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맨발로 쓰레기 주우며 바다 사용료 내고 옵니다
오늘도 맨발로 쓰레기 주우며 바다 사용료 내고 옵니다
  • 칼럼니스트 노미정
  • 승인 2022.01.31 08: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작은도서관과 함께하는 마을육아+지구수다] 함께사는 세상, 함께사는 지구

◇ 이야기가 꽃피는 새벽 맨발 걷기

15년만에 환상적인 바다 일출을 보고 난 후, 매일 새벽 맨발걷기를 한다. 수평선 너머로 붉으스름한 빛깔이 퍼진다. 조금 있으면 해가 뜨겠다. 6시 40분쯤 멀리서 보이는 익숙한 실루엣. 도서관친구들이 반갑게 손을 흔들며 나타난다. 날씨도 쌀쌀한데다 새벽이라 맨발초보에게 오늘은 난코스다. 안그래도 돌무더기가 많아 발에 불이 나는 것 같단다.

오늘 못 온 한 친구에게 바다사진을 보냈더니 너무 아쉬워했다. 알람을 맞춰놓았는데 딸이 시끄럽다고 꺼버렸다며 내일은 꼭 오겠단다. 며칠 하다 말줄 알았는데 계속 나오는 게 신기해 물었다.

“몸이 좋다. 뭐 이런 건 아직 모르겠는데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좋았어요. 주말에도 늦게까지 자고 뒹굴뒹굴 했는데, 일상에 변화를 주고 부지런해 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규칙적인 생활을 해보려고, 삶에 활기를 얻으려고 그렇게 4명이 아침 바다를 매일 함께 걸었다. 자식얘기, 사는 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일, 공부, 고민, 계획들. ‘나’의 얘기를 하고 ‘너’의 얘기를 들으며 우리의 시간이 쌓여갔다.

매일 아침 6시에서 7시 바다를 맨발로 걷고 쓰레기를 줍는다. (4월-11월) 우리는 더불어숲작은도서관 '맨발덕분에' 동아리다. 주말엔 아이들도 함께. ⓒ노미정
매일 아침 6시에서 7시 바다를 맨발로 걷고 쓰레기를 줍는다. (4월-11월) 우리는 더불어숲작은도서관 '맨발덕분에' 동아리다. 주말엔 아이들도 함께. ⓒ노미정

◇ 바다에서 만난 생명들, 우린 함께 살고 있었구나

맨발로 걸으면 위험하거나 다칠까봐 바닥을 집중해서 보며 걷는다. 예전과 다르게 걷는 길 위의 것들이 보인다. 오늘은 해변에 쓸려나온 해초더미와 쓰레기들 사이에서 까맣고 얼룩덜룩하고 미끈거리는 물체를 발견했다.

제사상에 올리는 귀한 거라는데, 맛은 없고 질긴 걸로 유명한 ‘군소’다. 그대로 두면 죽을 거 같아 군소 살리기에 나섰다. 손으로 잡기엔 징그러워 발로 천천히 밀면서 바다로 보냈다. 족히 20∼30마리는 되는 것 같다.

한 친구는 비닐봉지를 주워서 미역을 담는다. 어제 아주머니들이 담는 걸 보더니 한번 해먹어보겠단다. 여기저기 흩어진 미역을 주워 담으니 검정 비닐봉지 한 가득이다. 다음날 미역 한보따리 중 반은 질겨서 버렸다며 요리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고 했다.

주말 아침. 누가 라면을 먹고 바다에 버리고 가는지 라면 덩어리들이 자꾸 보이는게 이상하다. 맨발동무 한 명이 아이들을 데리고 조금 늦게 왔다. 해변에 버려진 라면인줄 알았는데 중학생 아이가 ‘군소알’이라고 알려줬다. 모르고 지나쳤을 것을 아이들에게서 배운다. 자세히보니 노란 알갱이들을 투명한 보호막이 감싸고 있다. 살짝 징그러웠지만 올챙이 알이나 도롱뇽 알이 생각났다.

군소살리기 대작전. 바닷가에 떠밀려온 군소와 햇빛에 말라가는 군소알을 바다로 보내줬다. ⓒ노미정
군소살리기 대작전. 바닷가에 떠밀려온 군소와 햇빛에 말라가는 군소알을 바다로 보내줬다. ⓒ노미정

◇ 해수욕장에서 폭죽사용은 금지되었습니다

5월 6일 아침, 어제는 어린이날. 요즘 바닷가에 폭죽 쓰레기가 쓰나미처럼 펼쳐져 있다. 어린이날 우리 가족도 바닷가에서 불꽃놀이를 했다. 온갖 널려있는 폭죽쓰레기들을 보면서 우리가 사용한 건 가져가자고 했다.

남편이 폭죽을 샀던 노점 왼편 스티로폼 박스에 폭죽이 꽃혀 있는걸 봤는데 파는 건지, 다 쓴걸 모아 놓은건지 물어본다고 갔다. 버리는 곳이 맞다고 했다.

노점상 아저씨가 폭죽을 팔면서 사용하고 나면 거기에 버려달라고 한마디만 해주면 좋겠다. 안전 신문고에 폭죽수거문제를 알리고 폭죽수거함을 마련해달라고 올렸다. 쓰레기를 줍는게 문제가 아니라 버리지 않도록 생각이 바뀌어야한다.

안전신문고에서 답변이 왔다.

"해수욕장 이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제 22조에 따라, 해수욕장 내 폭죽, 꽃불등의 사용행위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해수욕장내 이용금지 현수막을 게재하고, 홍보방송 및 주변 폭죽 판매상가 및 노점상에 수거함 비치, 안내가 되도록 계도하겠습니다."

너도 나도 다 사고 팔기에 바닷가 폭죽사용이 불법인 줄 몰랐다. 바닷가 폭죽쓰레기로 뉴스를 검색해보니 해수욕장 곳곳에서 폭죽문제가 심각한 환경문제였다. 폭죽쓰레기 외에도 오래 방치된 쓰레기 봉투, 불법투기물, 모래로 뒤덮힌 수돗가 개선 등으로 몇차례 안전신문고에 글을 올렸다. 더디지만 조금씩 바뀌기 위해선 나부터 모른 척 하지 않아야겠다.

맨발걷기를 하며 주운 폭죽쓰레기들. 폭죽판매를 금지하지 않는다면 폭죽쓰레기를 분리배출할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노미정
맨발걷기를 하며 주운 폭죽쓰레기들. 폭죽판매를 금지하지 않는다면 폭죽쓰레기를 분리배출할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노미정

◇ 맨발걷기와 쓰레기 줍기가 자원순환을 만나다

초반엔 플로깅 하며 쓰레기봉투에 담았는데, 공공근로 청소하시는분들과 겹치기도 하고, 더워지면서 일회용컵, 캔 종류가 많이 나와서 재활용되는 것만 주웠다.

때마침 ubc 울산방송에서 운영하는 자원순환가게 ‘착해가지구’를 알게 됐다. 5월부터 10월까지. 바다에서 주운 재활용쓰레기를 깨끗하게 모아서 한달에 한번 갖다줬다. 더불어숲작은도서관 밴드와 환경관련 모임단톡에 후기도 공유했다.

-2021년 5월 21일 / 더불어숲작은도서관 맨발걷기동아리 '맨발덕분에'

오늘은 자원순환가게 ‘착해가지구’ 다녀왔어요. 일산해수욕장에서 줍깅한 캔과 플라스틱을 트렁크와 차안에 가득 싣고~ 캔은 알루미늄만 된대요. 밟고 찌그러뜨리고 오늘 같이 더운 날 땡볕에 땀 좀 흘렸어요. 저희가 있는 동안에도 재활용품을 들고 오시는 분들이 꽤 많아서 놀랐어요.

아침에 맨발걷기하며 쓰레기 주울땐 줍고 씻기 바빠 라벨제거를 못했어요. 더운데 가위질 땀나네요. 자원순환가게 ‘착해가지구’에는 현수막 재활용으로 만든 분리배출함과 우유갑되살림함이 있어요. 비어있던 곳이 재활용품으로 넘치니 뿌듯하기도 속상하기도 해요. 버려진 캔과 일회용컵이 이렇게나 많다니. 무게달고 가격 책정해서 울산페이로 넣어주신대요. 저희는 쓰레기 봉투를 살 예정입니다.

"쓰레기가 돈이 됩니다."

작은플라스틱 병뚜껑 20개 이상 모아오면 재활용품으로 만든 비누곽도 준대요. 바다에서 주은 걸로 저희도 참여했어요. 2층엔 제로웨이스트숍도 있어요. 자원순환가게 착해가지구 가까운 곳에도 있으면 참 좋겠어요. 요즘 맨발동무 은주씨 눈에는 거리에 버려진 캔 만 보인답니다. ㅎㅎ

너만 보인단 말이야♪
너만 찾는단 말이야♪
눈을 감아도 너만 보인단 말이야♪

공기도, 물도, 바다도 자연이 공짜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가장 정확하게 되돌려 주는 게 자연이다. 우리는 맨발로 쓰레기를 주우며 오늘도 바다 사용료를 내고 온다.

ubc 울산방송에서 운영한 자원순환가게 '착해가지구'. 2021년 4월부터 11월까지 운영됐다. ⓒ노미정
ubc 울산방송에서 운영한 자원순환가게 '착해가지구'. 2021년 4월부터 11월까지 운영됐다. ⓒ노미정

*칼럼니스트 노미정은 고등학생, 중학생, 늦둥이 여섯 살까지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다. 울산 동구의 더불어숲작은도서관에서 친구들과 공동육아·마을공동체를 고민하며, 함께 읽고, 쓰고, 밥도 먹는다. 아이들을 함께 키우는 마을, 우리가 오래도록 살고 싶은 마을을 위해 지금 나부터 ‘꿈틀’하고 있다

【Copyrightsⓒ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 

베사모의 회원이 되어주세요!

베이비뉴스는 창간 때부터 클린광고 정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작은 언론으로서 쉬운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이비뉴스는 앞으로도 기사 읽는데 불편한 광고는 싣지 않겠습니다.
베이비뉴스는 아이 낳고 기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대안언론입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에 동참해주세요. 여러분의 기사후원 참여는 아름다운 나비효과를 만들 것입니다.

베이비뉴스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베이비뉴스와 친구해요!

많이 본 베이비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대로 78 경찰공제회 자람빌딩 B1
  • 대표전화 : 02-3443-3346
  • 팩스 : 02-3443-3347
  • 맘스클래스문의 : 1599-0535
  • 이메일 : pr@ibabynews.com
  • 법인명: 베이컨(주)
  • 사업자등록번호 : ​211-88-48112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서울 아 01331
  • 등록(발행)일 : 2010-08-20
  • 발행·편집인 : 소장섭
  • 저작권자 © 베이비뉴스(www.ibaby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개인정보보호 배상책임보험가입(10억원보상한도, 소프트웨어공제조합)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유미 실장
  • Copyright © 2024 베이비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ibaby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