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장난감의 집, ‘함께 쓰는 모래놀이함’ 탄생기
버려진 장난감의 집, ‘함께 쓰는 모래놀이함’ 탄생기
  • 칼럼니스트 노미정
  • 승인 2022.04.04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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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도서관과 함께하는 마을육아+지구수다] 최초의 자원순환 공유모래놀이함

해마다 버려지는 장난감 쓰레기의 양은 무려 240만톤이나 된다고 한다. 2019년에 개봉한 만화영화 ‘토이스토리4’에는 어린이가 일회용 숟가락으로 만든 장난감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버려진 장난감이 누구보다 사랑받는 존재임을 보여주며 그 운명을 유쾌하게 뒤집는 이야기다.

고장나거나 버려진 장난감을 수리하여 되파는 일로 시작해 장난감과 20여년째 동거동락 해온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비영리단체 트루', 토이 리사이클 유니온(Toy recycle union ‘금자동이’라는 사회적기업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사회운동으로 시민과 함께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버려진 장난감을 분해한 뒤 그 조각들로 새로운 장난감과 작품을 만드는 프로그램인 '장난감학교 쓸모’는 아이들과 체험하는 환경프로그램이다.

울산에는 '사회적기업 코끼리공장'이 있다. 못 쓰는 장난감을 기부받고 고치고 소독해서 취약계층 아이들에게 나눠주는 활동을 한다. 그리고 울산 동구 일산해수욕장에 우리나라 최초의 자원순환 공유모래놀이함이 생겼다.

◇ 모래놀이 도구를 줍다보니 모래놀이함을 만들게 됐다

작년 한해 '맨발덕분에'라는 동아리로 작은도서관 활동가 친구들과 매일 아침 바다를 맨발로 걷고 쓰레기를 주웠다. 일회용컵, 캔, 우유팩등을 깨끗이 씻어 자원순환가게에 갖다줬는데 플로깅을 하면서 주운 모래 놀이 도구가 굉장히 많았다. 손쉽게 쓰고 버리는 게 아까워서 처음엔 도서관 이용자들께 나눔도 했는데, 해변에 공유 모래 놀이함을 설치해서 바다에서 재사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7월쯤 한 단체 채팅방에 환경 관련 정책 제안 설문이 올라왔다. 거기에 플로깅사업과 공유모래놀이함을 제안했더니 연락이 왔다. 행정안전부 지원으로 '울산지역문제해결플랫폼'이 작년에 처음 진행됐는데 지역의 문제를 시민이 직접 해결하도록 지원해주는 사업이다. 워크샵 참여 후, 사업계획서를 작성해 공모에 참여했는데 선정됐다.

바다에서 플로깅하며 주운 재활용품과 모래놀이도구(위), 도서관에 무료나눔한 모래놀이 세트 (아래), 바다에서 주운 모래놀이 모아놓은 것(오른쪽). ⓒ노미정
바다에서 플로깅하며 주운 재활용품과 모래놀이도구(위), 도서관에 무료나눔한 모래놀이 세트 (아래), 바다에서 주운 모래놀이 모아놓은 것(오른쪽). ⓒ노미정

◇ 아이들이 사용하려면 어떤 모래놀이함이 좋을까?

설치물이라 위치와 형태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쓰기 편하고 오래 사용가능한 모래놀이함을 만들기 위해 인터넷 검색도 하고, 모래놀이함이 있는 놀이터에가서 치수를 재고 현장조사도 했다. 7살 막내와 예전에 같이 가서 놀았던 북구 오치골 생태놀이터에 모래놀이함이 있었던 게 생각났다. 가보니 모래놀이터 옆에 있는 큰 나무함은 무겁고 뻑뻑해서 두껑을 들어올리는게 너무 어려웠다. 어른도 힘든데 아이들이 열기에는 위험했다. 왜 이렇게 만든 거지? 게다가 안에는 놀이도구는 없고 청소용품이 들어있었다. 놀이터를 관리하는 북구 공원녹지과에 문의 전화를 했다. 원래 모래놀이함은 아니고 나무 블록보관용인데 두껑이 무거워서 나무블록들을 밖에 꺼내놓고 쓴다고 했다. 만들 때 아이들 입장에서 조금만 더 생각했더라면 좋았을텐데. 우리는 누구나 사용하기 쉽도록 옷장처럼 열수 있는 모래놀이함을 만들어야겠다.

근처 초등학교에 모래놀이함이 있다고 맨발동무 은연씨가 사진을 찍어서 알려줬다. 가보니 모래놀이도구가 들어있는데 환기도 가능하고 바닥의 철재구조물은 물이 잘 빠지게 돼 있었다. 하지만 간격이 넓어 안에 들어있는 모래놀이도구가 보이고 흙이나 이물질이 들어가기 쉽고 바닥이 낮아서 금방 더러워졌다. 우리가 만들 모래놀이함은 틈새 간격은 모래가 빠져나가고 환기가 가능할 정도와 바닥이 땅에 너무 붙지 않게 해야겠다.

가까운 대왕암공원 대왕별 아이누리 놀이터에도 모래놀이함이 있는데 두껑 없이 열려있는 형태라 관리하는 사람이 있을 땐 가능하지만 바닷가에서는 힘들 것 같다.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던 중 마음에 드는 모래놀이함을 발견했다. 견적을 물어봤더니 너무 비쌌다. 주운 모래놀이 도구를 사용하기 위해 이렇게 비싼 함을 설치해야 하는 걸까?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라 고민이 됐다. 대량 생산이 아닌 주문제작이라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이제야 들었다. 처음부터 모래놀이함은 우리 마을에 있는 마을기업 공방에 주문할 생각이어서 우선 모래놀이함 모양과 치수를 적어 견적을 의뢰했다. 답이 왔는데 앞선 견적의 반값이었다. 앗싸, 우선 모래놀이함은 해결 됐다.

두껑이 무겁고 뒤틀려 잘 열리지 않는 나무블럭함과 청소도구-놀이터(위), 초등학교 모래놀이도구함 현장조사(아래). ⓒ노미정
두껑이 무겁고 뒤틀려 잘 열리지 않는 나무블럭함과 청소도구-놀이터(위), 초등학교 모래놀이도구함 현장조사(아래). ⓒ노미정

◇ 함께 쓰는 모래놀이함 제작과정, 그리고 드디어 설치하는 날

설치물이라 동구청 허가를 받아야 해서 제안서를 들고 ‘지역문제해결플랫폼’팀장님과 함께 구청 담당자를 만났다. 위치는 바닷가 들어오는 입구, 모래놀이를 쓰고 씻을 수 있게 수돗가 쪽에 설치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관리가 중요한데 잘못하면 민원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해서 우리 모임에서 매일 청소하고 관리하겠다고 했다. 몇일 만에 구청에서 설치해도 좋다는 전화가 왔다. 모래놀이함을 하루라도 빨리 만들고 싶어 마음이 바빴다. 옷장처럼 열고 모래와 물이 잘 빠지고, 선반도 달고 여러 가지를 공방에 부탁드렸다. 제작기간이 3주는 걸릴꺼라 하셨는데 생각보다 빨리 완성됐다. 알고 보니 추석연휴에도 작업을 하셨다고 한다. 너무 튼튼하고 예쁘게 만들어 주셔서 감사했다. 공방 대표님과 페인트칠하기 전 디자인과 색깔도 의논하고 모래놀이함 이름표 달때도 얘기를 나눴다. 모래놀이함이 제작되는 동안 사용안내문을 만들고, 모래놀이 장난감에 스티커 붙이는 작업도 마무리했다.

10월 9일 드디어 설치하는 날. 구청에 미리 설치날짜를 협의해서 시설과에서도 현장에 나왔다. 크고 무거워 차에서 내릴 때 옮기는 걸 도와주셨고, 수돗가 주변이라 수도배관이나 다른 문제는 없을 것 같다는 확인 후 설치를 시작했다. 모래 바닥을 깊게 파고 모래놀이함 다리 네 군데에 철 구조물로 지지대를 만들어 그 위에 큰 돌을 넣고 모래를 덮었다. 태풍이 와도 끄떡없을 거 같다.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모래놀이함 지붕 모서리마다 보호대도 붙였다. 모래놀이함이 자리를 잡은 후 바다에서 주운 플라스틱 장난감을 한가득 채워 넣었다.

함께쓰는 모래놀이함 설치하는 날, 모래놀이 이름표 스티커 작업중. ⓒ노미정
함께쓰는 모래놀이함 설치하는 날, 모래놀이 이름표 스티커 작업중. ⓒ노미정

◇ 그 후로 6개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설치한 다음날 어떤 일이 일어날지 걱정되고 설레였다. 자식을 물가에 내놓은 것처럼 맘이 쓰여서 매일 아침 바다로 달려갔다. 설치할 때 안내문을 부착했는데, 아침에 가보면 모래놀이 도구가 밖에 흩어져있거나 깨지고 없어지기도 한다. 쓰고 제자리에 넣어주면 좋겠는데. 하긴 처음엔 쓰레기도 막 버려놓고 가면 어쩌지 걱정도 했는데 그런 적은 별로 없다. 간혹 쓰던 모래놀이 도구를 넣어두고 가신 고마운 분도 있다.

'함께 쓰는 모래놀이함'이 있으니 추운 날 빼고는 겨울에도 많이 사용하고, 특히 주말에 많이 갖고 논다. 아이들만 이용할 줄 알았는데, 청소년, 청년, 연인들이 쓰는 것을 보고 너무 뿌듯했다. sns나 맘카페, 블로그에 소개해주시는 분도 계신다.

앞으로 일산해수욕장의 특색 있는 상징물이 되지 않을까? 시민들이 만든 자원재순환 공유모래놀이함은 아마 우리나라 최초일거다. 매일 맨발걷기하며 모래놀이 도구를 씻고 청소하고, 부서진 것은 교체하면서 열심히 관리 하고 있다. 모래놀이함이 나무라 목재 부식 방지용품을 바를 계획이고 모래놀이도구도 기증받으려고 한다. ‘깨끗하고 안쓰는 모래놀이도구 있으면 모래놀이함에 넣어주세요. 저희가 울산 동구 이름표 붙여서 함께 쓰도록 할께요.’

'함께 쓰는 모래놀이함', 버려진 장난감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 바다를 생각하고 함께 쓰는 이곳을 아끼는 소중한 마음이 퍼져나가기를 바란다.

함께쓰는 모래놀이함 사용설명서, 누가 쓰고 그대로 두고 간 현장, 아이와 함께 모래놀이, 모래놀이도구 씻고 청소해요. ⓒ노미정
함께쓰는 모래놀이함 사용설명서, 누가 쓰고 그대로 두고 간 현장, 아이와 함께 모래놀이, 모래놀이도구 씻고 청소해요. ⓒ노미정

*칼럼니스트 노미정은 고등학생, 중학생, 늦둥이 여섯 살까지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다. 울산 동구의 더불어숲작은도서관에서 친구들과 공동육아·마을공동체를 고민하며, 함께 읽고, 쓰고, 밥도 먹는다. 아이들을 함께 키우는 마을, 우리가 오래도록 살고 싶은 마을을 위해 지금 나부터 ‘꿈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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