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한 싱글대디 “아들아 아빠가 지켜줄게!”
당당한 싱글대디 “아들아 아빠가 지켜줄게!”
  • 최대성 기자
  • 승인 2022.01.28 15: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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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아빠살이] 마흔셋 아빠의 이혼 상처 극복기

【베이비뉴스 최대성 기자】

싱글 대디 김찬영 씨는 유쾌하고 당당하다. 하나뿐인 아들 때문이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싱글대디 김찬영 씨는 유쾌하고 당당하다. 하나뿐인 아들 때문이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저는 싱글 대디입니다. 회사보다 아들이 중요해서 야근은 못합니다.”

그는 호탕하다. 큰 웃음소리에 에너지가 가득하다. 이혼의 아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긍정적이다. 이유가 있다. 상황을 탓하며 숨어있으면 변하는 게 없다는 걸 일찍부터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다소 내성적인 성격을 외향적으로 바꾸려 노력했다. 심지어 회사 면접장에서 싱글 대디임을 당당히 밝힌다. 회사보다 아들이 더 중요하기에 야근은 못한다고 못을 박는다. 그럼에도 능력이 탐나면 선택될 거라 자신한다. 모두 하나뿐인 아들 때문이다. 모진 세상과 맞서는 중이다. 그렇게 마음에 붕대를 두르고 산 지도 벌써 7년 차. 마흔셋 아빠는 ‘이혼의 상처를 극복하다 보니 비로소 어른이 됐다’고 고백했다. 그래서일까. 렌즈 속 그의 유쾌하고 당당한 표정 속에서 사연 많은 지난날이 설핏 보였다. ‘40대 아빠살이’ 13번째 주인공은 절망의 끝에서 아들을 지켜주기로 결단한 싱글대디 김찬영 씨다. 

◇ “몸을 갈아 넣었다”

결혼 1년 차. 부부 사이에 아이가 태어났다.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우리만의 학원을 차리겠다는 선생님 부부의 꿈은 급히 수정됐다. 여건상 아이를 맡길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외벌이가 시작됐다. 그리고 그때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신혼 초에 둘이 열심히 벌어서 5년 후 학원을 차리는 게 목표였어요. 그런데 너무 빨리 아이가 생겨버린 거죠. 맞벌이를 해야 하는 형편이었는데, 당시 아이를 돌봐줄 수 있는 친인척이 없었어요. 어린이집에는 보내지 않았습니다. 아직 우리나라는 어린이집 선생님에 대한 대우가 너무 열악하잖아요. 그래서 내 아이를 소중하게 대해주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선생님이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니까요. 더구나 어릴수록 엄마의 존재가 아이의 정서 발달에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고민 끝에 아내가 일을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계획에 없던 외벌이가 시작됐다. 그는 낮에 기간제 교사 일을 하고, 저녁에는 유소년을 대상으로 체육을 가르치는 학원에서 강사 일을 했다. 투잡은 기본이었다. 평일, 주말할 것 없이 가족의 꿈을 위해 돈을 벌었다. 

“주 6일 일했어요. 주당 수업시수로 따지면 48시간~52시간 정도 했습니다. 정규직 교사들이 정규 수업시수로 주당 18시간 일해요. 법적으로는 최대 21시간 이상은 수업을 하지 못해요. 그에 비하면 저는 거의 2.5배 정도를 일했던거죠.”

그는 ‘몸을 갈아 넣었다’라고 표현했다. 더구나 체육교사여서 체력 소모가 더 심했다. 그래도 그의 노력 덕분에 맞벌이 때 정도는 아니지만, 비슷하게 소득을 유지할 수 있었다. 아빠이자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동력이었다.

“가장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임무는 경제적인 안정이 아닐까요? 그래서 내 몸을 갈아서라도 우리 가족을 지켜야겠다고 항상 생각했어요. 만약, 경제적으로 뒷받침을 못하면 결국 엄마도 일을 해야 하잖아요? 그렇게 우리 아들에게서 엄마를 뺏어가는 못난 아빠가 되고 싶지 않았어요.”

가족을 위한 그의 책임감은 고스란히 부담으로 돌아왔다. 흙먼지 먹으면서 하루에 12시간 이상 일하다 보니까 몸이 버티지 못했다. 하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다른 곳에서 시작됐다. 

“집에 와서 씻기 전에 ‘잠깐 쉬어야지’라고 생각하다가 그대로 잠들어버릴 만큼 체력이 떨어졌어요. 그만큼 일에 매달려 살았거든요. 그러다 보니 집안을 돌볼 여유가 없더라고요. 몸이 너무 힘드니까 가사는 물론이고 주말에 아이와 어디 놀러 나갈 엄두도 내지 못했어요. 사실 내가 가족을 위해 이 정도까지 하고 있으니,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온전히 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힘든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그는 ‘수고했어’라는 아내의 따뜻한 말 한마디를 바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다툼만 커졌다. 육아는 아내 혼자 감당키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는 아내의 짐을 덜어 줄 여유가 없었다. 

“당시 아내는 산후우울증이 생길 만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아내가 가사에 대한 도움을 요청했지만, 당시 저는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그럴 여유가 전혀 없었어요. 더욱이 부부간에 해야 할 몫은 공평하게 구분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경제적인 부분을 100% 책임지고 있으니, 나머지 가사는 아내가 해줘야 하는 게 당연했던 거죠. 육아는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는 했다고 생각해요. 물론 아내가 원하는 수준은 아니었지만요. 그러다 보니 부부관계가 더욱 나빠졌습니다. 서로 상황을 분명히 인지했으나, 인정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둘 사이에 배려가 없었던 것 같아요.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제게도 어느 정도 잘못이 있다고 생각해요. 육아 스트레스로 힘들었을 아내의 상황을 제가 조금 더 살갑게 살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반성도 하고 있습니다.”

싱글 대디 김찬영 씨는 모든 일은 상식선에서 해결된다고 생각한다. 훗날 아들 찬솔이가 사회에서 차별을 받게 된다면 아빠처럼 당당하게 밝히고 이겨내길 바란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싱글 대디 김찬영 씨는 모든 일은 상식선에서 해결된다고 생각한다. 훗날 아들 찬솔이가 사회에서 차별을 받게 된다면 아빠처럼 당당하게 밝히고 이겨내길 바란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하다”

틀어진 부부관계는 회복되지 않았다. 오히려 날 선 말들이 서로를 깊이 찔렀다. 3년이 지날 동안 관계는 점점 더 악화됐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처음 ‘이혼’이란 단어를 꺼냈다. 심각성을 깨달은 그는 틀어진 관계를 회복하고 싶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원인을 곱씹었다. 아내가 받는 스트레스의 원인이 육아에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애초에 계획했던 5년보다 1년을 당겨 아내가 미술학원을 시작하기로 했다. 덕분에 그도 아르바이트를 줄일 수 있었다. 수완 좋은 아내 덕분에 학원은 생각보다 빨리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일 때문에 아내의 퇴근이 늦어지면서, 그는 이전보다 육아와 가사에도 시간을 낼 수 있게 됐다. 

“아내의 미술학원이 잘 됐어요. 이전에 미술 선생님이었을 때도 능력이 있었거든요. 가능성이 보였어요. 기존 미술 과목에 제가 전공한 영유아 체육 과목을 더해서 학원을 더 크게 확장했어요. 운 좋게도 3개월 만에 자리를 잡았어요. 정말 대박 났었죠.” 

그가 신혼 초 목표했던 가족의 꿈이 이뤄졌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었다. 

“사업이 성공하면서 월급쟁이 때 보다 더 큰돈을 안정적으로 벌었어요. 주변 사람들도 ‘네가 드디어 빛을 본다’라며 축하해 줬어요. 이제 소득도 안정됐고, 바라던 꿈도 이뤘으니 모든 게 행복할 거라 생각했죠. 아내에게도 그동안 고생했다고 말해줬어요. 하지만 그건 저만의 착각이었어요. 한번 깨져버린 부부관계는 다시 붙지 않더라고요.”

부부는 또다시 돈 문제로 다퉜다. 사사건건 네 돈, 내 돈을 나눴다. 복잡하게 얽혀버린 실타래처럼 어디가 불화의 처음인지 찾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느 날 아내는 크게 화를 내며 집을 떠났다. 

“아내가 사소한 다툼을 이유로 갑자기 이혼을 요구하며 집을 나가버렸어요. 미술은 아내가 담당했기에 당장 학원 운영에 차질이 생겼어요. 어렵게 일군 사업인데, 한순간에 흔들리더라고요. 아내에게 이혼을 해주겠다고 말했어요. 집도 학원도 다 주고 양육비까지 보내줄 테니 제발 학원만큼은 운영해달라고 부탁했어요.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유지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아내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가 스러져가는 학원을 부여잡고 있을 때, 그의 아내는 다른 남자와 외도를 했다. 그는 변호사의 자문을 구해 지방의 한 아파트에서 아내의 외도를 두 눈으로 확인했다. 피가 거꾸로 솟았다. 그는 아내와 남자를 붙잡고 소리쳤다.

“찬솔이(아들)가 니들 살려 준 줄 알아! 내가 지금 당장 당신들을 몽둥이로 때려죽인 죄로 강남역 사거리 십자가에 매달린다고 해도, 지나는 사람들이 대자보에 적힌 이유를 본다면, 분명히 너희들을 더 욕할 것이니까!”

그는 눈이 뒤집힐 만큼 큰 충격과 분노를 느꼈다. 하지만 죄 짓고 감옥에 가면 홀로 남을 핏덩이가 눈에 밟혀 참고 또 참았다. 

◇ “이혼 가정이라는 트라우마”

아내가 외도를 했다. 남편으로서 당연히 이혼을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망설였다. 아이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이혼 가정의 자식으로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었다. 그 역시 부모의 이혼으로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다. 

“저희 부모님도 이혼하셨어요. 제가 초등학교 5~6학년 때쯤 크게 싸우셨는데, 그때 이후로 오랜 기간 대화도 안 하시고 잠도 따로 주무셨어요. 자식 때문에 참고 사신 어머니는 매일 우울해하셨어요. 집이 화목하지 않았죠. 부모, 자식 간에 대화가 사라졌어요. 그리고 형제 사이까지도 대화가 없어지면서 멀어졌습니다. 결국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갈라서셨어요. ‘혼자 큰 것 같다’란 말이 있잖아요? 그때 제가 그랬어요. 세상에 나 혼자인 것 같았거든요. 그 경험을 내 자식에게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어요. 생각만 해도 공포스러웠어요. 부모의 이혼이 제게 트라우마로 남았기 때문이죠.”

고민 끝에 그는 아내를 용서하기로 했다. 일단 가정부터 지키자고 애써 자신을 이해시켰다. 며칠 후 아내는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2주일 만에 다시 떠났다. 

“제 생각에 본인이 수치스러움을 견디지 못했던 것 같아요. 아니면 외도와는 별개로 저를 용서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고요. 그렇게 몇 차례의 용서에도 바뀌지 않는 아내를 보며 더 이상 결혼 유지가 어렵다고 판단했어요.”

이혼소송이 진행됐다. 아내는 외도를 인정했지만, 그 원인을 남편에게 돌렸다. 명백한 증거가 있었지만, 그는 긴 시간 동안 서로의 상처를 들추는 게 싫었다. 그래서 조정을 통해 위자료만 받고 재판을 마무리했다.

“이혼이 최종 결정되는 순간, 담담했어요. 홀가분하기도 했고... 다시는 이런 일을 겪을 일도 없고, 이런 여자를 만날 일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정이혼으로 결정된 판결문. ⓒ김찬영
조정이혼으로 결정된 판결문. ⓒ김찬영

◇ “아빠가 지켜줄게!”  

그는 하루아침에 애 딸린 이혼남이 됐다. 크게 일으킨 사업도 망했다. 그 과정에서 아파트도 넘어갔다. 한마디로 부도가 났다. 모두 정리하고 나니 통장에 남은 건 마이너스 1500만 원. 절망적이었다. 

”그때 나이가 36살이었어요. 5살 아이와 마이너스 통장을 보니 참 막막하더라고요. 어느 날 ‘살아서 뭐 하나, 애 데리고 한강 가서 함께 떨어져 죽는 게 차라리 낫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편으론 무서웠어요. 내가 죽으면 남겨질 아이가 생각났거든요. 너무 큰 스트레스에 밥을 전혀 못 먹었어요. 체중이 2주 만에 15kg 빠졌어요. 동반 자살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갈 정도였어요. 우울감과 좌절감이 극에 달한 거죠."

그때까지 찬솔이에게는 이혼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아직 어린 아이가 받을 충격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사실 아이 입장에서는 엄마가 하루아침에 인사도 없이 사라진 셈이니까. 

“찬솔이는 이혼 후 10개월이 지날 때까지 한 번도 엄마에 대해 묻지 않았어요.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어요. 정말 몰랐을 수도 있고... 저는 그게 항상 미안했어요.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든 그날도 미안한 마음으로 아이가 자는 모습을 보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아이가 새근새근 자는 모습이 너무 예쁘게 보이더라고요. 이상하게 눈물이 안 났어요. 대신 ‘피식’하고 웃음이 났어요. 그때 ‘내가 지금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구나. 빚부터 빨리 갚아야겠다. 더 이상 주저앉아 있으면 안 되겠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그날 밤 그는 찬솔이의 손을 붙잡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결단했다. 

“그래.. 아빠가 지켜줄게!”

아빠는 아들의 손을 잡고 지켜줄 거라 다짐했다. ⓒ김찬영
아빠는 아들의 손을 잡고 지켜줄 거라 다짐했다. ⓒ김찬영

◇ “그럼 됐어. 상관 없어“

“이혼 후 10개월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어요. 목욕하던 아이가 갑자기 만화 주제가를 개사해서 불렀어요. 그런데 가사를 듣고 너무 놀랐어요. 가사가 ‘엄마는 왜 안 오나? 엄마는 죽었나?’였거든요. 이혼 후 아이 입에서 처음으로 ‘엄마’라는 단어를 들었던 거죠. 아마 아이가 신나게 노래하다 무심코 속마음이 나온 것 같아요.”

그는 가슴이 찢어졌다. 해맑은 아이의 노랫소리가 더 슬프게 들렸다. 아이는 엄마가 아파서 수술하러 간 줄 알 텐데, 그동안 엄마가 얼마나 그리웠을지 짐작됐다. 이 이야기를 들은 주변 사람들은 아이 엄마가 아이를 면접하도록 연락해보라 했다. 자기가 배 아파서 낳은 아이인데 외면할 수는 없을 거라고 했다. 사실 아이 엄마는 이혼 후 10개월 동안 한 번도 아이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아이를 위해 문자를 보냈다. 아내는 1년여 만에 아이를 보겠다며 연락을 해왔다. 잘못을 후회한다며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했다. 그는 오랜 고심 끝에 마지막으로 아이 엄마를 다시 용서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오래가지 못했다. 2주 만에 다시 떠났다. 그는 더 이상 아이에게 이혼 사실을 숨길 수 없었다. 그래서 용기를 냈다. 

“찬솔이에게 한부모 가정을 아냐고 물었어요. 아이가 유치원에서 배웠다며 한부모 가정에 대해서 또박또박 설명했어요. 그래서 ‘사실은 엄마 아빠도 이혼했어. 우리가 한부모 가정이 된 거야.’라고 말해줬죠. 그때부터 눈물이 났어요. 아이 앞에서 정말 펑펑 울었어요. ‘아빠가 어떻게든 이혼 안 하려 했는데 도저히 막을 수 없었어. 너무 미안해. 우리 이제 찬솔이, 아빠, 할머니랑 이렇게 셋이서 살 거야. 엄마랑은 같이 안 살 거야’라고 말해줬어요. 그 말을 들은 아이가 제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10초 정도 생각을 하더라고요. 그러더니 ‘그럼 나 이제 엄마 못 봐?’라고 물었어요.” 

그는 아이에게 원하면 얼마든지 엄마를 볼 수 있다고 안심시켰다. 엄마 아빠 모두 아이를 사랑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아이는 또 10초 정도 생각했다. 그리곤 더없이 천진난만한 얼굴로 말했다.

“그럼 됐어. 상관없어.”

당시 찬솔이가 다니던 한솔유치원 원장은 아이들은 어른들의 걱정보다 더 빨리,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며 이혼 사실을 털어놓기 어려워하는 김찬영 씨에게 조언을 해줬다. 그는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때 많은 도움이 받았다며 고마워했다. ⓒ김찬영
당시 찬솔이가 다니던 한솔유치원 원장은 아이들은 어른들의 걱정보다 더 빨리,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며 이혼 사실을 털어놓기 어려워하는 김찬영 씨에게 조언을 해줬다. 그는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때 많은 도움이 받았다며 고마워했다. ⓒ김찬영

◇ “이혼 그리고 현실”

찬솔이를 지켜주기로 다짐한 그날. 그는 친구에게 일자리를 부탁했다. 그리고 다음날, 택배 포장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한 달에 150만 원. 당시 최저시급이었지만 그는 열심히 일했다. 

“이혼하면 몇 가지 어려움이 생겨요. 그중에 경제적인 부분이 가장 큽니다. 일단 소득이 반으로 줄어드니까요. 그래서 양육자는 양육비를 꼭 받아야 해요. 나는 굶더라도 아이는 잘 먹고 교육을 받아야 하니까. 

그는 지금도 양육비 소송 중에 있다. 아내가 양육비를 안 보내기도 했기 때문이다. 작정하고 도망치면 못 받는 경우가 태반인 게 현실인데, 그럼에도 그는 소송을 포기할 마음이 전혀 없다. 

“양육비를 못 받은 아이는 사회로부터 차별을 받게 되는 거예요. 이혼해서 혼자가 되면 우선 소득이 줄어들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과 달리 여러 가지 부분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거든요. 예를 들면 학원도 충분히 못 다니게 되고, 먹는 거나 입는 것도 차이가 나게 됩니다. 양육비 받으면 아무래도 그런 부분에서 최소한의 보탬이 되겠죠. 양육비는 내 아이를 위한 돈이잖아요. 이혼한 상대방이 불편하거나 방법을 모른다는 이유로, 양육비를 포기하는 분들도 있는데, 이건 양육자로서 아이를 위한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입니다. 부모로서 큰 죄를 짓는 거죠. 양육비이행관리원을 통하면 소송비도 무료예요. 더 많은 사람이 부모의 책임을 다했으면 좋겠습니다.” 

육아도 싱글대디가 겪는 어려움 중에 하나다. 다행히 당시 어머니가 제주도 본가에서 올라오셔서 많이 도와주신 일을 두고, 그는 자식으로서 참 죄송스러운 일이라고 털어놨다. 어머니에게 죄를 지은 아들은 다른 곳을 볼 여유가 없었다. 이혼 후 3년 동안 다시 자리를 잡기 위해 앞만 보고 일했다. 

그는 경제적인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자 외로움이 밀려왔다고 말했다. 이성을 만나고 싶은 게 아니었다. 자신의 상처를 공감하고 위로해 줄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어린 시절부터 인연을 이어온 친구가 많아요. 그 친구들에게 내 이야기를 털어놓기도 했죠. 그런데 위로가 안 되더라고요. 겪어봐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잖아요? 이혼이 그래요. 30년 지기 친구보다, 어제 만났지만 같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큰 위로를 받았어요.”

그는 인터넷의 한 돌싱 커뮤니티에 복잡한 마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먼저 이혼을 겪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서로의 아픔에 공감했다. 그러다 오프라인 모임에도 나가기 시작했다. 그곳의 사람들은 서로 비슷한 경험을 한 터라, 다친 마음을 설명하는 데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때때로 아이와 함께 캠핑을 하기도 하며 친목을 다졌다. 그렇게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연스레 이혼으로 인한 아픔이 치유됐다. 어느새 그는 예전의 유쾌한 아빠로 돌아왔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었다. 그래서 유튜브 채널 ‘돌싱티비’도 운영하고 있다. 

“돌싱티비에서 제 이야기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예요. 인터넷 돌싱 커뮤니티는 이혼과 관련된 사람들만 만날 수 있지만, 유튜브는 더 다양한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통로니까요. ‘자꾸 방구석에서 숨어 지내지 말고 세상 밖으로 나오세요!’라고 돌싱들에게 손을 내미는 채널이에요. 채널이 더 커지면 일반인들도 보면서 공감을 많이 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돌싱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뀔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싱글 대디 김찬영 씨는 아들이 당당하고 긍적적으로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란다. ⓒ김찬영
싱글 대디 김찬영 씨는 아들이 당당하고 긍적적으로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란다. ⓒ김찬영

◇ “아빠가 바라는 것”

그는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최근에 돈가스집 사장님이 됐기 때문이다. 지난 5년여간, 투잡으로 일하며 배운 식당 조리사 경험이 창업의 밑거름이 됐다. 혹독한 자영업 시장에 호기롭게 뛰어든 40대 싱글 대디는 꼭 성공시킬 거라고 다짐했다. 이유가 있었다. 

“찬솔이가 학교와 학원을 마치면 식당으로 와요. 점심을 먹기도 하고 아니면 한 1시간쯤 놀다가 집으로 갑니다. 제가 밤 9시 넘어서 퇴근하는데 그때까지 집에서 혼자 놀게 되는 거죠. 주로 게임이나 TV를 봐요. 교육상 좋지 않지만, 현실적으로 다른 방법이 없어요. 친구들요? 대부분 그 시간에 학원에 있어요. 코로나 때문에 보기 힘들기도 하고요. 찬솔이는 사정상 태권도 학원만 보내고 있어서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해요. 그래서 가게를 꼭 성공시켜야 해요. 내년에 아이 학원 하나 더 보내주고 싶거든요.”

그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아들이 움츠러들까 걱정한다. 이혼 가정의 자녀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이 아직도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소에 더 많이 대화하고 더 친구처럼 지내려 노력한다. 아빠처럼 당당하고 긍정적으로 살아가길 바라는 것이다. 아들의 행복을 비는 아빠의 마음이다. 

“아들아. 아빠는 네가 이혼 같은 거 하지 말고 행복하게 잘 살길 바라. 만약 이 글을 읽는 지금 결혼해서 아내가 있다면, 여자라는 생각보다는 형제자매처럼 평생의 동반자 같은 가족으로 받아들이길 바란다. 큰 기대보다는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으로 살면, 이혼 같은 거 안 하고 잘 살 수 있을 거야. 이혼하지 마 새끼야. 이게 그렇게 좋은 게 아니야.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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