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를 가진 아이와의 수업이란? '마음을 맞추고, 눈을 맞추는 일'
장애를 가진 아이와의 수업이란? '마음을 맞추고, 눈을 맞추는 일'
  • 칼럼니스트 박현주
  • 승인 2023.04.03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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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꿈을 꾸는 아이]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아이와의 수업에서 느낀 것

새학기부터 다시 인지치료사의 이름으로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거의 7~8년 전 인지치료사로 센터에서 아이들을 만나다가 참 오랜만이다. 사실 원장의 일보다, '선생님'의 일을 더 사랑하다보니, 소소하게 만나는 아이들중 앳된 얼굴이 남아있는 졸업생이라도 만나면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감격스러운 마음이 들곤한다. 정말 오랜만에 다시 시작한 치료수업이라 아직은 서투름에 혼자 치료실에 남아 그날 만난 아이들을 생각해보곤 하는데, 며칠 전 일은 시간이 지나도 내 마음 속에 잔잔한 여운으로 남아 있어 독자들과 나누어 보려고 한다.

며칠 전 고래의 개별 인지치료 시간이었다. 고래는 어린이집의 졸업생이었다. 네 살때 처음 엄마손을 잡고 찾은 고래는 뽀얀 피부가 매력적이었지만, 뽀얗고 예쁜 아이를 당장이라도 안고 싶은 내 마음과 달리 쉬지 않고 우는 통에 제대로 상담을 할 수 없었던 기억이 있다. 입소후에도 한동안은, 아니 꽤 오랜 기간 울음이 멈추지 않았고 곁을 내어주지 않아 선생님과 부모님이 꽤 애를 먹었던 아이였다. 졸업후 3년 가까이 시간이 지났지만, 그 얼굴은 그대로였다. 뽀얀 피부, 무표정의 매력을 가진 고래. 

오랜만에 만난 고래는 어느 새 훌쩍 자라 내 키만큼 자란 것 같았다. 그동안 수업을 진행했던 인지 선생님에게 넘겨받은 자료와 몇 회기를 관찰한 끝에 고래의 인지수업의 목표를 정하려고 부모상담을 시작했다.

수업시간을 지켜보며 안타까운 것은 이런 것이었다. 한글도, 수도, 어린이집에 재원할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성장했으나, 그것과는 달리 수업 중 조금만 어려운 과제를 제시하면 금세 울음을 보이거나 짜증섞인 소리지르는 행동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 짜증이 조금씩 커져 고래는 점점 커져 손을 나비처럼 팔랑이며 커다란 눈에서 굵직한 눈물방울이 연신 떨어지는 것이었다. 마스크 안으로 들어간 눈물을 닦으면서 괴로워 하는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쉽지 않았다. 무언가 괴로워 우는 아이에게 수업시간이니 그만 울라고 다그칠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눈앞에 과제를 치워주려고 하면 고래를 고집스럽게 더 크게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과제가 어려운것일까? 아니 이정도는 다 읽을수 있는건데...... 도대체 고래는 왜 그러지?"

주어진 과제를 하다가 고래의 울음과 소리지름이 시작되면 내 마음은 점점 답답해졌다. 

"고래야, 하기 싫으면 하기 싫다고 해도 괜찮아. '그만할래요'라고 이야기할 수 있잖아?"

고래는 내 말을 듣고는 끝말만 고장난 라디오처럼 따라했다. 

"이야기 할 수 있잖아. 이야기 할 수 있잖아...."

고래가 한 번 그러기 시작하면 어떤 이야기를 해도 마찬가지였다.

어린이집에 다닐 때는 거의 자발어가 나오지 않았으나 일곱살이던 어느날 인지치료 선생님과 함께 하는 개별화교육회의시간에 고래가 글자에 관심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됐고, 어느정도 한글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도 알고는 몹시 놀랐던 기억이 있다. 여전히 자발어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아주 드물긴했지만 필요할 때는 간간히 몇마디씩 스스로의 필요를 말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랬던 고래가 3년뒤 다시 만나니 한글을 줄줄 읽어대는데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숫자도 읽고 쓰는 것에 어려움이 없었다. 많은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아이들이 그렇듯, 고래 역시 글을 읽는 것과 그 글이 의미하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다소 어려워 했다. 사물의 이름을 외워서 쓰는 것은 할 수 있었지만, 그 사물의 기능을 글로 써주면 읽기만할 뿐 적절한 기능을 찾기 어려웠다. 

단어와 어울리는 한글을 그림자 글씨로 따라쓰고, 그다음 공백이 있는 활동지를 줬을 때였다. 고래가 울기 시작했다. 크고 예쁜 눈에서 굵은 눈물이 샘솟아 나면서 연신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그 모습이 한편으론 딱해, "고래야, 이거 하기 싫어? 그럼 선생님이랑 다른거 해도 괜찮아. 우리 그만할까?"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말없이 울던 고래는 이제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다. 이 상황이 당황스러운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고래가 힘들어 하는 활동지를 빼앗아 내려고 활동지를 잡자 고래가 소리를 지르며 내 손을 꼭 붙잡았다. 치우지 말라는 듯이. 고래의 이런 행동은 어떤 의미일까? 

나는 고래의 마음을 알기 어려웠다. 자발어가 없으니, 시키면 시키는대로 울면서도 기어이 해내는 이 아이의 미련스러움(미련스러움이라고 쓰고 사랑스러움이라고 읽고 싶은)이 마음 한켠 아파왔다. 

"나는 고래가 자기 생각을 이야기해줬으면 좋겠어요. 당장은 하기싫은 것과 좋아하는 것만이라도 알고 싶어요." 부모님도 이 말에는 동의했으나 오랜시간 수동적인 학습자였던 탓에, 자기표현은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우리 모두 예상하고 있었다. 

다음 수업시간에는 음성 녹음칩을 준비했다. 생각하고 목소리로 의사를 표현하는 것보다 좀더 수월하게 의사를 표현하도록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리고 나름 매력적인 과자를 이용해 숫자 만큼 포장하기를 놀이처럼 진행했다. 그리고 녹음칩 하나에는 "더 하고 싶어요"와 "그만할래요"를 내 목소리로 녹음했다.

고래는 딱히 좋아하는 과자는 없었지만 활동지로 이뤄지는 수업이 아니라 놀이처럼 진행되는 이 수업에 무척 재미를 느낀 듯했다. 하나를 포장할 때마다 "더 하고 싶어요"라고 녹음버튼을 누르면 과제를 제공했다. 3~4번 더 스스로 "더하고 싶어요"를 눌렀고, 고래가 흥미를 잃을 즈음 "그만할래요"라고 버튼을 눌렀다. "그래, 그럼 그만해도 괜찮아." 다음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 다시 고래에게 활동의 선택권을 줬다. 여러가지 그림과 글이 쓰여진 작은 순서카드에서 고래는 의외로 '한글 놀이'라고 씌여진 카드를 골랐다. 

'한글놀이? 그거 네가 싫어하는 활동아니었니?'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래서 아직 고래가 이 카드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며 평소 하던 한글 과제를 꺼내줬다. 신체 이름의 명칭에 대해 학습하는 활동지였다. 얼굴에서 눈코입만 찾던 어린고래가 이제 점점 자라 인중이나 속눈썹, 턱, 볼 같은 얼굴에서 볼 수 있는 신체기관의 명칭도 익혀나갔다. 여느때처럼 그림자 글씨를 따라 쓰다 어느정도 자신이 생기면 그림자 글씨가 빠진 빈 글상자가 있는 활동지로 교체해줬다. 

많은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아이들이 그렇듯, 고래 역시 글을 읽는 것과 그 글이 의미하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다소 어려워 했다. ⓒ베이비뉴스
많은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아이들이 그렇듯, 고래 역시 글을 읽는 것과 그 글이 의미하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다소 어려워 했다. ⓒ베이비뉴스

그날도 그랬다. 따라쓰기를 여러번하고, 자신의 신체에서 글자가 의미하는 신체부의를 찾았고, 그 다음 확인 과정으로 사진자료 속에 한글이 들어가야 할 부분은 비워놓은 활동지를 고래에게 줬다. 활동지를 받아든 고래의 눈에서 큰 눈물 방울이 뚝 떨어지며 손을 나비처럼 흔들며 나즈막하게 소리를 질렀다. 온 몸으로 "나 짜증났어!"를 말하고 있었다.

"고래야, 어려워? 하기 싫어? 이거 하기 싫으면 '그만할래요.' 버튼을 눌러." 나는 고래 앞으로 "그만할래요" 버튼을 밀어서 가까이 대어줬다. 고래는 여전히 짜증이 가득한 표정으로 소리를 지르며 내 손을 밀쳐냈다.

"그렇게 짜증만 내면 선생님이 네 마음을 알 수가 없어.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래의 울음은 점점 커졌다. 어쩌지 못하고 아이를 지켜보고 있는데, 아이와의 첫 시간이 생각났다. 학습지의 쓰기 칸을 정해진 한 도막의 큰 덩어리가 완성체인냥 한 글자가 틀리면 전체 페이지를 지워서 다시 쓰는 아이였다.  앞장에 있는 글씨를 보고 한 글자 한 글자 넘겨가면서 쓰기에 푹 빠진 모습을 보고 대견하기도, 보람차기도 했던 첫날의 한글 시간이었다. 

"아, 고래야. 그럼 어떻게 쓰는지 정답을 보여줄까?"

나는 교구장에 들어있던 녹음칩을 하나 더 꺼내 "보여주세요"라고 녹음을 했다. 고래에게 녹음칩을 보여준 다음 내가 먼저 눌러 "보여주세요" 라는 소리가 나오게 했다. 그리고는 얼른 정답이 적힌 활동지를 고래의 앞에 갖다 줬다. 고래는 눈물을 닦으며 얼른 연필을 쥐어 들었다. 그리고는 정말 열심히 순간 보여준 그 페이지를 보고 글자를 한글자 한글자 옮겨 쓰기 시작했다. 

'아!!...'

그 때의 현타란, 미안함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느낌이었다. 그 넓고넓은 고래의 마음 속 바다에 꼬르르 잠기고 싶은 기분이었다. 

'아...... 너도 잘 하고 싶었구나.'

고래는 내가 주는 과제를 그만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활동이 어려워서 짜증이 난게 아니라, 정말 정말 잘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고래에게도 보지 않고 쓸수있는 지혜와 명석함이 있었더라면 좋겠지만, 그것이야 모든 사람들이 가진 능력이 다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잘하고 못하고, 유능하고 무능하고 이런 것들을 모두 떠나 내 앞에 있는 열살짜리 크고 맑은 눈을 가진 고래 역시 그저 열살 아이들 답게 '잘하고 싶은 마음'을 그렇게 밖에 표현하지 못 했다는 것을 몇 차례나 고래를 울리고 나서야 알게 됐다. 내가 답답해봐야 고래만큼 답답했을리 없었겠지만, 나는 고래 앞에서 인내하지 못했고, 때로는 친절함도 잊었었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과 매일 매일을 함께 하는 우리들은, (부모든 교사든) 매순간 아이들을 의심하고 너무 쉽게 아이가 보이는 행동을 내 기준으로 읽어내고 단정짓는다. 잘 하지 못하니, 하고 싶어하지도 않을 것만 같다고 의심하고, 잘 듣지 않는 것처럼 보이니, 내 말을 듣고 싶어 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친구랑 놀지 않으니 친구들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너무 쉽게 우리는 아이들의 마음을 의심하고 아이의 마음을 내 생각으로 해석하면서도 아이에게 전혀 미안해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이가 잘 해내지 못하니 잘하고 싶은 생각조차 없을거라고 너무 쉽게 단정짓는다. 

아이가 보여준 건 울음이었다. 얼마나 오랜시간 나는, 우리들은 아이의 울음을 "하기 싫어서 회피하려고 하는 행동",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방어전략"으로 해석하고 비난했을까. 정작 아이들은 "나도 잘하고 싶은데 잘 안돼서 짜증이 나요. 나도 정말 속상해요"라고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하고 있었을텐데. 앞에 마주앉은 공감능력이라곤 1도 없는 선생님을 포기하지 않고 이다지도 친절하게 몇 년간 같은 똑같은 방법으로 울음과 소리지름으로 말해왔을텐데. 아이가 보여줄 수 있는 끝없는 인내심으로 말이다. 사실 이런 모습은 꼭 치료실이 아니더라도, 우리네 교실에서 흔히 보는 모습이기도 하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상에서 늘 마주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발달장애를 키우는 부모라면 하루에 열두 번도 더 겪는 일상이기도 할테다. 

3월, 새로운 아이와 마주한 날들이 시작되는 시기이다. 아이들과 마주하고 눈을 맞추고 마음을 맞춰야 하는 이라면 한 번쯤은 생각해보길 바란다. 도대체 가르치는 상황에서 아이와 나, 이 둘중 누가 인내심이 없는 것이었을까? 도대체 아이를 포함한 다양한 타인들의 감정을 읽지 못하는 이는 과연 누구였을까?

*칼럼니스트 박현주는 유아특수교육을 전공해 특수학교에서 근무했다. 결혼과 출산을 겪으면서, 내 아이를 함께 키우고 싶어 어린이집을 운영하게 됐다. 화성시에서 장애통합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으며, 부모님들과 함께 꿈고래놀이터부모협동조합을 설립하는 데 동참해, 현재 꿈고래놀이터부모협동조합에서 장애영유아 발달상담도 함께 하고 있다. 다양한 아이들을 키우는 일, 육아에서 시작해 아이들의 삶까지, 긴 호흡으로 함께 걸음으로 서로의 고민을 풀어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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