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 속의 아이들과 가족 ②
료타는 6년 간 키운 아들 케이타가 친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병원에서 아이가 바뀌었다고 뒤늦게 연락을 준 것이다. 료타 부부는 병원의 중개로 자신들의 친자 류세이를 키워온 가족을 만난다.
류세이를 키운 유다이와 료타는 아버지로서 정반대의 모습을 보인다. 료타는 잘나가는 회사원으로 아들보다 일이 늘 우선이다. 그는 아들과 거의 시간을 함께 보내지 않는다. 료타는 아들과의 관계에서도 회사에서처럼 성취와 성과를 중요시한다. 피아노 발표회에서 연주를 망친 아들에게 료타는 차갑게 묻는다. 저렇게 잘 치는 친구를 보면 분하지 않느냐고.
반면, 전기 상회를 운영하는 유다이는 료타만큼 사회적으로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류세이를 포함한 삼남매와 늘 시간을 함께 한다. 아들과 함께 목욕을 하고, 아이들과 연을 날리고, 큰 소리로 깔깔대면서 아이들과 뒹군다. “여름이 되면 불꽃놀이하고, 수영장에도 들어가고, 수박 깨기도 하자”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걸 보면 이 남자, 아이들과 노는 데 진심이다.
케이타에게 다가가지 않는 료타에게 유다이가 말한다. “지난 반 년 동안 케이타가 당신보다 나랑 함께 한 시간이 더 길었어요.” 료타가 대답한다. “회사에 나 아니면 안 되는 일이 있거든요.” 유다이가 진지한 표정으로 응수한다. “아버지란 일도 다른 사람은 못하는 거죠.”
딩크 시절, 이 영화를 보고 유다이의 일격에 뒤통수를 맞은 듯했다. 그렇네. 아버지도 대체 불가능한 자리구나.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말인데, 그때 그렇게 충격을 받았던 이유는 내 무의식에 아버지는 어머니만큼 아이에게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편견이 숨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에 빠져 가정을 등한시하는 료타에게 여성인 나조차 ‘남자가 바쁘면 그럴 수도 있지’라고 면죄부를 주고 있었다.
아이가 병원에서 바뀌었다는 소식을 접한 료타의 아버지는 강조한다. 사람도 말과 마찬가지로 피가 중요하다고. 반면, 료타를 키운 새어머니는 “피가 연결 안 됐어도 같이 살다가 보면 정도 생기고 닮기도 해”라고 넌지시 말한다. 료타의 장모는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라고 조언한다.
류세이 가족과 교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케이타는 자신의 친부인 유다이를 따르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결코 ‘피가 당겨서’는 아니다. 반대로 류세이는 자신의 친부인 료타와 끝내 가까워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케이타와 류세이는 모두 아이들에게 곁을 내주지 않는 냉정한 료타와 관계 맺기를 힘들어하고, 자신의 품을 온전히 아이들에게 내주는 유다이에게 자석처럼 끌린다.
아버지를 진짜 아버지로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영화는 혈연이 아니라 함께 한 시간이라고 나지막하게 관객을 설득한다. 생물학적으로 유전자는 줬지만 감정적 교류가 없다면, 시간을 함께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껍데기만 남은 부자(父子) 관계일 뿐이다.
아버지가 되기로 결심했다면, 기존의 삶을 허물어 아이가 들어갈 빈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료타의 삶을 가득 채운 것은 직장에서의 성공뿐이었다. 그는 회사 일을 핑계로 육아를 아내에게 전적으로 맡겨 버렸다. 그러나 아이는 옆으로 치워버리면 되는 물건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이라서, 료타는 아들을 언제나 뒤로 밀쳐둔 대가를 치러야 한다.
료타가 아들을 자기 삶에 들여놓지 않은 딱 그만큼, 케이타에게 료타의 자리는 좁아진다. 아빠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억지로 피아노를 치며 아빠를 짝사랑하던 케이타는 결국 “아빠는 아빠가 아니야”라며 아빠와의 대화를 거부한다.
영화 초반부에 케이타와 류세이를 ‘맞교환’할 것인가를 가장 큰 질문으로 던지는 듯했던 감독은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감추고 있었던 진짜 화두를 슬그머니 내민다. 케이타를 키우든, 류세이를 키우든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료타는 어떤 아버지가 되어야 하는가.
돈만 많이 벌어오면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는 시대는 갔다. 아버지가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오르면 자동적으로 가정에서도 존경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옛날 일이 됐다. 아버지로서 해야 하는 일도 직장 일만큼 중요시해야 한다. 아이가 태어난다고 저절로 아빠가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아버지에게도 일과 가정 사이의 균형이 필요하다.
영화는 말한다. 아이와 함께 울고 웃고 놀고 대화하는 시간을 한 층 한 층 켜켜이 쌓으면서 남성들도 스스로를 아버지로 만들어야 한다고. 10여 년 전에 나온 외국 영화지만, 이 영화가 현재 한국의 남성 양육자들에게도 유의미한 울림을 전하는 이유다.
*칼럼니스트 최가을은 구 난임인, 현 남매 쌍둥이를 둔 워킹맘이다. 아이들을 재우고 휴대전화로 영화를 본다. 난임 고군분투기 「결혼하면 애는 그냥 생기는 줄 알았는데」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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