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의 아이들은 죄가 없다
전쟁터의 아이들은 죄가 없다
  • 칼럼니스트 최가을
  • 승인 2022.03.0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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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엄마의 방구석 심야 영화관] ‘사마에게’(2019)

‘사마’는 내전 중인 시리아 알레포에서 태어났다. ‘사마’의 의미는 ‘하늘’이다. ‘사마’의 어머니이자 이 영화의 감독인 ‘와드’는 공군 비행기도 공습도 없는 깨끗한 하늘을 보고 싶다는 의미에서 딸의 이름을 ‘사마’로 지었다. ‘사마에게’는 1인 언론인 와드가 내전 중인 시리아 알레포에서 의사 함자를 만나 결혼하고 딸을 낳아 키우며 전쟁의 참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감독 '와드'는 내전 중인 시리아에서 딸 '사마'를 낳는다. ⓒ(주)엣나인필름
감독 '와드'는 내전 중인 시리아에서 딸 '사마'를 낳는다. ⓒ(주)엣나인필름

‘아랍의 봄’ 물결이 시리아에도 넘실대던 2011년, 와드는 알레포 대학 재학 중 독재 정권에 저항하는 시위에 참여한다. 반정부 시위를 카메라로 찍던 와드는 ‘몇 안 되는 운동권 의사’ 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알 아사드 정권은 무자비한 진압으로 대응하고, 반군 세력이 일어나면서 시리아는 내전에 휩싸인다. 이에 정부 쪽에 러시아, 반군 쪽에 미국이 합세하면서 시리아 내전은 복잡한 양상을 띠며 현재 진행형이다.

정부군과 러시아군은 알레포를 포위하며 남아 있는 시민들의 숨통을 서서히 조이지만, 와드 부부는 자유와 정의를 위해 알레포에 남기로 한다. 공습이 잦아지고, 손수 지은 병원까지 폭격을 당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들은 딸과 함께 알레포를 떠나지 않는다. 영화는 2016년 12월 최후의 순간까지 버틴 가족의 일상과 알레포의 처참한 상황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영화는 와드 가족이 5년 간 겪은 투쟁 과정을 보여준다. ⓒ(주)엣나인필름
공습이 계속되는 알레포. 영화는 와드 가족이 5년 간 겪은 투쟁 과정을 보여준다. ⓒ(주)엣나인필름

작년에 본 이 영화를 이번에 다시 보면서 느낀 건 ‘아이들이 정말 많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처음 나오는 아기는 ‘사마’다. 와드가 동요를 불러주는데 어디선가 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난다. ‘사마’는 별로 놀라지 않고 계속 젖병을 들고 우유를 먹는다.

폭탄 소리가 나도 별 동요가 없는 아기, 사마. ⓒ(주)엣나인필름
폭탄 소리가 나도 별 동요가 없는 아기, 사마. ⓒ(주)엣나인필름

그 다음에는 인큐베이터 안에 있는 아기가 나온다. 함자가 계속 심폐 소생술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보조하는 활동가가 말한다. “30분째 숨을 잘 쉬고 있어. 얘도 살고 싶은가 봐. 포기하지 않길 잘했어.”

동생을 잃은 어린이가 나온다. “집으로 들어오라고 했는데, 그 순간 집에 폭탄이 떨어졌어요.” 아이는 병원 한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서 운다. 그리고 벤치에 놓인 동생의 시신을 안고 볼에 입을 맞춘다. 아이의 어머니는 아들의 시신을 안고 집으로 돌아간다. 도와주겠다는 이웃의 말에 “내 새끼예요. 내가 데려가야 해요”라고 소리친다.

와드의 친구 부부는 삼남매를 두고 있다. “도시가 공격을 받을 거라는데, 나는 여기 남고 싶어요.” 아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어디선가 폭탄 터지는 소리가 난다. 장래 희망이 뭐냐는 질문에 아이는 대답한다. “건축가요. 도시를 다시 세울래요.” 아빠가 “이야기 시간이다”라고 외치자 막내딸 나야가 힘차게 달려가 외친다. “집이 무너진 꼬마 얘기 해 주세요!” 아이는 이사 간 친구들을 종이 인형으로 만들어서 늘어놓는다. “포위는 괜찮은데 친구들 보고 싶어요. 한 명씩 자꾸 떠나요. 건물 밑에 깔리거나 폭탄을 맞거나 아니면 죽어요.”

붉은 글씨로 누군가 "우리는 알레포를 떠나고 싶지 않다"고 써 놓았다. ⓒ(주)엣나인필름
붉은 글씨로 누군가 "우리는 알레포를 떠나고 싶지 않다"고 써 놓았다. ⓒ(주)엣나인필름

응급실에서 다섯 살 정도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아이가 죽은 채로 누워 있다. 아이를 데려온 청소년은 아이가 집에서 자다가 폭격을 맞았다고 한다. 부모는 죽었을 거라고. 저 아이는 내 조카라고. 와드는 고백한다. “인정하기 싫지만 나는 저 아이의 어머니가 부럽다. 자기 아이를 묻기 전에 죽었으니까.”

죽음이 코 앞에 다가온 처참한 상황에서도 아이들은 자란다. 아이들에게 ‘평범한 추억을 주려고’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물감을 쥐어준다. 아이들은 폭격 당한 버스에 페인트를 칠하면서 논다. “왜 까맣게 탔을까?” “폭탄 맞아서요.” “무슨 폭탄인지 알아?” “네. 확산탄에 맞았어요.” 아이들은 폭탄을 맞고 지붕과 유리창이 다 날아간 버스의 운전대를 잡고, 스쿨버스 놀이를 한다.

폭격을 맞고 버려진 버스를 칠하는 와드와 사마. ⓒ(주)엣나인필름
폭격을 맞고 버려진 버스를 칠하는 와드와 사마. ⓒ(주)엣나인필름

만삭의 임산부가 응급실에 실려온다. 아기가 태어났는데 울지 않는다. 가슴을 압박하고, 뒤집어서 등을 비빈다. 아이는 꼼짝하지 않는다. 의사들은 포기하지 않고 아이를 거꾸로 들고 엉덩이를 때린다. 아이가 번쩍 눈을 뜬다. ‘애애애앵’하고 울음을 터뜨린다. 와드의 내레이션이 흐른다. “산모와 아기 모두 무사했다. 이건 기적이다. 이 일로 우리는 용기를 얻었다. 사마 네가 용기를 준 것처럼.”

지난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무슨 영화를 봐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만 한참 하다가, ‘사마에게’를 다시 봤다. 영화를 본 후에는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만 또 한참 했다. 아무렇지 않게 편하게 먹고 자고 ‘내 새끼들’을 건사하고 있는 내가 영화에 대한 어떤 판단이나 감상을 늘어놓을 입장이 되나. 그래서 그냥 영화에 나왔던 아이들의 모습을 그대로 글로 옮긴다.

지금 우크라이나 땅에도 수많은 아기와 어린이들이 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보건부는 2월 28일까지 14명의 어린이 사망자와 116명의 어린이 부상자가 생겼다고 밝혔다고 한다. 아이들은 아무런 죄가 없다. 너무나 무력한 외침이지만, 러시아가 전쟁을 멈추기를 바란다.

*칼럼니스트 최가을은 구 난임인, 현 남매 쌍둥이를 둔 워킹맘이다. 아이들을 재우고 휴대전화로 영화를 본다. 난임 고군분투기 「결혼하면 애는 그냥 생기는 줄 알았는데」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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