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어린이집 교사가 부모님들에게 보내는 편지
“오늘은 색종이 접어서 자동차 만들어 보자.”
“난 분홍색.”
“난 파란색.”
“나도 파란색.”
다수의 아이들과 생활하며 서로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상황을 줄이기 위해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선택권을 주는 경우가 많아졌다.
각자의 기호가 다르니 아이들이 원하는 색깔도 맛도 놀이 방식도 모두 다른 것은 당연한 일. 아이들의 요구사항을 모두 들어줄 수 없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경험에 비추어보면 교사인 내가 주도해 수업을 진행하는 것과 선택의 폭은 좁더라도 아이들이 직접 선택하게 했을 때의 반응은 많이 다르다.
“좋아하는 색깔이 다르니까 오늘은 모두 빨간 색종이로 만들자”보다는 “모두에게 원하는 색깔을 줄 수는 없고 여기 놓인 것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으로 골라 접어보자”가 제각기 요구사항을 들어주지는 못해도 아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음에 만족도가 높다.
초보교사시절 그걸 알 턱이 없었던 나는 선생이니까 어떻게든 요구사항의 홍수 속에서 다수가 원하는 것, 최선의 선택해 아이들을 이끌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머지않아 그건 어리석은 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 아이들은 다수가 원하는 것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기를 바랐다.
어른인 우리가 보기에 아이들이 선택한다는 것이 우스워 보일수도 있겠으나 아이들은 강요하지 않아도 스스로 선택한 것에 대해 만족감과 책임감을 느낀다.
몇 해 전 겨울 발표회 때 공연할 동극을 준비하는 데 배역을 정하는 것이 큰 고민이었다. 여자아이들의 로망인 공주와 지혜로운 왕 역할에 대부분의 아이들의 관심이 몰려있을 때 유독 지인이만은 잠깐 등장하는 쫄쫄이 삼남매를 하길 원했다.
우선 다른 아이들 중에 선뜻 하고 싶어 하는 이가 없어 제일 먼저 지인이가 쫄쫄이 삼남매 중 빨간색 쫄쫄이 역할에 낙점됐다.
지인이 어머니는 그 역할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눈치였다. 특히 공연 당일 통통한 체형의 딸이 쫄쫄이 옷을 입고 나와 우스꽝스런 춤을 추고 들어가는 것을 보며 창피해 했다.
하지만 지인이는 그 날 자신이 선택한 빨간색 쫄쫄이 역할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히 해냈다. 어느 역할보다도 지인이의 모습이 사랑스러워 보였다.
작은 역할이지만 지인이가 선택해주었고 귀엽게 잘 해내어 대견했다. 내가 칭찬을 해주니 친구들도 지인이를 함께 칭찬했다. 지인이가 스스로에게 만족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작은 역할이라 실망하면 어쩌나 후회하는 건 아닐까 걱정스러웠던 마음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어른들이 선택한 것이 때로는 더 좋고 더 지혜롭고 빠르고 편리할 수도 있겠지만 아이에게 어떤 것을 선택함으로써 돌아오는 결과가 만족감이든 실망감이든 선택에 대한 책임감을 느껴보도록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추운 날이 되면 어른들은 목도리며 장갑이며 꽁꽁 싸매기 바쁘고 아이들은 답답하다며 훌렁훌렁 벗어던지기 바쁘다. 가끔 현관에서 이런 문제로 실랑이하는 아이와 부모를 마주하게 되면 거의 대부분은 부모의 승리로 아이는 눈만 빼꼼히 내놓고 귀가를 한다.
아이와 의견차이가 있을 때 아이에게 선택권을 줘보자. 외투 지퍼를 꽉 잠그기를, 모자를 쓰고 가기를, 따뜻하게 부츠를 신기를 바라지만 아이가 원하지 않는다면 아이가 선택하도록 해보는 것이다.
“엄마는 네가 마스크 하고 모자를 쓰고 갔으면 좋겠어. 어떻게 할래?”
“안하고 갈 거야.”
“네가 지금 이대로 간다면 찬바람에 감기 걸릴 수도 있어. 마스크와 모자 중에 어떤 걸 하고 갈까?”
“마스크.”
밥 먹기 싫어서 사탕이 먹고 싶다고 할 때,
“사탕 먹고 싶어.”
“그럼 우리 밥 다 먹고 나서 어디에서 사탕 먹을까? 식탁에서 먹을까? 소파에서 먹을까?”
“소파에서.”
잠자기 싫어하는 아이에게,
“오늘은 몇 시에 잘까?”
“늦게 잘 거야.”
“일찍자야 키가 쑥쑥 클텐데. 늦게라면 9시 아님 10시?”
“10시에 잘 거야.”
아이가 선택하도록 한다는 것은 아이의 요구사항을 무조건 수용하라는 것이 아니다. 아이의 의사를 존중하되 부모의 의견도 선택사항 속에 두어 서로의 입장을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어른이 되고 싶어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스스로 결정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에게 선택하는 기회를 주어라. 선택하는 경험이 쌓이면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기로에서 현명한 선택을 할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성장할 것이다.
*칼럼니스트 정보람은 유아교육과 졸업 뒤 어린이집에서 근무하고 있는 경력 9년차 보육교사다. 장애인야학 활동을 하며 쌓은 다양한 경험을 토대로 현재 장애통합어린이집의 통합지원교사로 장애아와 비장애아를 지도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친구같이 편안하고 재미있는 교사가 되어 눈높이를 맞추고, 학부모와의 원활한 의사소통으로 더욱 즐거운 어린이집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사회·정서적 적응문제로 성장발달과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아동들을 놀이를 통해 진단하고 치료하는 전문가가 되고 싶은 새로운 꿈을 가진,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제일 행복하다는 자칭 꿈꾸는 애벌레다.
정말 이렇게만 하면 너무 좋을텐데 전 왜 안될까요?
아이의 의견을 존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