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 플로깅을 하며 세상을 다시 배우는 중입니다
맨발 플로깅을 하며 세상을 다시 배우는 중입니다
  • 칼럼니스트 노미정
  • 승인 2022.02.2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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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도서관과 함께하는 마을육아+지구수다] 어려움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배우고 성장한다

작년에 기억나는 일을 꼽으라면 당연히 맨발걷기와 쓰레기줍기다. 4월부터 11월까지 매일 아침 바닷가를 함께 걸으며 쓰레기를 주웠던 맨발동무들끼리 우스갯소리로 쓰레기에 미쳤던 시간이라고 했다. 우리는 왜 그렇게 열심히 했을까? 올해 다시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좋은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해받아 마음 상하고 힘들 때도 많았다.

신발과 재활용품이 없어지는 일을 겪고 난 후, 안내문을 부착했다. ⓒ노미정
신발과 재활용품이 없어지는 일을 겪고 난 후, 안내문을 부착했다. ⓒ노미정

◇ 주워놓은 재활용 쓰레기가 없어졌어요

바다에서 쓰레기를 주울 때 동네시장 채소가게에 버려진 양배추망을 주워 쓰레기봉투 대신 사용했다. 여름이 되며 버려진 일회용 컵, 맥주와 음료캔이 많아져서 큰 양파망도 샀다. 청소하시는 분들이 쓰레기를 마대자루에 담기 전에 바닷가에 도착하면 먼저 플로깅부터 했다. 우리가 신발장으로 사용하는 구조대 계단에 쓰레기를 담은 초록망, 빨강망을 대롱대롱 매달아놨다.

“언니, 우리 그물망이 안 보여요.”

“어, 진짜네. 누가 가져갔지?” 초록, 빨강 그물망은 멀리서도 눈에 띄는데 맨발 걷는 동안 감쪽같이 사라졌다.

바다 청소하는 어르신들이 멀찍이 보였는데 마대자루가 두툼한 게 혹시나 싶어 큰소리로 부르며 달려갔다.

“혹시 저기 매달아 놓은 재활용 쓰레기 가져가셨어요?”

“버리는 건 줄 알고 담았는데, 안 그래도 좀 이상하다 싶어서.” 마대자루 안을 들여다보니 재활용이 담긴 망이 그대로 들어있었다.

“저희가 아침마다 맨발 걷기하면서 재활용 쓰레기를 주워요. 자원순환 하는거라 저희가 치우니까 버리지 마시고 그냥 두시면 되요. 혹시 청소하는 다른 분들께도 좀 알려주세요.”

그 이후로도 재활용망이 없어지는 일이 몇 번 더 있었다. 공공근로 하시는분들이 많기도 했고 오전 오후로 순환되기에 일일이 말씀드려야 했다.
이대로는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늦었지만 안내판을 만들었다.

‘맨발 걷기하며 쓰레기 줍는 중이예요. 신발과 재활용 쓰레기 가져가지 마세요’ 먹고 난 과자 상자 뒷면에 안내문구를 적어서 집게를 꽃아 구조대 계단에 매일 걸어놨다.

그런데 몇일 뒤, 주워놓은 재활용품 중에 캔과 병만 없어지는 일이 발생했다. 다음 날 아침 캔을 줍는 아주머니가 보였다. 자연스레 나는 우리가 주워놓은 망을 살펴봤는데 계단 안으로 밀어 넣었던 망들이 쏟아져 있고, 플라스틱 쓰레기만 남아 있었다.

아주머니에게 다가가 물었다.

“혹시 캔 주우시나요? 어제 저 계단 그물망에 든 것 가져가셨어요?”

“아닌데, 누가 버린 건가 싶어 내가 좀 전에 거기에서 꺼내 갔어. 옛다, 여기 있수.” 기분 나쁘다는 말투로 내게 캔 하나를 불쑥 내민다.

“아뇨, 캔을 다시 받으려는 게 아니라, 해변 정화 활동으로 쓰레기를 줍고 있는데 어제 그물망이 통째로 없어져서요.”

“그건 나도 모르는 일이여, 방금 와서 줍고 있는데.”

“아, 제가 오해 한 거면 죄송해요. 맨발로 쓰레기 줍는다고 신발이랑 재활용품 저기 두거든요. 다음엔 가져가지 마세요.”

“아이구, 알겠네요. 쓰레기가 주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원 참.” 아주머니가 퉁명스럽게 말하며 가셨다.

심증으론 어제 일도 이 분이 맞는 것 같은데 엄마 같은 분과 이런 일로 얼굴을 붉히니 마음이 불편했다. 처음 활동을 시작한 것은 바다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 때문이었다. 여름이라 캔이 많이 나왔고 재활용품중에서도 돈이 된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새벽에 소주병과 캔을 줍는 어르신들이 자주 보였다. 생계나 용돈벌이를 위해 아침마다 나오시는데, 본의 아니게 이분들과 경쟁하는 상황이 됐다.

캔은 놔두고 플라스틱만 주울까? 고민이 생겼다. 집으로 돌아가는데 파지가 실린 리어카를 힘겹게 끌고 가는 할머니가 보였다. 점점 더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날 이후, 캔을 줍는 어르신이 보이면 플라스틱 위주로 쓰레기를 주웠고, 먼저 주운 캔들을 한가득 드리기도 했다. 누가 갖고 가든 쓰레기로 버려지지 않고 자원순환 하면 되는 거니까.

처음에 이용했던 수돗가에서 재활용 쓰레기 세척중(위). 바다에서 주운 쓰레기 집에서 씻었다(좌). 대야와 분리수거 가방을 이용해 세척함(우). ⓒ노미정
처음에 이용했던 수돗가에서 재활용 쓰레기 세척중(위). 바다에서 주운 쓰레기 집에서 씻었다(좌). 대야와 분리수거 가방을 이용해 세척함(우). ⓒ노미정

◇ 좋은 의도로 시작한 일에 상처를 받았던 순간들, 이대로 포기하는 게 답일까?

아이들 등교 준비를 하려면 빨리 서둘러야하는데 오늘 작업량이 만만치 않다. 재활용 쓰레기를 씻으려고 망을 붓는데 공공근로 청소하는 분이 오더니 앙칼진 목소리로 호통을 치신다.

“지금 뭐하는 거예요. 여기서 이런 거 씻으면 안 돼요.”

“네? 바닷가 쓰레기 주워서 재활용하는 건데요. 벌써 3개월째 하고 있어요.”

“앞으로 여기서는 씻지 마세요. 다른 데 가서 하세요.”

아줌마의 버럭하는 말에 심장이 콩닥콩닥 뛰면서 순간 얼음이 됐다. 좋은 마음으로 시작한 일인데 오해를 받으니 답답하고 속상했다. 내일 또 저 아줌마랑 마주칠 거 같은데 어쩌지?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

오후 4시쯤, 052 지역 번호로 부재중 전화가 온 걸 확인하는데,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동구청 환경과입니다. 안전 신문고로 신고해주신 민원이 담당과가 달라서 이전 처리하면서 답변이 늦어질 거 같습니다.”

지난번 바닷가 불법 쓰레기 투기로 신고했던 민원에 대한 전화였다.

“참, 한가지 여쭤봐도 될까요? 저희가 아침마다 일산해수욕장 맨발 걷기 운동을 하면서 쓰레기를 줍고 깨끗이 씻어서 자원순환가게 가져가는 환경 활동을 하고 있는 대요. 오늘 쓰레기 청소하시는 분이 수돗가 물 사용하지 말라고 하셔서 이 문제를 어디에 물어 봐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참이예요.”

구청 담당 주무관에게 맨발 플로깅 활동과 수돗가 물사용 문제로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여름에 개인 설겆이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청소하는 분이 오해한 것 같다며 잘 말해놓겠다고 했다. 거기서 계속 재활용 씻어도 되고 좋은 활동 하신다고 수고 많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한 달 쯤 후였다. 재활용 쓰레기를 씻고 있는데 청소하는 팀 반장이란 사람이 와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삿대질을 하며 지금 하고 있는 거 당장 그만두라고 말했다. 너무 당황스럽고 무서워서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하게 있다가 마음을 진정시키고 설명했다.

쓰레기를 씻어서 자원순환하고 개인적으로 이익을 취하는 건 전혀 없고, 구청에 허락도 받았다고 했는데 담당자 이름이 뭐냐며 자기는 들은 바가 없단다. 쓰레기 줍는 건 상관할 바 아니지만 물 사용은 안 된다며 자기들한테 민원 들어온다고 집에 가서 씻던지 하라고 말했다. 좋은 일 한다고 칭찬을 바란 적도 없지만 개인 이득 돈벌이 취급을 받으니 너무 억울했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서 이걸 계속해야 하나? 하루 종일 머리가 복잡했다. 맨발동무들과 얘기를 했는데 구청에 다시 전화로 물어보자고 했다.

다음날부터 맨발 걷기만 하고 쓰레기 줍기는 당분간 안 하기로 했는데, 맨발동무 은주는 그 사람 때문에 지금껏 해왔던 플로깅을 못하는 게 화난다며 집에 가져가서 씻겠다고 차에 싣고 갔다. 몇 일 그렇게 해보니 화장실이 난리가 났는지 계속하기 힘들다고 그만뒀다.

구청 담당자와 통화를 했는데, 현장 반장이라며 큰소리를 쳤던 그 사람은 현장 반장도 아니었다. 플로깅하며 물 사용해도 된다고 최근 기간제 근로자들이 바뀌면서 잘 몰라서 그러니 다시 얘기해놓겠다고 했다.

일이 잘 풀렸나 싶었는데 왠 걸, 매일 씻던 수돗가에 물이 잠겼다. 2월 추운 날씨에도 잠긴 적 없는 물이 9월초에 갑자기 안 나왔다. 해수욕장이 폐장되면서 전체적으로 물이 잠겼다. 이건 하지 말라는 얘기다. 이제 어쩌지? 이대로 포기하는 게 답일까? 아쉬운 대로 바닷가 행정봉사실 옆 작은 수돗가에서 몇일 동안 씼었다.

청소하는 분들 쉬는 곳 바로 옆이라 너무 눈치가 보였다. 그동안 몇 번의 오해도 있었고, 아침에 마주치면 좋은 일 한다고 말해 주시는 분도 있었지만 불편하게 보는 시선도 느껴졌다.

활동을 계속 하려면 행정봉사실 허락을 받아야 할 거 같아 문을 두드렸다. 쓰레기 자원순환 활동도 설명하고, 구청에 허락도 받았는데 수돗가 물이 끊어져서 행정봉사실 옆 수돗가에서 계속 씻어도 될지 물었다. 활동은 하되 물을 너무 많이 쓰면 문제가 될 수 있으니 물을 받아서 사용하라고 하셨다. 처음엔 대야를 갖고 와서 하라고 하는데 매번 갖고 다니기도 불편하고 어쩌지 고민하는데 맨발동무 은주씨가 집에 있던 재활용 분리수거 가방을 갖고 왔다. 가볍고 쓰레기도 담고 물도 받고 일석이조다. 때마침 바닷가에 버려진 대야 2개도 주워서 세척 할 때 함께 사용했다.

해뜨는 아침, 작은집게로 바닷가 미세플라스틱 줍는 중(위). 매일 줍고 매일 인증샷을 남겼던 우리들의 맨발 쓰줍 기록(아래). ⓒ노미정
해뜨는 아침, 작은집게로 바닷가 미세플라스틱 줍는 중(위). 매일 줍고 매일 인증샷을 남겼던 우리들의 맨발 쓰줍 기록(아래). ⓒ노미정

◇ 단지 쓰레기를 주웠을뿐인데, 나는 한 뼘 더 성숙한 시민이 됐다

플로깅을 하며 우리가 하는 활동이 더 환경적인지 덜 환경적인지 고민도 했다. 바닷가에서 주운 재활용 쓰레기를 씻느라 물을 사용해야 하는 부분, 재활용품을 싣고 자원순환가게에 갈 때 차를 이용해 탄소발자국을 발생시키는 일.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처럼 우리가 하는 활동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 마음이 똑같지 않다 보니 공공근로 하시는 분들과 다툼과 오해 속에 속상한 부분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분들은 또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한 거라고 생각했다.

맨발동무들과 의논해 음료 두 박스를 사서 청소하시는 분들과 행정봉사실에 수고 많으시다는 말과 함께 전했다. 아침마다 뵙는 그 분들께 먼저 인사를 건넸다. 매일 아침마다 쓰레기를 줍는 우리들의 진심이 전해졌는지 그 전보다 한결 부드럽게 대해주시고 인사도 먼저 건네주셨다.

좋은 의미로 했던 활동이 오해를 받고 힘 빠질 때도 있었지만 중간에 그만두지 않고 꾸준히 이어가면서 함께 방법을 찾아 나갔다. 부딪히고 해결하는 과정 속에서 사람을 이해하고 함께 나누며 그렇게 어울려 사는거다. 쓰레기를 주웠을 뿐인데, 그 시간을 통해 나는 세상을 다시 배우고 있다.

*칼럼니스트 노미정은 고등학생, 중학생, 늦둥이 여섯 살까지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다. 울산 동구의 더불어숲작은도서관에서 친구들과 공동육아·마을공동체를 고민하며, 함께 읽고, 쓰고, 밥도 먹는다. 아이들을 함께 키우는 마을, 우리가 오래도록 살고 싶은 마을을 위해 지금 나부터 ‘꿈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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