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다시 여행을 떠나야겠지요”
“언젠가 다시 여행을 떠나야겠지요”
  • 칼럼니스트 김재원
  • 승인 2022.03.29 08: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육지사람 제주살이 이야기] 34. 코로나 시대 여행작가가 사는 법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제가 여행지인 제주에 살며 글을 끄적이며 살아가는 것이. 어쩌면 예정되어 있던 운명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프랑스 파리 개선문 광장. ⓒ김재원
프랑스 파리 개선문 광장. ⓒ김재원
활기 넘치는 프랑스 파리의 거리. ⓒ김재원
활기 넘치는 프랑스 파리의 거리. ⓒ김재원

대학시절부터 저는 세계 100여개 나라를 배낭여행 다녔고, 시간과 여윳돈이 생기면 무조건 어디든 떠났던 것 같아요. 성인이 되어서도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여행을 갈 수 있는 아주 작은 틈이라도 생기면 어디든 떠나기 위해 부단히도 애를 썼고요. 

결혼을 하고 나서도 그 고질병은 사라지지 않았고 여행을 떠나지 못할 때면 이유 없이 힘이 쭈욱 빠져있곤 했어요. 서울시민의 교과서적인 삶을 이제는 살아야 할 운명이었지만 그걸 애써 밀어내느라 혼자서 끙끙대기 일쑤였고요. 일 년에 몇 번씩 이유 없는 우울감에 젖어 있을 때면 제 아내는 항상 '어디라도 다녀오라'라고 나를 배려해 주었습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요르단 페트라. ⓒ김재원
세계 7대 불가사의 요르단 페트라. ⓒ김재원
세계 7대 불가사의 요르단 페트라. ⓒ김재원
세계 7대 불가사의 요르단 페트라. ⓒ김재원

제 아내는 신랑이 앓고 있는 이름 모를 그 몸쓸 병이 그 어딘가를 다녀오기만 하면 거짓말처럼 사라진다는 것을 알았던 모양입니다. 

막상 그 어딘가로 떠나 그리던 곳에 도착하더라도 저는 여는 다른 여행자와 달리 야단법석을 떨며 지내지 않았던 것 같아요. 굳이 떠나지 않더라도 할 수 있는 소소한 것들을 찾았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조용히 책을 읽던지. 사람들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던지.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나던지. 커피를 마시든지 하는 게 여행의 전부였습니다. 그러면서도 항상 어디에서든 익숙한 듯한 능숙한 이방인이 되기를 원했던 것 같아요. 

태국 방콕 카오산로드. ⓒ김재원
태국 방콕 카오산로드. ⓒ김재원
태국 방콕 카오산로드. ⓒ김재원
태국 방콕 카오산로드. ⓒ김재원

그런 삶을 계속 살아왔기에 저는 제가 지극히 평범한 가장의 삶을 살면서 이렇게까지 직장 생활을 진득하게 하리라고는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것 같아요. (여행작가이기 이전에 저는 평범한 회사원입니다) 더욱이 제가 하고 있는 일의 특성상 반듯하고 올바르며 예의 바르게 그리고 항상 신중하고 겸손하게 살아갈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고요. 

그래서 저는 제 성향과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내느라 진땀을 흘리며 주어진 제 그릇에 맞는 삶을 비슷하게라도 살아내려 노력했던 것 같아요. 그 노력은 지금도 여전한 상황이고요. 애초부터 그와 비슷한 사람이었다면 조금 쉬웠을 텐데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기에 온몸을 비틀고 꼬집고 그야말로 난리 부르스를 치며 애써야 겨우 이 정도의 모습이라도 나오는 것 같아요.

북해도 시키사이노오카. ⓒ김재원
북해도 시키사이노오카. ⓒ김재원

그럴 때마다 역시나 '어디론가 며칠이라도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멋진 '제주'에 살면서도 말이죠. 왜 이렇게 여행을 떠나고 싶은지 한번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여행을 다녀오면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나는 어떤 사람이고, 나는 어떨 때 이상한 행동을 하고, 나는 이럴 때 이기적이며, 나는 이러면 화가 난다는 것을 처절하게 알게 되었어요. 어쩌면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 나에겐 '여행'이었던 셈이죠. 그래서 떠나는 것이 설레고 좋았어요. 다녀오는 만큼, 일상을 떠나있는 시간만큼 나는 나와 더욱 가까워졌고 나를 더 잘 알게 되었으니까요. 같은 여행지를 반복해서 방문해도 매번 다름을 느끼는 이유도 아마 그래서일 거예요.  

이탈리아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 ⓒ김재원
이탈리아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 ⓒ김재원

그런데 잠시 숨을 쉬며 살았던 여행작가의 노마드 인생도 코로나 시대가 시작되는 순간 형체도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어떤 것도 허용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떠나고 싶은 생각마저 억지로 잠재울 수는 없습니다. 훌쩍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마다 나를 이렇게 애써 위로해 줍니다. "언젠가 다시 여행을 떠나게 될 거야"라고요. 그리고 한마디 더 덧붙이는데요. 

"언젠가는 다시 너만의 인생을 살아가게 될거야"라고요.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칼럼니스트 김재원은 작가이자 자유기고가다. 대학시절 세계 100여 국을 배낭여행하며 세상을 향한 시선을 넓히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작가의 꿈을 키웠다. 삶의 대부분을 보낸 도시 생활을 마감하고, 제주에 사는 '이주민'이 되었다. 지금은 제주의 아름다움을 제주인의 시선으로 알리기 위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에세이 집필과 제주여행에 대한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

【Copyrightsⓒ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

베사모의 회원이 되어주세요!

베이비뉴스는 창간 때부터 클린광고 정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작은 언론으로서 쉬운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이비뉴스는 앞으로도 기사 읽는데 불편한 광고는 싣지 않겠습니다.
베이비뉴스는 아이 낳고 기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대안언론입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에 동참해주세요. 여러분의 기사후원 참여는 아름다운 나비효과를 만들 것입니다.

베이비뉴스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베이비뉴스와 친구해요!

많이 본 베이비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대로 78 경찰공제회 자람빌딩 B1
  • 대표전화 : 02-3443-3346
  • 팩스 : 02-3443-3347
  • 맘스클래스문의 : 1599-0535
  • 이메일 : pr@ibabynews.com
  • 법인명: 베이컨(주)
  • 사업자등록번호 : ​211-88-48112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서울 아 01331
  • 등록(발행)일 : 2010-08-20
  • 발행·편집인 : 소장섭
  • 저작권자 © 베이비뉴스(www.ibaby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개인정보보호 배상책임보험가입(10억원보상한도, 소프트웨어공제조합)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유미 실장
  • Copyright © 2024 베이비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ibaby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