에 응답하기 위해서, 생선을 팔기 위해서, 이들에게 루비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루비는 새벽 3시에 일어나서 고기를 잡고, 아침에 등교하는 생활을 한다.

청인 루비는 농인 부모와 오빠를 도와 수어를 음성언어로 통역하는 역할을 맡는다. ⓒ판씨네마㈜
영화 속 농인 역할은 모두 실제 농인 배우들이 맡았다. ⓒ판씨네마㈜

가족들 없이는 아무것도 해 본 적이 없다는 루비에게 자신만의 꿈이 생긴다. 그 꿈은 노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 루비는 짝사랑하는 남학생 마일스를 따라 합창단에 들어가는데, 합창단 지도 교사가 루비 자신도 몰랐던 재능을 발견한다. 음악 교사 베르나르도는 루비의 부모에게 딸을 대학에 보내지 않는 것은 엄청난 실수라고 하지만, 루비가 없으면 생계를 유지하기 힘든 부모는 선뜻 루비를 떠나보내지 못한다.

루비는 짝사랑하던 마일스와 듀엣 무대를 꾸미게 된다. ⓒ판씨네마㈜
루비는 짝사랑하던 마일스와 듀엣 무대를 꾸미게 된다. ⓒ판씨네마㈜

루비가 없다면 통역사를 고용해야 하는데, 통역사 고용 비용을 마련하려면 배를 팔아야 한다. 그런데 배를 팔면 먹고 살 길이 막막하다. 루비는 꿈을 포기한다. 고향에 남기로 하고 교내 합창단 발표회를 준비한다. 루비의 가족들은 발표회에 참석하지만, 루비의 노래를 듣지 못한다. 다른 관객들은 박수 치고 환호하지만, 루비의 가족들은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자리만 지키고 있다. 가족과 공유할 수 없는 꿈이라니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루비라는 원석을 발굴해준 음악 교사 베르나르도. ⓒ판씨네마㈜
루비라는 원석을 발굴해준 음악 교사 베르나르도. ⓒ판씨네마㈜

루비와 마일스의 듀엣 무대가 시작되고, 아름답고 감미로운 노래가 무대를 가득 채운다. 루비의 아버지 프랭크는 주변 관객들을 유심히 살피기 시작한다. 관객들은 루비의 노래에 완전히 빠져들고 있다. 다들 멜로디에 맞춰 고개를 끄덕이고, 간혹 눈물을 훔치는 사람도 있다. 노래가 끝나자 관객들은 모두 일어나서 환호한다. 프랭크는 이 모든 광경을 마음 속 깊은 곳에 담아둔다.

​교내 합창단 발표회에서 친구들과 즐겁게 노래하는 루비. ⓒ판씨네마㈜​
​교내 합창단 발표회에서 친구들과 즐겁게 노래하는 루비. ⓒ판씨네마㈜​

그는 집에 돌아와 루비에게 묻는다. “오늘 부른 노래 무슨 내용이야? 다시 불러줘.” 루비는 프랭크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프랭크는 딸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루비의 목에 손을 댄다. 목의 떨림을 느끼기 위해.

이 장면에서 나는 가족과 꿈을 공유할 수 없는 루비의 상황이 잔인하다는 내 생각이 오만이었음을 깨달았다. 청인의 음성언어와 농인의 수어라는 차이가 돌이킬 수 없는 강이라고만 생각했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 저렇게 큰 강이 놓여 있다면 그 단절이 가슴 아플 거라고 단정 지었다. 수어는 그 자체로 독립된 언어이고 부모와 자녀가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다면, 나름의 어려움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하다. 루비의 어머니 재키는 말한다. “네가 태어났을 때 엄마는 네가 못 듣길 기도했어. 우리가 제대로 소통 못할까 봐. 나랑 할머니처럼.”

루비의 노래를 '보고' 박수쳐 주는 가족들. ⓒ판씨네마㈜
루비의 노래를 '보고' 박수쳐 주는 가족들. ⓒ판씨네마㈜

그러나 생각해 보자. 그렇다면 모든 청인 부모는 청인 자녀의 꿈을 쉽게 이해할까? 청인 부모와 청인 자녀 사이에는 아무런 단절이 존재하지 않을까? 청인 부모 자식 간의 소통은 농인 부모와 청인 자녀 간의 소통보다 원활할까? 그렇지 않았다.

아직 아기와 어린이 중간 단계 어디쯤에 있는 31개월 쌍둥이들도, 언젠가 루비처럼 청소년이 되어 자기만의 세계를 꾸릴 것이다. 아이들이 열광하는 것, 아이들이 가진 꿈을 내가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부모와 자식 간에는 세대 차이가 필연적이라서 서로를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된다. 아이를 사랑해서 생기는 불안과 걱정은 또 어떤가. 어린 시절의 나와 비슷한 꿈을 꾼다면 그 길의 어떤 점이 어려운지 알아서 말리고 싶을 테고, 나와 다른 꿈을 꾼다면 그 길이 어떤 길인지 몰라서 두려울 것 같다. 자식도 엄연한 타인이고, 타인과 꿈을 공유한다는 것 자체가 애초에 실현되기 매우 까다로운 희망사항 같은 것 아닐까.

무대 위에서 노래 부르면서 가족들에게 가사를 수어로 통역하고 있는 루비. ⓒ판씨네마㈜
무대 위에서 노래 부르면서 가족들에게 가사를 수어로 통역하고 있는 루비. ⓒ판씨네마㈜

아이들이 루비처럼 훌쩍 커서 내 품을 떠나려고 할 때, 아이들이 품은 꿈이 내게 너무 생경하게 다가올 때, 아이들이 날아가고자 하는 곳이 내가 전혀 모르는 머나먼 곳일 때, 이 영화 속 아버지 프랭크를 떠올리려고 한다. 소리를 진동으로 느끼기 위해 딸의 목에 가만히 손을 대고 있던 그의 마음을.

자식이라고 해도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사랑과 이해는 별개니까. 그러나 프랭크는 최선을 다했다. 귀로 안 되면 손을 쓰고, 손으로 부족하면 얼굴을 바싹 대고 노래하는 딸의 모습을 바라봤다. 세상에서 가장 성실한 관객이 되어주는 것. 나는 그에게서 부모가 자식의 꿈을 두고 보여줄 수 있는 최대치의 사랑을 봤다.

*칼럼니스트 최가을은 구 난임인, 현 남매 쌍둥이를 둔 워킹맘이다. 아이들을 재우고 휴대전화로 영화를 본다. 난임 고군분투기 「결혼하면 애는 그냥 생기는 줄 알았는데」를 썼다.

【Copyrightsⓒ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

베사모의 회원이 되어주세요!

베이비뉴스는 창간 때부터 클린광고 정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작은 언론으로서 쉬운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이비뉴스는 앞으로도 기사 읽는데 불편한 광고는 싣지 않겠습니다.
베이비뉴스는 아이 낳고 기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대안언론입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에 동참해주세요. 여러분의 기사후원 참여는 아름다운 나비효과를 만들 것입니다.

베이비뉴스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베이비뉴스와 친구해요!

많이 본 베이비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대로 78 경찰공제회 자람빌딩 B1
  • 대표전화 : 02-3443-3346
  • 팩스 : 02-3443-3347
  • 맘스클래스문의 : 1599-0535
  • 이메일 : pr@ibabynews.com
  • 법인명: 베이컨(주)
  • 사업자등록번호 : ​211-88-48112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서울 아 01331
  • 등록(발행)일 : 2010-08-20
  • 발행·편집인 : 소장섭
  • 저작권자 © 베이비뉴스(www.ibaby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개인정보보호 배상책임보험가입(10억원보상한도, 소프트웨어공제조합)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유미 실장
  • Copyright © 2024 베이비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ibaby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