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학생은 명탐정] 산고래의 비밀 1-2 & 에필로그
다겸은 고개를 푹 수그리고 온 신경을 산고래에 모았다. 나와 영지는 행여 다겸에게 방해될까 봐 입을 꾹 다물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만 갔다. 5시 50분이 됐을 때는 졸음이 쏟아져 견딜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다겸은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고 머리카락만 쥐어뜯었다. “도저히 생각이 안 나. 아무것도 안 떠올라…….” 언제나 활기차고 자신만만한 다겸이
다겸은 고개를 푹 수그리고 온 신경을 산고래에 모았다. 나와 영지는 행여 다겸에게 방해될까 봐 입을 꾹 다물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만 갔다. 5시 50분이 됐을 때는 졸음이 쏟아져 견딜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다겸은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고 머리카락만 쥐어뜯었다. “도저히 생각이 안 나. 아무것도 안 떠올라…….” 언제나 활기차고 자신만만한 다겸이
우리 셋은 입을 크게 벌린 것처럼 뻥 뚫려 있는 계단 입구로 다가갔다. 허공으로 들려 있는 계단의 양쪽 끝부분에 쇠로 된 두꺼운 팔 같은 게 붙어 있었다. 아무래도 사자상을 조작하면 저 두 팔 모양의 쇠막대가 위로 쭉 펴져서 계단을 들어 올리고, 계단을 닫을 때는 마치 팔이 접히는 것처럼 안쪽으로 내려오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어두침침한 터널 형태의 비밀 통
학교 옆문에서 우리가 다시 만난 시간은 무려 밤 10시였다. 다겸이 이 시간에 만나자고 해서 침대에서 자는 척을 하다가 몰래 빠져나왔다. 문을 열고 나올 때는 부모님한테 걸릴까 봐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영지도 나랑 비슷한 방법으로 부모님을 속였단다. 영지는 몰래 나간 걸 들키면 2학기에도 신문을 못 내는 벌을 받을 거라고 울상이었다. 하지만 탐정 일이
편지를 다 읽은 우리는 몹시 놀라 서로를 쳐다봤다. 특히 다겸은 어찌나 흥분했는지 어깨가 들썩들썩했다. “마침내 모든 비밀이 풀렸어!” 다겸이 하도 크게 외쳐서 귀청이 따가울 지경이었다. 다겸은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부엉이 아저씨는 사업이 망하고 올해 초에 이곳으로 이사를 왔어. 안타깝게도 얼마 후에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유품을 정리하다가 이 편지를
내 아들, 상구 보거라. 상구야, 요즘 많이 힘들지? 네가 갑자기 집으로 들어온다고 했을 때는 멋모르고 아들이랑 같이 사는 게 그저 좋기만 했는데, 막상 사업에 실패해서 축 처진 네 어깨를 보니 엄마 마음도 참 아프단다. 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남들처럼 재산도 못 물려주고, 대학교도 못 보내서 네가 고생을 많이 하는 것 같다. 이 엄마가 미안하
부엉이 아저씨 집에서 나온 시간은 오후 6시였다. 여름이라 아직은 주변이 환했다. 조금 걸어 내려오자 근처에 지붕까지 잘 마련된 호젓한 정자가 있어 그리로 들어갔다. 우리는 정자 벤치에 나란히 앉아 영지가 스마트폰으로 찍은 유서 사진을 볼 준비를 했다. 그런데 들떠 있는 다겸과 영지와는 달리 나는 영 기분이 나지 않았다. “우리 이래도 되는 걸까? 허락도
그렇게 삼총사가 된 우리는 부엉이 아저씨의 집으로 향했다. 영지의 말처럼 부엉이 아저씨의 집은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정문을 나와 오른쪽으로 큰길을 10분쯤 따라간 다음에 딱 한 번만 왼쪽으로 꺾고 다시 10분쯤 가면 우학산의 또 다른 등산로가 나온다. 아저씨의 집은 그 등산로의 초입에 있었다. “여기야.” 우리는 아저씨 집의 검붉게 녹이 슨 대문 앞
나를 단단히 망신 준 신문을 내고 나서 처음 보는 영지였다. 나는 토끼 티셔츠를 입은 영지를 노려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영지가 내 눈빛을 슬쩍 피하며 내 옆자리에 앉았다. “알았어. 사과할게. 그렇지 않아도 선생님이랑 부모님께 많이 혼났어. 아무리 기자라도 친구한테 함부로 거짓말쟁이니 바보니 오줌싸개니 놀리는 글을 신문에 써서는 안 된대. 이번 학기는
“우리 힘으로는 안 되겠어. 아니, 어른들이 수십 명 몰려와도 쉽지 않을 것 같아. 바닥을 봐. 이 돌판 무게만 해도 우리들 합친 것보다 더 나가겠다.” 다겸은 사자상이 올라서 있는 길쭉한 직사각형 모양의 돌판을 가리켰다. “설마 내 말을 안 믿는 건 아니겠지? 그날 밤은 분명히 자기 혼자 움직였어.” “항상 네 말을 믿는다고 했잖아. 자, 그럼 다음으로는
다음 날인 화요일은 6교시까지 있어 2시 반에 모든 수업이 끝났다. 내일 보자는 인사를 남기고 선생님이 교실을 나가자, 나와 다겸은 의미심장한 눈빛을 교환했다. “자, 가자! 오늘은 어제보다 더 잘할 자신 있어!” “그래. 건전지도 왕창 가져왔으니까 오늘도 신나게 놀자.” 우리는 나란히 복도를 걸으며 도란도란 대화를 나눴다. “나도 어제 집에 가서 엄마한테
잘은 모르지만 ‘탐정’은 멋있는 일을 하는 사람 같았다. 그렇지만 자기가 탐정이라고 뻐기는 다겸의 말은 거짓말이 아닐까. 저렇게 작고 어린 아이가 어떻게 탐정이 될 수 있다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의심스러워하자 다겸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부르르 떨었다. “진짜야, 난 벌써 아홉 개의 사건을 해결했다고!” “저번 학교에서?” “저번 학교‘들.’ 우학초등학교
이 꼬마신사가 어느새 내 뒤를 쫓아와 내가 튀김을 먹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나 보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다겸을 만난 나는 무척 당황스러웠다. 솔직히 이 녀석을 상대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 천국의 튀김 맛도 모르면서 우리 학교를 다닌다면 얼마나 억울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옛말에 좋은 건 나눠야 한다지 않나. 나는 마지막 남은 오징어튀김을 입에 넣고 우물
그 후로 열흘쯤 지난 월요일 아침이었다. 영지의 신문이 나오고 며칠 동안은 여전히 사자상 얘기로 학교가 떠들썩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의 입에서 사자상이 언급되는 숫자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드디어 하늘이 내 소원을 들어준 걸까? 그보다는 이번 주말부터 시작되는 여름방학에 온통 관심이 쏠려 있어서라는 게 맞을 것 같다. 반 아이들은 거의 다 자기 집은 이
나는 한달음에 인터뷰를 다 읽었다. 내가 했던 얘기들이 빠짐없이 잘 실린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내 기사 밑으로 몇 문단이 더 이어져 있었다. 내 얘기는 여기서 끝인데, 영지가 무슨 말을 더 남겼을까? 얼른 남은 글을 읽어보았다. ‘김영지 기자의 진실 검증 : 사자상은 정말 움직였을까?’ 3학년 1반 박용재의 제보를 받고 나, 김영지 기자는 큰 충격
학교 옆문에 도착했을 때는 셋 다 흠뻑 젖은 생쥐였다. 아, 우리의 목적지는 처음부터 정문이 아니라 옆문이었다. 우리 학교 학생이라면 다들 알다시피 옆문은 학교 부지의 서쪽에 나 있고, 정문은 남쪽에 있다. 정문 쪽 못지않게 서쪽에도 집이나 빌라가 많아서 학생들이 편하게 다니라고 옆문을 낸 것이다. 사실 우리들의 집에서는 정문이 더 가까웠지만 정문에는 수위
영지와 인터뷰를 하고 사흘이 지났다. 처음에는 내 얘기가 신문에 어떻게 나올지 몹시 궁금했다. 하지만 반이 다른 탓에 며칠째 영지의 얼굴도 못 봤고, 별다른 설명도 없어서 차츰차츰 인터뷰를 했던 사실 자체를 잊게 되었다. 물론 그동안에도 밤이면 밤마다 악몽을 꾸었고, 낮에는 아이들의 호기심 섞인 수군거림이 지칠 줄 모르고 계속되었다. 목요일 아침, 여전히
우리는 정문에서 조금 떨어진 나무 벤치로 갔다. 서너 명이 나란히 앉을 수 있는 의자가 마주 보고 있으며, 두 의자 중간에는 길쭉한 테이블까지 놓여 있는 곳이라서 영지가 수첩에 인터뷰 내용을 적기도 좋았다. 똘망똘망한 영지의 얼굴을 가까이서 보니 괜스레 떨려 고개를 숙였다. “어디서부터 말할까?” “처음부터. 그날 밤 있었던 일을 하나도 숨김없이 다 얘기해
하루 종일 쉬는 시간마다 시달리다가 힘겹게 5교시 수업을 모두 끝냈다.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자마자 미친 듯이 뛰어서 교실 문을 빠져나왔다. 운동회 때도 이 정도로 빨리 달릴 수만 있다면 우리 반 1등도 문제없을 거다. 학교 건물을 빠져나와 남쪽의 운동장에 내려서고 나서부터는 걷기 시작했다. 쉬지 않고 뛰었더니 숨이 가빴고 아이들도 전부 따돌려 더 이상 뛸
“자, 들어가자.” 열린 교실 문 앞에서 선생님이 어깨를 부드럽게 밀었다. 하지만 내 두 발은 땅바닥에 풀로 붙여버린 양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떡 버티고 서자 잠시 당황했던 선생님은 슬며시 웃더니 내 손을 꼭 붙잡았다. 선생님에게 손을 붙잡힌 나는 어어, 하는 사이에 교실 안으로 끌려 들어가고 말았다. 안 그래도 창피해서 망설였던 건데, 길 잃은 아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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