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함께 미국에서 한국 대통령 선거하기
아이들과 함께 미국에서 한국 대통령 선거하기
  • 칼럼니스트 이은
  • 승인 2022.03.07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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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영부영 육아인류학] 짧았지만 의미있던 재외국민 투표 여정기

미국의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 부터 대학교까지 봄학기는 이미 1월 초에 시작되었다. 그리고 사실 학기 중에는 아이들 등원 챙기느라 그리고 남편과 나 모두 강의 준비하느라 늘 정신없이 바쁘다. 주말에도 번갈아 가면서 육아를 하고 일을 하는 나날이 계속 된다. 하지만 지난 2월 마지막 주 주말에는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서 특별한 일정을 소화하기로 했다. 재외국민투표를 하기 위해 5시간 반이나 차를 달려 주미한국대사관 재외국민투표소로 향한 것이다. 한인 인구가 많은 도시에는 출장 투표소가 존재하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가 사는 작은 도시는 한인은 커녕 아시안 인구도 극소수인지라 한참이나 이동해야 투표가 가능했다. 제일 가까운 곳이 5시간 반이나 떨어진 곳이었다.

우리 아이들은 비록 미국에서 태어났고 생애 대부분을 미국에서 보냈지만 나는 우리 아이들의 뿌리가 여전히 한국에 있다고 생각한다. 나와 남편의 뿌리이고 우리 아이들의 뿌리인 대한민국이 좀 더 살기 좋은 사회,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존중 받고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늘 변하지 않는다. 한사람의 표 하나 하나가 모여 중요한 리더를 뽑는 시간이니 무리해서라도 시간을 만들어 투표를 하러 갔다. 출발해서 중간에 한번 주유소에 들러 주유를 하고 간단하게 간식을 먹고 화장실에 간 것 말고는 쉬지 않고 도로를 계속 달렸다. 그날 밤이 되어서야 겨우 목적지에 도착했다. 다들 피곤했던 까닭에 씻자마자 모두 잠에 빠져들었다.

주미국 대사관 재외 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치고. ⓒ이은
주미국 대사관 재외 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치고. ⓒ이은

다음 날 아침 일어나서 호텔에서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바로 투표소로 향했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이미 투표를 마치고 나오는 다른 사람들도 있었고 우리처럼 막 투표소에 도착한 한인들도 있었다. 투표소에 도착하니 한국 방송국에서 온 취재팀도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니 담당자들이 입장하는 사람들 모두의 체온을 확인해서 코로나 위험을 줄이도록 노력하고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투표 장소로 들어가서 본인 확인을 받고 서명을 했다. 작은 아이는 미취학 유아라서 나와 함께 투표를 하러 같이 들어갈 수 있었다. 큰 아이가 아빠와 잠시 밖에서 기다리는 동안 나는 작은 아이와 함께 투표 부스에 들어갔다. 아이에게 우리나라의 대통령을 뽑는 과정을 보여줄 수 있어서 그 의미가 컸다. 솔직히 아이가 잘 이해 했을지는 의문이 남았지만 나중에 한국에 계신 할머니와 조잘조잘 화상채팅을 하면서 엄마와 아빠가 한국 대통령(“Korean president”)을 뽑았다고 이야기한 것을 보면 어렴풋이 그 의미를 알고 있는 것 같기는 하다. 투표를 마친 후 투표용지를 접어서 봉투에 넣고 밀봉한 후 다시 투표함에 넣었다. 투표장소에서 진행인으로서 또 참관인으로서 투표를 안내해주시는 분들도 모두 친절하고 원활하게 도움을 주셨다. 티는 내지 않았지만 사실 오랜만에 같은 한국인들을 보니 너무 반가웠다.

평소 사진 찍는 걸 즐기지 않는 우리 가족이지만 투표를 마치고 나온 후에는 투표소 앞에서 나름의 인증샷도 남겼다. 아이들이 커서도 이 순간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나중에 아이들이 어른이 되고 나서도 유권자로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을 소중하게 여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찌 보면 허무하리만큼 짧은 투표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길에서 11시간을 운전으로만 보낸 여정이었지만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긴 로드 트립 여정에 차 안에서 엉덩이를 들썩이기도 하지만 이제 제법 로드 트립 베테랑이 된 우리 부부는 많은 걸 준비해왔다. 차 안에서 볼 dvd, 스티커북,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카드게임, 두 아이의 입맛에 맞춘 간식거리들, 그리고 잠들었을 때 편하게 기댈 수 있는 긴 바게트 모양 베개까지. 아이들이 몸을 비틀 때마다 열심히 새로운 놀이거리와 관심을 돌릴만한 이야기들을 제공한 덕분에 무사히 일정을 마치고 귀가했다.

아이들에게 이 여정이 어떻게 기억 될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와 남편은 곧 알게 될 한국 대선의 최종 결과까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아이들이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아이들과 함께 나누려고 노력할 것이다. 앞으로도 아이들도 함께 대한민국 많은 것들에 관심과 애정을 지켜나갈 생각이다. 한국에 뿌리를 둔 우리 아이들의 엄마, 아빠로서.

*칼럼니스트 이은은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현재는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작업을 하고 있다. 스스로가 좋은 엄마인지는 의구심이 들지만 아이들과 함께하는 순간순간마다 성장하는 중이라고 믿는 낙천적인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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