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청소년과 사라진 자리에 통증클리닉 생긴 이유
소아청소년과 사라진 자리에 통증클리닉 생긴 이유
  • 전아름 기자
  • 승인 2023.03.30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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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소아청소년과의사회 폐과 선언 "그동안 보람있고, 기뻤고, 감사했다"

【베이비뉴스 전아름 기자】

젊은 부부와 아이들이 많이 사는 신도시에선 아침마다 진풍경이 펼쳐진다. 소아과 '오픈런'이다. 소아과가 문을 여는 시간에 맞춰 진료를 보러 아이 손을 잡고 냅다 달린다. 한켠에선 소아과 진료 접수를 대신 해주는 앱을 붙잡고 발 동동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진료대기인원은 100명에 육박하고 이내 접수가 마감되고 만다. 주말엔 말할 것도 없다. 아이들 코에선 코가 줄줄 흐르고 소아과 오픈런에 실패한 부모 마음엔 눈물이 줄줄 난다. 영유아 검진도, 예방접종도, 간단한 감기 진료도 어느 것 하나 쉽지 않다. "저출생이라더니 소아과 장사만 잘 되네"라고 생각할 법한데,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이 모여 '소아청소년과 전문과목 폐과'를 선언하고 국민들에게 안녕을 고했다. 무슨 사정일까?

29일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가 폐과를 선언했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29일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가 폐과를 선언했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29일 오전 10시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지금 상태로는 더 이상 병원을 운영할 수 없다"면서 폐과를 선언했다. 소아청소년과 병원 간판을 내리고 어느정도 수익과 운영을 담보할 수 있는 과로 전과하겠다는 것이다. 소아청소년과의 폐과 선언은 어제 일어난 일이지만 이미 현장에선 많은 전문의들이 소아청소년과 간판을 떼고 내과나 통증클리닉 등으로 이탈했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은 모 언론사와 한 인터뷰에서 "90%의 회원들이 폐과에 적극 동조의사를 밝혔다"고 말하며 소아진료 대신 다른 성격의 진료를 보고자 하는 회원들을 지원하는 트레이닝 센터를 만들 것이라고 전했다. 의사회도 그 일을 지원하는 쪽으로 업무 방향을 전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임 회장은 해당 인터뷰에서 "1년 정도면 지금 소아진료를 보는 회원들이 이를 포기하고 다른 진료로 전환하기 충분한 시간"이라면서 "뭔가를 개선하면 상황이 나아질 것 같다고 말할 단계는 지난 것 같다"고 언급했다.

소아청소년과 폐과 선언으로 당장에 동네 소아과들이 모두 문을 닫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지난 수년간 천천히 동네 소아과들이 간판을 내렸고, 경영난에 문을 닫았다. 올해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자는 33명에 불과하다. 이대로 아무런 조치가 없다면 앞으로 2~3년 뒤엔 소아청소년과는 정말로 사라질 것이라는 게 의사회의 전망이다.

동네에서 소아청소년과를 개원해 아이들을 돌본다는 사명감만으론 이미 한계라는 것이다. 지난 5년간 소아청소년과 662곳이 이미 폐업했다. 현재 소아청소년과의 유일한 수입원은 진료비인데 이마저도 30년째 동결이다. 의사회에 따르면 동남아 국가의 10% 수준이다. 소아청소년과뿐만 아니라, 소아외과, 소아흉부외과, 소아신경외과,소아마취과, 소아정형외과, 소아안과, 소아이비인후과, 소아재활의학과, 소아응급의학과등 소아를 다루는 전 의료영역의 의사들이 더 이상은 버틸 수가 없는 형편이다. 

의사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지난 정권에서 최저임금과 물가가 엄청나게 올랐고, 건강보험 보장성도 강화됐지만 지난 10년간 소청과 의사들의 수입은 28%가 줄어들었다. 소아청소년과를 지탱하던 예방접종은 정치인들의 선심 속에 100% 국가사업으로, 저가 편입됐다. 국가예방접종사업은 시행비를 14년째 동결하거나 100원 단위로 올려서 유일한 소아청소년비급여인 예방접종은 아예 사라졌다.심지어 올해 국가필수예방접종에 마지막으로 편입된 로타바이러스장염 백신은 소청과에서 받던 가격의 40%만 받게 질병청이 강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관계자는 베이비뉴스와 통화에서 "폐과라는 단어 선택에 대해 회원 간 이견이 있었고, 앞으로도 논란이 있겠지만 현재 개원가의 상황과 입장을 가장 잘 표현한 단어"라며 "하루에 100명은 봐야 소청과(소아청소년과)를 운영할 수 있다. 국민들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치료받고, 높은 수준의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충분한데 국가는 세계 최저 수준의 진찰료만을 허락하고 강제한다. 이런 경쟁이 이젠 소청과 내에선 이익이 되지 않는다. 세종시에 소아청소년과 환자가 이렇게나 많은데도 소청과가 더 들어서지 않는 이유"라고 진단했다.  

무너진 소아청소년 의료 인프라를 바로 세우는 정책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의사회는 "질병청은 14년째 예방접종비를 깎고있다. 우리나라 질병청이 백신값도 백신사에 제대로 안쳐줘서 우리 아이들은 가장 싸고 아프고 불편한 백신을 맞고 있다.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이 소아청소년 의료 인프라가 무너지면 우리 아이들 생명이 위험해질 것이라고 십년째 이야기하고 있지만 기재부는 듣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인턴 의사들이 소청과를 전공하겠다고 할까라는 의문만 가득한 정책, 대학병원 소청과 교수님들이 이 정책들을 보고 이제는 사직 안하고 보람 가지고 계속 일할까 싶은 정책일까 의문인 정책, 힘들고 위험하고, 고되더라도 신생아, 소아혈액암, 소아심장병, 소아감염병, 소아알레르기호흡기학, 소아신경학, 소아신장학등 세부 전공을 해서 조금 더 난이도 높고 희귀한 병들을 치료하는 아이들의 생명을 구하는 소아청소년과의사가 되어야 되겠다는 결심이 설수 있는 대책인가 찬찬히 살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고도 덧붙였다.

의사회는 기자회견 끝에 "저희는 아픈 아이들 고쳐 주고 잘 자라는걸 보고 흐믓해 하는 일을 천직으로 여기고 살아온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이다. 하지만, 오늘자로 대한민국에 더 이상 소아청소년과라는 전문과는 간판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말씀을 드리고,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은 더 이상은 아이들 건강 돌봐 주는 일을 하지 못하게 되어서 한없이 미안하다는 작별 인사를 드리러 나왔다"라며 "그동안 한없이 반가웠고, 보람있고, 기뻤고, 감사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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